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올란바토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덜지마(57)가 지난 10월28일 자신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하다 과거 도움을 줬던 20살 러시아 청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통역 칭바트씨 제공
“총으로 사람을 쏘는 것보다 도망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청년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게스트하우스 2개(방 10개)를 운영하는 덜지마(57)는 지난 10월28일 자신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겨레>와 만나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고생하고 온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을 꼭 도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부분 동원령을 피해 러시아에서 몽골로 건너 온 청년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한 능력 있는 사람들”이라며 “엔지니어, 선생님, 의사, 박사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덜지마는 러시아 청년들에게 방을 10% 싸게 주거나 돈이 없는 이들에게 공짜로 방을 내줬다. 또한 집을 구하는 이들에겐 임대료가 싼 방을,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에겐 일자리를 알아봐 줬다. 지난 9월22일부터 부분 동원령을 피해 국경을 넘어 몽골로 도망친 러시아인 70∼80명이 덜지마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 대부분은 게스트하우스에 며칠 머무르다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많이 떠났다. 그는 “젊은 애들이 한국으로 가고 싶어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어쩔 수 없이 물가가 싼 태국이나 베트남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똑같은 인간인데, 왜 한국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한국인들도 전쟁을 바라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강하게 말했다.
실제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1일부터 5일까지 요트탄 러시아인 23명이 한국 해역에서 발견됐다. 이들 모두 한국정부에 입국허가를 신청했지만 한국 입국기록 있는 2명 빼고 21명이 입국이 불허됐다. 공항을 통해 입국을 시도하는 러시아 청년들은 난민심사도 받지 못하고 있다. 난민인권센터(난센)는 지난 10월28일 페이스북에 “최근 러시아의 징집을 피해 한국을 찾는 분들이 연락이 갑자기 늘었다. 난센에도 2주 전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러시아 분이 불회부처분(난민 인정 심사에 회부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받은 뒤,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러시아 부랴트 공화국 출신인 신청인은 부분동원령 대상 조건에 해당돼 전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했으나 공항 출입국은 오히려 부분동원령 대상에 해당되므로 징집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난민신청을 거절했다”고 했다.
덜지마는 한국 정부와 한국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뒤 눈물을 훔쳤다. 돈이 없다며 울면서 도와달라고 했던 스무 살 러시아 ‘아이’가 떠올랐다고 했다. “스무 살짜리가 가족도 버리고 돈도 없이 전쟁을 피해 왔는데, 나도 자식을 둔 엄마라 마음이 너무 아파 무료로 방을 내줬어요.” 그는 “스무살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아들을 혼자 보낼 수 없어 같이 온 러시아 엄마들도 많이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임대료가 싼 방을 아들에게 찾아주고,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대학에 등록한 뒤 보통 러시아로 돌아간다. 그는 현재 자신의 게스트하우스에도 아들과 엄마가 함께 묵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들 모자는 두렵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고사했다.
한국을 책망하던 그는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몽골보다 한국이 발전한 나라잖아요. 이런 고생하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몽골 올란바토르에 있는 몽골 대학원 전경. 석사·박사 전문 대학원이었지만 몽골로 도망친 러시아 청년들이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몽골어 영어 수업을 개설했다. 올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대학 교육 과정을 열어 탈출 러시아인들을 돕는 이도 있었다. 초이덤 지기마 몽골 대학원 총장은 몽골로 도망친 러시아인들이 비자를 연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는 10월29일 몽골 대학원 총장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어떻게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어학 수업을 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우리는 석·박사를 대상으로 하는 대학원이지만, 9월 말 몽골어와 영어 수업을 개설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이들은 무비자로 몽골에 들어와서 30일 있을 수 있다. 그 후 한 달 비자를 더 연장할 수 있는데, 그 후에는 거주 비자를 받아야 한다. 어학원에 등록하면 청년들은 거주 비자를 1년씩 연장할 수 있게 된다.
몽골 대학원은 일주일에 3번씩 몽골어, 영어 수업을 한다. 벌써 러시아의 부분 동원령을 피해 온 200명이 넘는 러시아인이 등록했다고 한다. 지기마 총장은 “80%는 몽골계이고, 20%는 러시아계 학생들”이라고 했다. 러시아 학생들은 3개월간 몽골 학생들과 같은 비용인 250만 투그릭(약 95만원)을 낸다.
지기마 총장은 한국이 러시아와 외교 관계가 좋지 않아서 러시아 청년들을 돕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인간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한국은 러시아 사람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 내부에서도 전쟁을 피해 온 러시아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활동가는 <한겨레>에 “징집거부의 경우 그 자체로 정치적 반대자로 평가될 수 있으며, 전쟁지역에서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박해가 가중되는 경우라면 난민협약과 난민법상 난민사유와의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며 “러시아 부분동원령을 피해 비행기로 또는 배로 한국 국경을 찾아 보호를 구하였음에도 돌려보내는 등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강제송환금지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높다. 신속하게 입국시켜 정식의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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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바토르/기민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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