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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망상력, 쓸데없는 생각의 힘!

등록 2010-06-13 15:43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⑧

[난이도 수준-중2~고1]

“멍을 때리자, 망상 해변으로 놀러가자.”

비속어를 써 죄송하다. 허접스러워 보이지만, 나름 심오한 뜻이 담긴 말이라 그대로 사용해보았다. 초·중딩 눈높이의 언어인지도 모르겠다. 두 부분으로 나눠 설명을 해보겠다. 먼저 “멍을 때린다” 함은 넋을 놓고 여유를 부린다는 의미다. 공부에 짓눌린 요즘 학생들은 멍하니 딴청을 부릴 시간이 부족해 불행하다. 두 번째 “망상 해변으로 놀러가자”는 말은 비유적 표현이다.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에 위치한 망상 해수욕장 이야기가 아니다. 피서 즐기듯 ‘망상’(妄想)의 나래를 펴보자는 뜻이다. 장난 같지만, 글쓰기의 중요한 비밀을 암시한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유치원생도 알 만한 상식이다. 글쓰기를 위해 독서를 만류할 사람은 없다. 그저 진부하다는 얘기다. 대신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글을 잘 쓰려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라.” 때로는 책을 내팽개치고, 망상의 바다 위에서 ‘멍을 때리는’ 일이 유익하다.

“나는 아침마다 불가능한 일 여섯 가지씩을 상상해.” 팀 버튼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대사다. 다른 말로 하면, 앨리스는 매일 아침 쓸데없는 생각에 잠긴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쓸모 있는 생각이란 없다. 별 괴상한 아이디어가 진화를 거듭하다 경천동지할 결과를 내놓기도 한다. 닌텐도, 아이폰이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까?

어른들은 아이들이 실용적으로 생활하기를 바란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곤 한다. 아이들의 사고력이 자라길 바라는 부모라면 “책을 많이 읽으라”는 잔소리도 좋지만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하고, 이왕이면 쓸데없는 짓도 자주 하라”고 권해야 한다. 폼나는 말로는 ‘상상력’이 있다. 그냥 ‘망상력’은 어떤가. 망상도 힘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던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겠다며 일주일간 낑낑댄 적이 있다. 내 맘대로 주어·동사·명사들을 만들고, 그 음운과 뜻을 멋대로 붙여 공책에 빼곡히 적었다. 동네 친구들에게 보여준 뒤 이 언어로만 소통하자고 우겼다.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쓸모없지만은 않았다. 언어의 법칙을 조금 이해하게 된 계기이자 ‘의심’을 훈련한 경험이었다. 반드시 어릴 때부터 배운 말로만 이야기해야 하나?

망상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왜 주스를 빨대로 먹어야 하지?’ ‘요구르트를 위에서 따야만 하나? 바닥에 구멍 내 빨아먹으면 안 되나?’ ‘지각하지 말라는데, 왜 다들 정해진 시간에 등교를 해야 하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것을, 너무나 당연히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뚱딴지같은 발상에서 출발한다. 이게 쌓이고 성장하면 ‘다르게 말하고 쓰기’의 힘으로 커진다.

6월이 오면 현충일이나 6·25전쟁에 관한 글짓기대회를 여는 학교가 많다. ‘호국영령’을 기리고 전쟁을 되새기자는 의미다. 이런 주제로 글쓰기를 시키면 십중팔구의 학생들은 ‘나라사랑’이나 ‘평화의 중요성’ 따위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쓴다. 상당수의 글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히 보인다. 완전 다르게 써보는 거다. 수업시간에 배운 역사적 내용이나 의미를 잠시 치워두고, 아주 이상한 생각을 해보는 거다. “장가도 못 가고 죽은 호국영령이 가장 불쌍하다”고 해도 괜찮다. 물론 상을 받기는커녕 핀잔만 들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쓸데없는 상상으로 글을 써보자. 창의력의 뿌리다. 나중에 기획력의 원천이 된다.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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