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이과 논술은 대체로 어렵다. 교과과정 밖에서도 출제돼 통합적 사고력 없이는 풀기가 만만치 않다. 사진은 한 대학의 2008학년도 정시모집 논술고사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시문 쉽지만 질문 어려워
교과과정 밖에서도 출제
수학-과학 통합문제 없어
교과과정 밖에서도 출제
수학-과학 통합문제 없어
이주의 교육테마 /
2008학년도 정시 이과 논술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다. 본고사 부활을 예고하는 듯한 문제라는 평가에서부터 고등학교 수준을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함께하는 교육>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현장에서 논술 지도를 해본 전문가의 특별기고를 받았다.
2005년 11월에 서울대에서 ‘통합교과형 논술’ 예시문제를 처음 발표한 때가 기억난다. 자연계열 논술 네 문제 가운데 두 문제가 과학 문제였다. 과학 전과목을 혼자 강의해온 터라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2005년 겨울, 2006년 겨울, 그리고 2007년 여름에 걸쳐 방학기간을 이용해 대치동 학원가에서 두개 반씩 시험적인 논술 강의를 해보았다. 또 그 후에는 평소 친분이 있던 대치동의 수학·과학 전문학원의 원장 및 강사진들과 팀을 만들어 수능 직후 8주간에 걸친 논술 강의도 해봤다. 초반 1주간은 자연계 학생을 400명 가까이 가르쳤고, 후반 7주간은 정시 논술고사 대비 프로그램으로 500여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논술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서울대 논술이었다. 서울대는 논술과 관련해 사교육을 받은 것이 소용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큰소리친 바 있었고, 특히 강남 논술학원의 교재를 수거해 그와 비슷한 문제는 출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었다. 서울대에서 이미 세차례에 걸쳐 공개한 예시문제 및 모의고사 문제를 최대한 세밀하게 분석해 출제 경향을 짚어내야 했다.
서울대 자연계열 논술 문제의 출제 경향을 분석해 보니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간추릴 수 있었다. 첫째, 제시문은 쉬운데 질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단 제시문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내용을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제시문을 읽다 보면 낯설지 않고 다소 만만해 보인다. 그런데 제시문 아래의 ‘질문’을 읽다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게 된다. 어지간히 학생들을 가르쳐온 나도 여러번 생각해봐야 출제의도를 감잡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시문에는 평범한 귀 단면도가 나오는데 질문에서는 포유류의 가청주파수(진동수) 범위를 공명 개념을 이용해 설명하도록 요구한다든가, 제시문에는 고1 과학교과서에서 발췌한 케플러와 뉴턴의 천체이론이 서술돼 있는데 질문에서는 추가의 자료를 주면서 은하의 질량 분포에 대해 추론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방식이다. 둘째, 교과과정 범위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2007년 상반기에 나온 주요 대학의 논술 모의고사를 보면 물·화·생·지Ⅱ 수준의 문제가 많았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자 이를 의식한 연세대·고려대 등의 주요 상위권 사립대에서는 출제범위를 물·화·생·지Ⅰ 수준으로 국한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그렇게 출제하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경우는 이런 발표를 하지 않았고, 예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에서 볼 수 있었던 물·화·생·지Ⅱ 수준의 내용이 실제 정시 논술고사에서 출제될 것이 확실시됐다. 심지어 서울대는 교과과정 이외의 주제도 버젓이 동원하곤 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했다. 앞에서 언급한 공명 응용 문제라든가, 비례성장의 한계 제시하며 ‘개미가 코끼리만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학생들은 물·화·생·지Ⅱ 가운데 수능에서 선택하는 한 과목 정도만 제대로 공부할 뿐 나머지 과목은 제대로 공부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물화생지Ⅱ 가운데에서 한두 과목만을 택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생물Ⅱ와 화학Ⅱ를 배우고 수능과목으로 화학Ⅱ를 선택한 학생이라면, 화학Ⅱ의 내용은 그래도 잘 숙지하고 있는 편이지만 생물Ⅱ에는 자신이 없고 물리Ⅱ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으므로) 아예 깡통 수준이 되는 것이다. 셋째, 진정한 수학-과학간 통합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통합교과적 문제가 많긴 하지만 대체로 과학 내 통합일 뿐, 수학과 과학을 통합시킨 문제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제시문은 과학인데 질문은 수학’인 문제들이 많다. 따라서 수학은 수학 강사가, 과학은 과학 강사가 나눠 가르쳐도 별 지장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만 과학 소재 가운데 어떤 내용이 수학적으로 응용 가능한지에 대하여 몇가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2008논술’ 20문제 출제 공통 과과정 고려없어 대체로 어려운 문제 많아 일부 대학교재 베껴 ‘눈총’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장 괴로운 점은 ‘어디까지 가르칠 것인가’라를 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학생들에게 짧은 기간 내에 물·화·생·지Ⅱ의 광범위한 내용을 다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물·화·생·지Ⅱ의 내용 가운데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 선별한다. 물리Ⅱ에서 원운동·포물선운동과 핵반응, 화학Ⅱ에서 화학평형과 산·염기, 생물Ⅱ에서 호흡·광합성의 원리와 DNA 등은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둘째, 교과과정 이외의 주제가 출제될 가능성에 대비해 교과과정에는 빠져있지만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로서 출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을 선별한다. 셋째, 고1 과학교과서에 유의한다. 고1 과학교과서의 내용의 대부분은 물화생지Ⅰ에 부분집합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일부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런 부분에서 출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같은 원칙 아래 가르칠 주제들을 선정하다 보니, 5·6차 교육과정에는 들어있었는데 7차교육과정에는 제외된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대학교수들은 ‘고등학교 수준’이라고 간주하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거의 완전한 공백으로 존재하는 부분. 대표적인 예가 화학의 콜로이드라든가 지구과학의 온실효과와 같은 부분이었다. 특히 온실효과는 출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았다. 일단 지구온난화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므로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그 원리인 온실효과는 고1 과학 교과서에 어설프게 서술되어있을 뿐, 이를 자세하게 원리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현행 7차교육과정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일단 학생들에게 ‘온실기체가 태양복사는 대체로 통과시키나 지구복사인 적외선은 상당부분 흡수한다’는 정성적 원리를 이해시키고, 지구 표면과 대기를 포함하는 간단한 모델을 통하여 온실효과가 심해질수록 지표 온도가 상승함을 정량적으로 증명할 수 있음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이, 이러려면 이 모델에 동원되는 또다른 법칙들(슈테판-볼츠만 법칙과 비인의 법칙)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의도에서 구성된 나의 온실효과 관련 강의는 내가 다룬 십여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졌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이 모델을 활용한 논술 문제에 답안을 작성해 첨삭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때마침 겨울방학을 맞아 출간한 과학논술 책에도 수록했다.
올해 서울대에서 논술고사를 치르고 문제를 공개했다. 큰 문항 네 개에 각각 작은 문항이 5개 정도씩 포함돼, 총 스무 문제 정도가 나왔다. 역시 어려운 문제가 많았고, <문항 3>의 ‘논제 5’가 명백한 물리Ⅱ 내용인 것을 포함해 공통 교과과정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서울대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특히 내 눈에 확 띈 것이 바로 <문항 1>이었다. 온실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모델이 제시됐다. 여기에 부속된 질문이 다섯 개 있었는데 2원자분자인 질소, 산소 등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는데 3원자 이상인 이산화탄소, 메탄, 수증기 등은 적외선을 흡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칠까 말까 하다가 뺀 부분이었는데, 얄밉게도 이게 나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대와 고려대의 정시 논술 문제 가운데 일부가 대학 수학 교재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베낀 것임이 밝혀졌다고 MBC와 YTN 뉴스에서 보도했다. ‘× 버릇 남 못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서울대는 이미 예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를 여기저기서 베껴 내어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논문에서 문제 소재를 베끼다가 잘못 베껴서 문제 오류가 생긴 적도 있었고, 영어로 된 문제를 잘못 번역해 출제한 적도 있었다. 그러더니 실제 정시 논술문제에서도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 범위가 맞다’ 라든가 ‘본고사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걸 보니 참으로 한심하다. 부디 내년부터는 서울대도 논술을 폐지하거나 적어도 올해처럼 망신을 자초하는 일은 없도록 했으면 한다. 이범/그래텍(곰TV) 이사, EBS 강사
논술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서울대 논술이었다. 서울대는 논술과 관련해 사교육을 받은 것이 소용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큰소리친 바 있었고, 특히 강남 논술학원의 교재를 수거해 그와 비슷한 문제는 출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었다. 서울대에서 이미 세차례에 걸쳐 공개한 예시문제 및 모의고사 문제를 최대한 세밀하게 분석해 출제 경향을 짚어내야 했다.
서울대 자연계열 논술 문제의 출제 경향을 분석해 보니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간추릴 수 있었다. 첫째, 제시문은 쉬운데 질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단 제시문에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내용을 많이 이용한다. 그래서 제시문을 읽다 보면 낯설지 않고 다소 만만해 보인다. 그런데 제시문 아래의 ‘질문’을 읽다 보면 눈앞이 캄캄해지게 된다. 어지간히 학생들을 가르쳐온 나도 여러번 생각해봐야 출제의도를 감잡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제시문에는 평범한 귀 단면도가 나오는데 질문에서는 포유류의 가청주파수(진동수) 범위를 공명 개념을 이용해 설명하도록 요구한다든가, 제시문에는 고1 과학교과서에서 발췌한 케플러와 뉴턴의 천체이론이 서술돼 있는데 질문에서는 추가의 자료를 주면서 은하의 질량 분포에 대해 추론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방식이다. 둘째, 교과과정 범위를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2007년 상반기에 나온 주요 대학의 논술 모의고사를 보면 물·화·생·지Ⅱ 수준의 문제가 많았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자 이를 의식한 연세대·고려대 등의 주요 상위권 사립대에서는 출제범위를 물·화·생·지Ⅰ 수준으로 국한하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그렇게 출제하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경우는 이런 발표를 하지 않았고, 예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에서 볼 수 있었던 물·화·생·지Ⅱ 수준의 내용이 실제 정시 논술고사에서 출제될 것이 확실시됐다. 심지어 서울대는 교과과정 이외의 주제도 버젓이 동원하곤 했으므로, 이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했다. 앞에서 언급한 공명 응용 문제라든가, 비례성장의 한계 제시하며 ‘개미가 코끼리만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학생들은 물·화·생·지Ⅱ 가운데 수능에서 선택하는 한 과목 정도만 제대로 공부할 뿐 나머지 과목은 제대로 공부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물화생지Ⅱ 가운데에서 한두 과목만을 택해 가르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생물Ⅱ와 화학Ⅱ를 배우고 수능과목으로 화학Ⅱ를 선택한 학생이라면, 화학Ⅱ의 내용은 그래도 잘 숙지하고 있는 편이지만 생물Ⅱ에는 자신이 없고 물리Ⅱ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으므로) 아예 깡통 수준이 되는 것이다. 셋째, 진정한 수학-과학간 통합 문제는 출제되지 않는다. 통합교과적 문제가 많긴 하지만 대체로 과학 내 통합일 뿐, 수학과 과학을 통합시킨 문제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 ‘제시문은 과학인데 질문은 수학’인 문제들이 많다. 따라서 수학은 수학 강사가, 과학은 과학 강사가 나눠 가르쳐도 별 지장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다만 과학 소재 가운데 어떤 내용이 수학적으로 응용 가능한지에 대하여 몇가지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2008논술’ 20문제 출제 공통 과과정 고려없어 대체로 어려운 문제 많아 일부 대학교재 베껴 ‘눈총’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장 괴로운 점은 ‘어디까지 가르칠 것인가’라를 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학생들에게 짧은 기간 내에 물·화·생·지Ⅱ의 광범위한 내용을 다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물·화·생·지Ⅱ의 내용 가운데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 선별한다. 물리Ⅱ에서 원운동·포물선운동과 핵반응, 화학Ⅱ에서 화학평형과 산·염기, 생물Ⅱ에서 호흡·광합성의 원리와 DNA 등은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둘째, 교과과정 이외의 주제가 출제될 가능성에 대비해 교과과정에는 빠져있지만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로서 출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을 선별한다. 셋째, 고1 과학교과서에 유의한다. 고1 과학교과서의 내용의 대부분은 물화생지Ⅰ에 부분집합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일부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런 부분에서 출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같은 원칙 아래 가르칠 주제들을 선정하다 보니, 5·6차 교육과정에는 들어있었는데 7차교육과정에는 제외된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대학교수들은 ‘고등학교 수준’이라고 간주하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거의 완전한 공백으로 존재하는 부분. 대표적인 예가 화학의 콜로이드라든가 지구과학의 온실효과와 같은 부분이었다. 특히 온실효과는 출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보았다. 일단 지구온난화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으므로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그 원리인 온실효과는 고1 과학 교과서에 어설프게 서술되어있을 뿐, 이를 자세하게 원리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현행 7차교육과정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일단 학생들에게 ‘온실기체가 태양복사는 대체로 통과시키나 지구복사인 적외선은 상당부분 흡수한다’는 정성적 원리를 이해시키고, 지구 표면과 대기를 포함하는 간단한 모델을 통하여 온실효과가 심해질수록 지표 온도가 상승함을 정량적으로 증명할 수 있음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이, 이러려면 이 모델에 동원되는 또다른 법칙들(슈테판-볼츠만 법칙과 비인의 법칙)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런 의도에서 구성된 나의 온실효과 관련 강의는 내가 다룬 십여개의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졌고,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이 모델을 활용한 논술 문제에 답안을 작성해 첨삭지도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때마침 겨울방학을 맞아 출간한 과학논술 책에도 수록했다.
올해 서울대에서 논술고사를 치르고 문제를 공개했다. 큰 문항 네 개에 각각 작은 문항이 5개 정도씩 포함돼, 총 스무 문제 정도가 나왔다. 역시 어려운 문제가 많았고, <문항 3>의 ‘논제 5’가 명백한 물리Ⅱ 내용인 것을 포함해 공통 교과과정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 서울대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특히 내 눈에 확 띈 것이 바로 <문항 1>이었다. 온실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모델이 제시됐다. 여기에 부속된 질문이 다섯 개 있었는데 2원자분자인 질소, 산소 등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는데 3원자 이상인 이산화탄소, 메탄, 수증기 등은 적외선을 흡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칠까 말까 하다가 뺀 부분이었는데, 얄밉게도 이게 나왔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대와 고려대의 정시 논술 문제 가운데 일부가 대학 수학 교재에 있는 문제를 그대로 베낀 것임이 밝혀졌다고 MBC와 YTN 뉴스에서 보도했다. ‘× 버릇 남 못준다’는 말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서울대는 이미 예시문제와 모의고사 문제를 여기저기서 베껴 내어 언론에 보도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논문에서 문제 소재를 베끼다가 잘못 베껴서 문제 오류가 생긴 적도 있었고, 영어로 된 문제를 잘못 번역해 출제한 적도 있었다. 그러더니 실제 정시 논술문제에서도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 범위가 맞다’ 라든가 ‘본고사가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걸 보니 참으로 한심하다. 부디 내년부터는 서울대도 논술을 폐지하거나 적어도 올해처럼 망신을 자초하는 일은 없도록 했으면 한다. 이범/그래텍(곰TV) 이사, 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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