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글쓰기 홈스쿨
고경태의 초·중딩 글쓰기 홈스쿨 /
[난이도 수준-중2~고1] 끝말잇기는 쓸쓸했다. 너무나 쓸쓸하여 잊을 수 없다. 몇 년 전 초봄의 화창한 오후였다. 우리는 수도권 외곽의 한 냉면집에서 낮술을 마시다 할 말이 떨어졌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끝말잇기 놀이를 시작했다. 상 위에 놓인 ‘냉면’을 먼저 던졌다. “물냉면” “면죄부” “부창부수” 초반엔 평범했다. “수…수업” “업적” 대략 이쯤에서부터 비틀어진 것 같다.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군.” 엥? 이건 문장이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들 태연했다. “군침이 도는구나.” “나 이제 어떡하지?” “지랄” “랄라리 같은 애들끼리 모여 뭐하는 게야?” “야 기분 정말 더럽다.” “다 뭐 그렇고 그런 거지, 어쩌겠어.”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조립된 문장의 끝음절을 황당하게 이어갔다. 표정만은 심각했다. 우여곡절이 많은 팀 해체를 앞두고 심사가 복잡하게 꼬인 팀원들의 살풀이 허무개그였다. 가끔 그들과 만나 그 ‘끝말잇기’의 추억을 되새길 때면 모두들 짠해진다. 집에서도 가끔 아이들과 끝말잇기를 한다. 이 끝말잇기는 쓸쓸하지 않다. 그저 싱겁다. 특히 막내 은서는 번번이 깨진다. 어휘력이 달려서다. 이 글을 쓰면서 은서와 다시 한 번 겨뤄봤다. 아빠가 먼저 “글쓰기”라는 말로 운을 띄웠다. “기…기자” “자기” “기준” “준거” “거래” “래… 내일” “일요일” “일상” “상거래” “거래는 했잖아.” “이건 상거래인데?” (일방적으로 우기면서) “안 돼. 딴 걸로 해.” “그럼 상점” “점포” “포도” “도포” “도표로 해. 도포가 어딨어?” “도포도 있어.” (한참을 생각하다) “포…음…모르겠다.” 열 번도 못하고 은서가 패배를 선언했다. 단어는 글쓰기라는 무기의 실탄이다. 그런 점에서 끝말잇기는 시간을 죽여주는 심심타파 놀이이자, 심심한 글쓰기 타파를 위한 일상적 트레이닝이라고 할 만하다. 수준을 좀 높여 ‘단어 연상게임’은 어떠한가. 글감과 관련된 단어들을 떠올리면서 글의 고리를 찾는 게임이다. 지난주 이 칼럼에서 썼듯 ‘가난한 생각’과 투쟁하려면 이 놀이부터 해봐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천안함 사태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한 뒤, 단어를 대보라고 했다. 은서의 첫 단어는 생뚱맞았다. ‘생선’이었다. “웬 생선?” “바다잖아.” 오빠는 “헐~”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또?” “침몰” 은서는 ‘생존자, 구조자, 실종, 배, 선원’을 추가로 답했다. 준석에게도 물었다. 첫 대답이 걸작이다. “정일이요.” “정일?” “김정일. 북한이 했대잖아.” 이때 은서가 끼어들었다. “오빠, 미국이 했을 수도 있대.” 준석은 “백령도, 해군, 46인, 46인의 엄마들, 미스터리”도 꼽았다. 준석은 동생 은서의 ‘생선’이라는 단어에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다운 발상이 오히려 참신한 글쓰기의 초석이 된다. 식탁에 놓인 생선반찬의 고향을 묻는 것으로부터 첫 문장을 풀어도 되지 않는가. 그러다 백령도 물고기 이야기로 넘어가고 천안함 사태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과 연결시키면 된다. 남이 쉽게 떠올리지 않는 독창적인 단어를 찾아야 독창적인 글이 나온다.
다음엔 대표 문장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수년 전 아빠가 경험한 술자리의 끝말잇기가 단어에서 문장으로 확장됐듯 말이다. “너희들이 쓰고 싶은 내용을 딱 10자 이내로 압축해봐. 이게 명확해지면 글쓰기가 쉬워져.” 준석이의 결과물은 그럭저럭이다. “저.도..당.신.의..슬.픔..알.아.요.” 은서의 것은 좀 민망하다. “천.안.함.이..침.몰.하.였.다.” 은서야 흑흑 OTL. 고경태 <한겨레>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k21@hani.co.kr ※아이들이 쓴 글을 포함한 이 글의 전문은 아하! 한겨레(ahahan.co.kr)와 예스24 채널예스에서 볼 수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