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3일 러시아 젊은이들 러시아와 조지아의 국경도시인 베르흐니라르스에서 걸어서 국경을 넘고 있는 모습. 러시아의 동원령 발동 이후 러시아의 북오세티야 지역에서 조지아로 출국하려는 긴 줄이 섰다. 연합뉴스
“곧 소집 영장을 받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살고 싶다.”
현재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러시아 남성은 지난 9월 우크라이나 당국이 운영하는 ‘항복 핫라인(직통전화)’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고, 내 목숨도 구하고 싶다”며 어떻게 항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우크라이나 상담원은 그에게 “실제 파병되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전선에서 쓸 비밀 전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안내했다. 그는 “나는 일반 시민이다. 우크라이나 시민이 되길 원한다”며 “이 모든 것이 가능한 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고통을 토로했다.
영국 <비비시>(BBC)는 3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군에 항복하려는 러시아군을 위해 만들어진 ‘나는 살고 싶다’라는 이름의 직통전화에 접수된 사연을 입수해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끈 침략 전쟁에 내몰려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러시아인들의 내면을 날것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방송에 따르면, 직통전화엔 하루 100건 정도의 문의가 들어온다. 전화를 걸어오는 이는 대부분 러시아 군인 또는 징집 대상인 러시아인이다. 이들은 전화나 텔레그램·왓츠앱 등 메신저 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뒤 항복할 수 있는 통로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당사자들뿐 아니라 가족들한테서 접수된 것까지 합쳐 현재까지 3500건 이상의 상담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상담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9월 말 푸틴 대통령이 전쟁에 투입할 러시아 남성 30만명을 징집한다는 부분 동원령을 내린 뒤였다. 우크라이나군이 지난달 11일 러시아군이 점령하던 헤르손시를 탈환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직통전화로 연락해온 한 러시아 남성은 “우크라이나군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무릎을 꿇거나 하면 되나? 어떻게 항복하면 되나?”라고 물었다. 상담원은 그에게 “전선에 나왔을 때 우리에게 곧바로 전화를 하라”고 안내했다.
연락이 몰리는 시간은 대개 저녁 시간이다. 상담 담당자는 이 무렵이 군인들에게 여유 시간이 있고, 몰래 나와 전화를 걸 수 있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이 상담자는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은 “한편으로는 절박하고, 또 한편으로는 좌절한 목소리다. 이들은 이 직통전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모르거나 함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도발’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도 있다.
이 프로젝트 책임자인 비탈리 마트비엔코는 “우리는 동원됐지만 싸울 수 없는 사람뿐 아니라 총알받이로 투입된 이들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며 “자발적으로 항복하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항복한 러시아 군인들을 포로 교환 때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비시>는 이런 핫라인 운영에 대해 “러시아의 사기를 약화하시키려는 정보 전쟁의 일부”라고 분석했다.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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