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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분유 한 통 살 엄두가 안나…엄마는 젖병에 미음을 섞어야 했다

등록 2022-01-07 04:59수정 2022-01-07 07:33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다운증후군에 심방중격결손증 있는 24개월 아린이
심장에 구멍 두 개…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기초수급자 부모 일용직 노동으로 치료비 겨우 마련
“분유 한 통 마음 놓고 살 수 있었으면”
다운증후군과 심장질환이 있는 아린이가 집에서 엎드려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다운증후군과 심장질환이 있는 아린이가 집에서 엎드려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제 막 두 돌이 된 아린이(가명)의 분유를 탈 때마다 엄마(43)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한 통밖에 남지 않은 분유가 점점 줄어들자 분유를 아끼기 위해 쌀을 조금씩 불려 만든 미음을 젖병에 섞었다. 일반 분유를 사는 것도 부담인데 앞으로는 특수분유를 먹여야 한다고 해서 엄마의 시름은 커져만 간다. 의사는 심장 수술을 받은 아린이에게 ‘단백질이 많이 들어간 특수분유를 먹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부모는 한 통에 4만원이나 하는 특수분유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잘 못 먹여서 그런 걸까.’ 바닥에 엎드려 힘겹게 숨을 내쉬는 아린이를 보며 엄마는 또 한없이 미안해진다. 지난해 12월30일 충청남도 한 도시의 33㎡(10평) 남짓한 방 두 칸짜리 낡은 옥탑방에서 만난 아린이는 작은 코와 입으로 숨을 몰아쉬며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바닥에 앉으면 힘이 없는지 아린이는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옆으로 자꾸만 고꾸라졌다. 아린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엄마와 힘겹게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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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 형편에 검사 시기 놓쳐

지난해 6월 아린이는 다운증후군과 선천성 심장질환인 심방중격결손증을 연이어 진단받았다. 심방중격결손증은 심장 좌우 양 심방 사이 중간 벽에 구멍이 생기는 심장질환이다. 지난해 8월3일 아린이는 병원에 입원해 심장에 생긴 구멍을 막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아린이의 담당 의사는 ‘구멍 하나는 수술이 잘됐지만, 남은 하나에서 여전히 피가 많이 새고 있다’고 진단했다. 재활 치료를 하면서 꾸준히 아이의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이 늦어 보행 재활 치료를 위해 열흘 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아린이가 태어났을 때 병원에서는 ‘다운증후군 위험도가 높으니 돌 무렵에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빠듯한 형편에 엄마는 검사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린이가 18개월 됐을 무렵,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는 사이 아린이의 입술과 손끝이 파래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아린이가 평소 숨을 몰아쉬고, 뒤집기도 늦어서 ‘체력이 약한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의사는 다운증후군 진단과 함께 “심장에 구멍이 나 피가 많이 새고 있으니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이들은 절반 정도 심장질환을 함께 앓고, 심한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의 10~20%는 호흡기질환에 빈번하게 걸린다고 한다. 특히 심장질환과 다운증후군이 모두 있을 경우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큰데, 아린이 같은 아이들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성장이 부실하면 백혈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눈물을 흘렸다.

아린이가 엄마 품에서 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아린이가 엄마 품에서 쉬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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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자 부모, 세 아이에게 항상 죄인

기초생활수급 가정인 아린이네는 한 달에 230만원가량 정부보조금을 받는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언니와 6살 난 오빠까지 있는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빠듯하다. 의사 말대로 아린이에게 특수분유를 먹이려면 한 달에 50만원 든다. 여기에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린이가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각종 검사 비용과 꾸준히 받아야 하는 재활 치료비까지 더하면 아린이 분유값과 치료비로만 드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급여 항목일 경우에는 부담이 덜하지만, 비급여 항목 검사를 받아야 할 때는 대책이 없다고 한다. 아린이 엄마는 “병원에서 비급여 항목인 검사를 받으라고 하면, 바로 검사를 받을 수가 없다. 아린이가 받아야 하는 비급여 검사들은 10만원 안팎 정도지만, 이마저도 낼 형편이 안 돼 아이 아빠가 일용직을 나가 돈을 벌어 오면 그제야 검사를 받곤 한다”고 말했다. 한 달에 7~8번 병원을 찾을 때마다 ‘혹시라도 아린이가 입원하면 어떡하나’, ‘비급여 항목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이 들어 엄마와 아빠는 병원을 찾는 일이 매번 두렵다. 아린이 엄마는 “아이 검사받는 것조차 전전긍긍하는 나 자신이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져 속상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아린이가 심장 수술을 받은 뒤부터 부모는 아린이의 언니와 오빠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없게 됐다. 아린이 병간호에 부모가 온 신경을 쏟은 사이, 언어발달 장애가 있는 6살 둘째의 언어 치료는 뒷전으로 밀렸다. 일주일에 두 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지역 언어치료센터를 찾아야 하지만, 그때마다 아린이의 상태가 안 좋아져 급히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았다. 방바닥에 엎드린 아린이 뒤로 6살 오빠는 엄마가 내준 스마트폰을 가지고 혼자 놀며 이불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아린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은 언니, 오빠와 함께 장난치며 노는 것이다. 아린이를 끔찍이도 아끼는 언니는 엄마가 신경을 못 써줘도 공부도,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다고 한다. 아린이 엄마는 “아픈 아린이 때문에 다른 두 아이를 돌봐주지도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아린이 수술비와 각종 재활 치료비, 세 아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린이 아빠(43)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한때 방송사 전기기사, 공장 생산직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코로나19로 퇴직 통보를 받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아린이 엄마도 식당·마트·공장 등에서 일했지만 6년 전 척추 수술을 받으며 일을 그만둬야 했다. 아린이 아빠는 지방자치단체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에게 근로 기회를 제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인 ‘자활근로사업’에 참여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린이가 심장 수술을 받는 바람에 중간에 포기해야 했다. 아린이가 엄마와 함께 병원에 입원하면, 나머지 두 아이를 챙길 사람은 아빠뿐이다. 아린이네 가족에게는 급한 일이 생기면 도움을 청할 할아버지·할머니, 친척이 없다. 아린이의 부모 둘 다 부모나 친지 없이 홀로 자랐기 때문이다.

아린이 수술비와 생활비를 위해선 안정적인 일자리가 절실하지만, 아이 병간호 때문에 한두번 빠지면 고용주들로부터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린이 엄마는 “(애 아빠가) 코로나19로 요즘 일용직 일자리도 많이 없다고 한다. 나라도 어디 취직해 돈을 벌고 싶지만, 면역력이 약한 아린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해야 한다고 해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좁은 방바닥에 엎드린 아린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며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41살에 아린이를 낳았어요. 노산이었는데…. 아린이가 다른 엄마를 만났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진 않았을 텐데. 바닥에 힘없이 엎드린 아기 모습 보는 게 제일 마음이 아파요.”

아린이가 집에서 엎드려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아린이가 집에서 엎드려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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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트리처럼…“올해는 더 웃자”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룩진 장판, 벽지 곳곳 곰팡이가 슬어 어둡기만 한 아린이네 집 현관에 ‘반짝반짝 빛나는’ 물건이 하나 생겼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린이 아빠가 가져다 놓은 트리다. 아린이와 오빠, 엄마, 아빠가 옹기종기 모여 자는 안방 천장에도 동그란 장식 전구들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가지 못해 미안했던 아빠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비좁고 어두운 방이지만, 머리 위 반짝반짝 빛나는 전구를 보며 아이들은 ‘신기하다’며 무척 좋아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엄마는 트리를 차마 치울 수 없다. 아린이가 매일 밤 집 안이 어두워지면, 홀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앞으로 기어가 가만히 앉아 쳐다보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밖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에게 보내곤 한다. 트리 앞에 앉은 아린이를 보며 아빠는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다짐해본다. ‘아린이 병간호를 하면서 언제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엄마는 “미안하기만 할 뿐”이라고만 했다. 아빠도, 엄마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힘들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세 아이가 아프지 않고, 별 탈 없이 잘 자라는 것.’ 매년 변치 않는 아린이 엄마의 소망이다. 더 열심히 살아서 아린이 건강이 나아질 수 있는 따뜻하고 쾌적한 집으로 이사 갈 날도 꿈꾼다. 좁고 낡은 집에서 뛰어다니기 좋아하는 둘째와 방바닥에 지쳐 엎드린 막내 아린이는 서로 자주 부딪혀 다칠 때가 많다고 한다. “세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새해에는 아린이가 더 아프지 않고 언니, 오빠와 마음껏 뛰어놀았으면 좋겠어요.”

캠페인에 참여하시려면

아린이네 가정에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업은행 148-013356-01-136 예금주: 대한적십자사)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대한적십자사(1577-8179)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대한적십자사로 연락해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2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병원비와 생활비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아린이네 가족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살피며 후원금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전달하겠습니다. 2000만원 이상 모금이 되면 아린이네 가정처럼 어려운 위기가정 지원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굿네이버스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민우(가명)네 가족의 사연(<한겨레> 2021년 12월10일치 11면)이 소개된 뒤 3040만9391원(1월3일 기준)의 정성이 모였습니다. 450분의 후원자가 “민우 가족 힘내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굿네이버스는 “민우와 어머니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왔습니다. 후원금은 민우 가족의 주거 지원비, 학습 지원비, 어머니 의료 지원비로 전달됩니다. 또한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민우네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가정에 지원될 예정입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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