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2시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열린 충남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 최규식홀 앞에 응원 화환들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가 23일 열렸다. 참석자들은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회의에 참석한 총경들에게 해산지시를 내렸고, 회의가 계속 진행되자 “복무규정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한 후, 참석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조치”하겠다며 징계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날 오후 2시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는 약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현장 참석한 총경이 50여명, 온라인으로 참여한 총경은 140여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회의장인 최규식홀 앞에는 참석자를 포함한 총경 357명이 지지의 뜻으로 보낸 무궁화 화분이 놓이기도 했다. 전국 총경은 600명이다. 일선 하위직 경찰이 중심인 경찰 직장협의회(직협)관계자 100여명은 ‘그대 선 이 자리, 경찰의 미래’, ‘경찰국 설치 반대를 위한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적극 지지합니다’, ‘행안부 경찰국 신설 절대 반대’ 등의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내걸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오후 2시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열리는 충남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 안에서 한 경찰관이 플래카드를 들고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총경 회의에서는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나왔다고 한다. 주최 쪽은 “회의에서 많은 총경들이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이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우려를 표했다”며 “참석자들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적 통제에는 동의함에도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또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사안에 대해 국민과 전문가, 현장 경찰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을 비판하며 법령제정 절차를 당분간 보류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이번 회의를 제안한 류삼영 울산중부경찰서장(경찰대 4기)은 기자들과 만나 “(행안부 신설 강행시) 저희가 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며 “필요하다면 2~3차 추가 회의를 열 수 있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류 서장은 이어 “처음으로 경찰서장들은 신분상 불이익 감수하고 공개적으로 의사표현을 진행했다”며 “국민들에게도 경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인권이 언제든 침해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시고 경찰 노력을 성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지휘부는 총경 회의 개최를 만류하고 해산지시에도 강행했다며 회의 진행 도중 “엄정 조치”를 예고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윤 후보자와 각 시도청장이 모임 자제를 촉구했음에도 오늘 회의가 진행됐다”며 “회의 도중 후보자가 해산을 지시하기도 했는데 강행한 점에 대해서 복무규정 위반 등을 검토해 엄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유사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복무규율 준수사항을 구체화하고 향후 위반행위 등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며 “이른 시일 내 총경급 이상이 참석하는 지휘부 워크숍 및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제도 개선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하고 엄정한 공직기강을 확립해나가겠다”는 입장문도 냈다.
23일 오후 2시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열린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최규식 홀 앞에 이번 회의를 제안한 류상열 울산 중부경찰서장의 무궁화 화분이 놓여있다. 이날 전국 총경 350여명이 ''국민의 경찰'' 리본이 달린 무궁화 화분을 보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류 서장은 “휴일에 절차를 지켜 모인 것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장에 참석한 한 총경은 “후보자가 14만 경찰의 리더가 될 분이라면, 복무규정으로 징계하려는 것보다도 총경 계급이 왜 이런 회의를 열게 됐는지 우선 헤아리는 게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행안부가 속도전으로 추진한 경찰국 신설 등에 대해 현장 치안책임자인 총경급 간부들이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그만큼 경찰 내부 의견수렴 등이 미흡했다는 문제제기다. 그러나 경찰 지휘부가 이들에 대한 “엄정 조치”를 예고하면서 경찰 조직 내 갈등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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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