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진보적 교육안, 실험 넘어서라

등록 2010-12-13 08:30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
[기고]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 교수
대학서열화 개편과 함께
초·중등 세부정책 다듬고
실현가능성 높여 나가야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 정치세력이 의회 진출 이상으로 정치적 헤게모니를 잡은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진보적인 교육정책이 국가 정책 수준에서 채택되어 실현되지도 못했다. 이는 진보정당이 여태까지 집권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대화 이후 인간자본론에 입각해 교육을 도구화한 오랜 전통이 있었던 것처럼, 진보진영도 교육정책을 대체로 다른 이슈들의 주변부에 두거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문의 종속변수로 취급해 왔다.

1990년대 이후 진보적인 정당, 연구소, 학자 집단이 간간이 교육개혁 방안을 제시해 왔지만, 그것이 진보정당의 정치세력화만큼이나 대중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되었다고 볼 수 없다. 정책 내용 또한 체계적인 얼개를 갖추지 못한 채 단순히 공약에서 나열된 수준이거나, 정책적 실현가능성과 무관하게 평등주의 원칙으로부터 연역되고 파편화한 성격을 가진 것이 태반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진보적 교육정책 방안들은 스스로 진화, 발전하는 과정도 보여줬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안’이다. 애초에 대중에게 ‘서울대 폐지론’이란 자극적인 수사를 동반하면서 잘못 알려졌던 이 안이, 이제는 국립대 체제 개편에 이르는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갖추게 되고 네트워크에 포함되지 않은 ‘잔여’ 사립대 문제와 그 밖에 예상되는 부작용까지도 검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진보적인 정당과 연구소에서 제안한 내용들을 검토해 보면, 여전히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현재 교육의 난맥상을 파격적인 진보성으로 해결할 수 있기엔 교육을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다. 이를테면 합리적 경제행위자로 이루어진 경제 영역이 제도적인 처치를 통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되는 반면, 무차별적이고 비합리적인 욕망기제를 포함하고 있는 교육 부문은 전혀 달리 작동된다.

이러한 점에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시한 ‘보편 복지 시스템에서 교육 부문의 개혁안’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국 교육학이 세부 전공으로 분화되어 단기적인 ‘경영 공학적’ 처방만을 제시하면서 ‘교육적 조망 능력’을 상실해 버린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통합적 패러다임은 바람직한 접근 방식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안고 있는 딜레마도 없진 않다. 학교교육의 독특한 내적 논리가 등한시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체로 진보적 교육정책안이 복잡한 한국교육의 난맥상을 풀 수 있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으로서 고등교육, 구체적으로 대학의 서열화를 겨냥한 것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거기서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초·중등학교의 교육과정과 같이 세부 정책안을 다듬는 작업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교육제도적 차원에서의 프로그램 처방으로 일거에 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과업이 종료된다는 기대는 다시금 ‘공리주의적 한계’에 갇혀버리고 만다.

교육은 자라나는 세대의 의식 내면적인 세계와 직접 체험하는 삶의 영역을 다루는 복잡하고 섬세한 과업이다. 사유실험 단계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현가능성에 끊임없이 노크하는 것이 진보적 교육정책의 최대 목표이자 과제임이 틀림없다.

조상식/동국대 교수(교육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주인 잃은 960점 유류품처럼 아직 묻혀있는 ‘이태원의 진실’ 1.

주인 잃은 960점 유류품처럼 아직 묻혀있는 ‘이태원의 진실’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2.

“울엄니 만나러 가요 굿바이” 김수미 직접 쓴 유서곡

1타 강사 전한길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국민 피해” 혐오 발언 3.

1타 강사 전한길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국민 피해” 혐오 발언

딸 자취방서 머리카락, 손톱을 모았다…이태원 참사 2주기 4.

딸 자취방서 머리카락, 손톱을 모았다…이태원 참사 2주기

‘친윤의 한동훈 낙마 프로젝트’ 유포자 5명 검찰 송치 5.

‘친윤의 한동훈 낙마 프로젝트’ 유포자 5명 검찰 송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