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
[난이도 수준-중2~고1] “뇌물혐의로 쇠고랑 찰까봐 두렵다.” 준석은 여동생 은서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특출하게 성공하면 찬사와 함께 비난도 받으면서 크게 망할 수 있다고 지레 겁을 먹었다. 준석은 학교 공부와 미래의 비전, 동생에 대한 생각 등도 상세히 밝히려 했으나, 인터뷰어의 질문이 조잡하고 흐리멍덩하여 길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완벽남이 장미를 들고 프러포즈해도 응하지 않겠다.” 은서는 오빠 준석과의 단독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바람을 필 것 같아서”였다. 은서는 아울러 자신의 취향과 희로애락에 관해서도 털어놓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바라는 점과 자신의 장단점 등도 솔직하게 말했다. 인터뷰어의 질문이 의외로 꼼꼼해 꽤 길게 이야기했다. 이건 인터뷰 게임이다. 아니, 인터뷰 놀이다. 남매인 준석과 은서는 서로에 관해 ‘조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낸다는 마음으로 질문을 해 답을 얻은 뒤 내용을 정리했다. 가족은 때로 ‘등잔 밑’처럼 어둡다. 이 어둠을 밝히는 것은 ‘인간탐구’의 초보적 단계라 할 만하다. 그 실제 결과물은 얄팍하고 유치했지만…. “내가 어떻게 느껴지나요?” “까불게 느껴지고, 활발하고, 입 가격이 얼마일지 궁금합니다.” (입이 싸다는 의미) “엄마에게 공부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가요?” “한편으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부를 내팽개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공부를 내팽개치고 싶나요?”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것을 엄마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서.”(은서의 준석 인터뷰) “왜 소녀시대를 좋아하나요?” “예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머리도 예쁘고, 춤신이기 때문에” “왜 엄마 속을 상하게 하고도 웃나요?” “분위기 업(up)을 위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플 때는?” “배고플 때.” “오빠와 있을 때 최고 좋은 일은?” “맛있는 걸 먹으며 함께 카드게임을 할 때.” “미래의 내 아이에게 한 마디.” “절대 가난해지지 말렴. 우울증에 걸리지 말렴.” “만약 만능요리사가 당신에게 딱 하나의 요리를 해준다면 뭘 부탁할 것인가.” “김밥.”(애걔?) “너의 이상형은?” “재미있고, 성실한, 잘 생긴 남자.”(준석의 은서 인터뷰)
준석과 은서의 인터뷰엔 장난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설문조사’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왜?”라고 되묻는 2차질문은 적었다. “예를 들어달라”는 구체적인 주문도 씨가 말랐다. 호기심을 세련되게 발휘하는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 차차 보완할 일이다. 아이들에게 인터뷰를 시켜보자. 형제·남매간을 넘어 친구 또는 선생님도 좋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기타 친지도 대상에 포함시켜보자. 인터뷰 내용은 반드시 기록하게 한다. 어렵게 여기지 말자. 인터뷰의 다른 이름은 대화다. 목적을 띤 조금 깊은 대화일 뿐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소통을 훈련하고, 지혜와 경험을 배운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고 깊게 키운다. 좀 더 응용하면, 반성문 대용으로도 좋다. 흔히들 학교에서 주먹다짐을 하다 걸리면 반성문을 쓰게 한다. 별 효용 없다는 거 다 안다. ‘억지 글짓기’가 되는 탓이다. 대신 인터뷰를 시키는 거다. “왜 너는 나를 때렸을까”라는 주제 아래 서로 캐묻게 하고 그 결과를 쓰도록 말이다. 앞에서 인터뷰는 소통 훈련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남의 말 듣기 훈련’ 아닌가. 아, 집에서도 괜찮겠다. 준석과 은서가 대판 싸우면, 다음부턴 ‘역지사지’ 인터뷰다!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 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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