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생이 결정된다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때까지 인성의 중요한 부분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초등학교 4학년 ‘성적’이 인생 전체의 성적을 좌우한다고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은 그야말로 부모 하기 나름이다. 부모가 학습에 매달리면서 아이를 조이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4학년 때까지는 잘 따라오던 많은 아이들이 상대평가가 엄격히 적용되는 중학교에 가면 중위권의 보통 아이가 된다. 내용이 어려워지면서 점차 흥미를 잃고, 포기하는 아이도 늘어난다. 진짜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때 비로소 결정된다. 공부의 프로가 될지, 아마추어가 될지가 결정되는 시점이다. 특출한 지적 능력을 가진 일부 아동을 제외한다면 이 무렵 자신이 가진 기본기의 수준이 성적의 상당 부분을 좌우한다. 그 기본기는 초등학교 때 열심히 외운 영어단어나 실수를 줄이려고 무한 반복해서 얻은 연산능력은 아니다. 공부의 기본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조금씩 성취를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어야 학습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힘이 강해야 한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공부는 어려운 것이고 어려움을 넘어서는 도전이다. 어려운 과제에 부닥칠 때 웃으면서 견딜 수 있는 힘은 공부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가족과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학교에 가면 왠지 반항심이 생기고 주변의 유혹도 다양해진다. 부모와의 정서적인 유대가 좋은 아이들은 이런 유혹을 잘 넘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반항심 때문에 좀더 극단적인 또래문화에 빠지기 쉽다.
축구 전문가들은 늘 한국 축구는 기초가 잘 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기본기를 즐겁게 배워야 하는 시기에 시합에 휘둘리면서 결과를 얻는 데 몰두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고도 한다. 마찬가지 현상이 교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공부의 즐거움을 느끼고 공부를 위한 기본기를 익혀야 하는 시기에 문제풀이에 매달린다. 좋은 점수를 얻으려고 실수 줄이기를 익히는 것은 좀더 커서 할 일이지 초등학생이 해야 할 과제는 아니다. 부모들 역시 경쟁에 압도되면서 아이를 키우는 기본이 뭔지 점차 잊고 있다. 그러나 정말 아이가 프로가 되길 원한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눈앞의 경기에서 어떻게든 이기는 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줘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할까? 그보다는 공부를 깊이 즐길 줄 아는 기본기를 익혀줄 것인가? 현명한 지도자라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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