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기에 발생하는 뇌전증 중 가장 심한 형태의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앓고 있는 두준이의 엄마가 지난달 23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집에서 두준이에게 약을 먹이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다시 아기로 돌아가고 싶어요.” 지난해 이맘때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물음에 두준(가명)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말은 엄마(43)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재활치료에 지칠 대로 지친 두준이가 별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인 줄 알면서도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힘들면 이렇게 말할까” 싶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1년이 지나도 두준이의 말은 엄마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엄마는 올해 일곱살이 된 두준이가 이제는 미래를 향한 꿈을 가졌으면 한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광주의 한 빌라에서 만난 두준이는 몸에 스티커를 붙이며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엄마는 그저 “미안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준이는 임신 27주 만에 1.34㎏의 저체중 아이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발생한 뇌출혈은 3일 만에 수두증으로 이어졌다. 수두증은 뇌척수액이 흐르는 통로가 막혀 뇌에 물이 차는 병인데, 뇌출혈로 생긴 혈전이 관을 막은 것이다. 통로가 없어 막힌 뇌척수액이 한창 성장해야 하는 뇌를 짓눌렀다. 당시 두준이의 머리를 찍은 자기공명영상(MRI)엔 뇌에 주름이 없고, 또래보다 매우 작았다.
의료진은 아이가 너무 작게 태어난 탓에 3개월까지 인큐베이터에서 키운 다음에 뇌척수액을 빼내는 얇은 관을 몸에 삽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사이 두준이의 머리는 점점 부풀어 올랐고, 엄마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뇌에 물만 계속 차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의 머리가 아이스크림콘 모양처럼 커져 있었어요. 고통스러워하는 아기를 보면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란 생각부터 ‘임신 중에 내가 뭘 잘못했나’란 생각까지 자책이 줄을 이었어요.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득했죠.”
다행히 2016년 3월31일 뇌에서부터 복막까지 뇌척수액이 흐를 얇은 관을 삽입하는 ‘션트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만 수술을 받기까지 4개월 넘게 뇌척수액에 짓눌린 뇌는 제 기능을 하기 어려웠다. 두준이의 엠아르아이를 본 의사들은 “뇌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평생 식물인간처럼 누워서 지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몸이 수시로 굳는 두준이는 의자에 겨우 기대거나,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 두준이가 태어나고 4개월이 지나고서부터 목은 가눌 수 있게 됐지만, 션트 수술로 관이 삽입된 머리 왼쪽 부분이 불편하다 보니 두준이는 항상 목을 오른쪽 45도 방향으로 돌린 채로 있다. 45도 틀어진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사시까지 생겼다. 두준이는 사시 수술도 앞두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뇌손상은 희귀난치병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으로까지 이어졌다.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은 흔히 ‘경기’라고 일컫는 ‘뇌전증발작’이 수시로 나타나는 질병이다. 청소년기가 되면 저절로 없어지기도 하지만, 평생 앓는 경우가 많다. 두돌이 갓 지난 한겨울 두준이가 첫 발작을 일으켰을 때를 엄마는 잊지 못한다. “눈이 엄청 많이 오던 날이었어요. 갑자기 두준이가 눈이 돌아가고 고개가 돌아가면서 의식은 없고 호흡도 못하는 거예요. 너무 놀라 119를 불렀는데 눈이 와서 두준이가 다니던 서울아산병원까진 못 갈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두준이가 이대로 죽는 줄만 알았어요.” 이때 시작된 발작은 일곱살인 지금까지 이어진다. 지난 1월, 두준이는 다시 큰 발작을 일으켰다. 의사는 2~3년가량 발작이 멈춰야 약을 줄이거나 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가 계속 이어지니 두준이는 지금의 몸에 부담되는 약 3가지를 하루 두번 먹고, 저녁엔 이 약들의 부작용을 완화해주는 약을 먹는다. 약을 먹을 때마다 쓰다며 떼쓰는 두준이에게 엄마는 “머리 안 아프게 하는 약이야”라며 달랜다. 그래도 두준이가 약을 뱉을 땐 따끔하게 혼낸다. 엄마는 마음이 아프지만 약을 줄일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눈물을 참는다.
소아기에 발생하는 뇌전증 중 가장 심한 형태의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앓고 있는 두준이가 먹는 약. 하루 오전에 3개, 오후에 4개의 약을 먹는다. 정확한 양을 투약해야 해서 주사기를 이용한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언제 다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고, 두준이가 스스로 몸을 가눌 수도 없기에 엄마는 두준이의 곁을 떠날 수 없다. 두준이는 잠에 막 들었을 때나, 깨어날 때 주로 발작이 일어나기 때문에 엄마는 두준이를 품에 안고 숨소리를 들으며 잔다. 두준이의 미세한 변화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마는 두준이가 태어난 뒤 1시간 이상을 푹 자본 적이 없다. “아기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팔베개를 해주는 게 버거워지기도 해요. 팔베개를 해주는 오른쪽 팔꿈치 근육이 파열돼서 2년 넘게 치료받기도 했어요.” 게다가 엄마는 9년 전 받은 갑상선암 절제 수술로 몸의 피로가 쌓이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얼마 전엔 건강검진에서 신장 질환이 추가로 발견돼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2020년 남편과 이혼하면서 혼자 두준이를 키우게 된 엄마는 두준이를 챙기느라 자신의 몸을 챙길 여유가 없다.
몸이 아픈 엄마는 한달 800만원에 이르는 두준이의 치료비를 빚으로 충당하고 있다. 두준이 치료비 때문에 쌓인 빚만 1억5000만원, 한 달에 80만~9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나날이 악화하는 몸 상태와 두준이를 하루 종일 홀로 돌봐야 하는 상황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한 운수업체에서 하루 4시간을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덕에 월 100만원을 벌고, 아동수당·양육수당 등으로 38만원을 받는다. 물론 병원비를 감당하긴 턱없이 모자란다. 지금까지 두준이가 태어나기 전 가입한 ‘태아보험’에서 나오는 치료비가 그나마 도움이 됐지만, 현재 보험사는 두준이가 과다진료를 받고 있다며 900만원가량의 치료비 지급을 거부한 상황이다. 이혼한 남편도 파산 상태라 양육비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는 빚으로 빚을 돌려막기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대출도 받기 어려워져 어떻게 병원비를 마련해야 할지 엄마는 매일 고민한다. 최근엔 두준이의 할머니까지 복막암 4기 판정을 받아 추가로 병원비가 들어가면서 한계 상황에 달했다.
엄마는 두준이가 생후 5개월부터 시작한 재활치료를 아예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엄마는 30개월 때 두준이가 처음으로 배밀이를 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병원에서는 평생 걸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때 엄마는 희망을 가졌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두준이가 혼자 생활할 수 있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스스로 휠체어에 앉고 밥만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길 바란다. “두준이가 30개월일 때였어요. 재활병원에 같이 입원해 있던 3살짜리 누나가 하던 낱말카드가 궁금했는지 두준이가 계속 쳐다보더라고요. 그때 기적이 일어났어요. 두준이가 갑자기 팔을 움직이면서 배밀이를 하며 누나에게 다가가더라고요. 큰 소리를 내면 아이가 배밀이를 멈출까 봐 입을 막은 채 숨죽이며 아이를 바라만 봤죠. 그때 이후로 아직 큰 진전은 없지만,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휠체어엔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모든 생활을 포기하면서도 재활치료만은 포기할 수 없어요. 제가 포기하면 두준이는 방치되는 거잖아요.”
소아기에 발생하는 뇌전증 중 가장 심한 형태의 레녹스·가스토 증후군을 앓고 있는 두준이의 엄마가 지난달 23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집에서 아이의 몸을 풀어주고 있다. 광주/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엄마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두준이의 미소다. 두준이가 말이 트이기 시작한 4살 무렵 엄마에게 처음으로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당시에 끝이 안 보이는 병원 생활에, 쌓이는 빚에, 힘든 몸에 고달파서 엉엉 울었어요. 두준이는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사 같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제게 말하더라고요. 두준이 때문에 힘들지만, 또 두준이 때문에 힘이 나요. 정말 힘든 순간에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이 저를 버티게 만들죠.”
두준이가 특수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서 엄마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두준이가 미움받지 않고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두준이에게 병원이 아닌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보여줘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두준이가 병원에서만 지내다 보니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오늘은 무슨 치료를 할까요’, ‘엄마 아파요’, ‘장애인 콜택시로 가요’처럼 또래 애들에겐 낯선 말들밖에 배우지 못했어요. 여유가 된다면 두준이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좀 더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재활치료도 계속 이어나가길 바란다. 두준이가 스스로 생활하고, 인지능력이 높아지려면 지금 하는 인지치료, 언어치료 등 각종 치료를 계속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 걱정 없이 두준이에게 맞는 치료를 해줄 수 있길 바랄 뿐이죠. 아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 모두가 가진 생각 아닐까요. 언젠가 두준이가 자신만의 꿈을 갖길 바라고 있어요.”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두준이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하나은행 188-910030-69104, 예금주: 사회복지법인밀알복지재단)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밀알복지재단(1600-0966)으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밀알복지재단으로 연락 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두준이네 가정의 재활치료비, 정기검진비, 의약품비, 긴급생계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밀알복지재단은 두준이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15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두준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장애아동에게 지원될 예정입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아린이(가명)네 가족의 사연(<한겨레> 2022년 1월7일치 9면)이 소개된 뒤 2845만5965원(3월7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540분의 후원자가 “아린이 가족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아린이 부모님께서 아린이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왔습니다. 후원금은 아린이의 병원비, 아린이네 가족의 생활비로 전달됩니다. 또한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아린이네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