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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러시아 돌아가면 죽음뿐”…유학생들 살 떨리는 난민 신청

등록 2022-12-30 05:01수정 2022-12-30 17:47

“죄 없는 사람 피 흘리는 전쟁 반대”
“위법 전쟁 반대는 ‘단순 징집 거부’ 아냐”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러시아인 친기스(24)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려둔 사진. 친기스 제공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서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러시아인 친기스(24)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려둔 사진. 친기스 제공

대부분 한해를 정리하며 송년회를 하는 시기, 한켠엔 ‘전쟁 동원’을 걱정하며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지난 28일 오전 인천출입국외국인청 면회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러시아인 친기스(24)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전쟁터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고 했다. “제 지인들이 전쟁터에 잡혀갔다는 소식이 에스엔에스(SNS)에 계속 올라오고 있어요. 죄 없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전쟁에서 제가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오는 1월4일 난민 심사를 위한 첫 면접을 앞둔 그는 “러시아에서는 최근 150만명을 동원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러시아로 돌아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지난 9월 30만명 규모의 부분 동원령을 내린 데 이어, 추가 동원령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강제 징집을 피해 국내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러시아인들이 늘고 있다. 인천출입국외국인청에서 ‘보호외국인’으로 난민 심사를 기다리는 친기스는 올해 6월 비자가 만료돼 지난 2일 이곳으로 붙잡혀 러시아로 강제 출국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지난해 인천의 한 대학으로 유학 왔지만, 등록금을 내지 못해 제적된 탓에 내년 3월까지였던 비자 기한이 조기 만료됐다. 친기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루블화가 폭락해 본국에서 보내주던 등록금을 받지 못했다. 일주일에 3번씩 야간에 택배 상하차를 하면서 돈을 벌어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날 함께 만난 아르템(39)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는 2018년 아내와 딸과 함께 한국에 와 체류 자격이 없이 건설현장과 공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다 지난 5일 이곳으로 붙잡혀 왔다. 그는 “먹고살 게 급해 나중에 체류 자격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며 “러시아에 이미 영장이 날라왔다고 부모님한테 연락이 왔다. 지금 강제 출국당하면 전쟁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어머니한테 전사자의 주검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런 탓에 국내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러시아인의 숫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시작한 3월부터 지난달까지 러시아인 난민 신청자는 891명에 이른다. 지난해 45명에 견줘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동원령을 피할 목적으로 난민신청을 하는 것은 난민협약상 난민 인정사유가 아니라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종찬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법무부는 동원령을 피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러시아인들에게 ‘단순 징집거부’를 이유로 ‘난민 심사 불회부’ 처분을 내리는 등 ‘징집거부는 난민 인정 사유가 아니다’라는 게 일관된 입장이다”라고 했다.

특히 미등록 체류자 신분이 된 친기스와 아르템은 불이익 받을 가능성이 더 큰 상황이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미등록 체류 사실이 난민 불인정 사유서에 종종 적히는 난민 심사에 불이익 요소는 맞는다”면서도 “미등록 체류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에 돌아갈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한 만큼 난민 심사에 불이익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친기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16살 때부터 케이팝(K-POP) 등으로 한국 문화를 접하고 홀로 한국어를 공부하다 유학까지 오게 된 칭기즈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만 접하던 한국은 실제로 인종차별도 없고, 민주주의와 자유가 느껴지는 러시아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운명적으로 접하게 된 한국이 제겐 제2의 고향”이라며 “제가 느껴왔던 한국이라면 우리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분명 난민 지위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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