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가끔 들려오는 외신을 보면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아이들은 농장과 공장 등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선진국의 아이들에게는 이와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인위적인 환경을 만들어 아이들이 그 속에서 ‘아이답게’ 놀고 배우기를 원한다. 학교에 가면 다시 인위적인 환경에서 ‘학생답게’ 공부하기를 원한다. 아이들은 놀이와 공부가 어떻게 현실과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긍정적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긍정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 집안일 하기는 아이가 자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몫을 한다. 건강한 자의식을 만들어 가려면 스스로를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요즘의 아이들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질 때는 오직 공부나 과제를 잘해서 부모의 얼굴에 웃음이 생겼을 때뿐이다. 어릴 때야 작은 성취로도 부모가 즐거워하므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기 쉽다.
그러나 학교에 가고 배워야 할 내용이 많아지면서 아이가 부모의 웃음을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공부에 큰 재주가 없는 평범한 아이라면 부모를 웃게 만드는 일이 훨씬 어려울 것이고, 결국 자신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 쉽다.
집안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나눠주는 것은 아이에게 자부심을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적당한 시기에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의무를 수행하고 인정을 받으면서 아이는 자신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방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다섯 살 꼬마는 자기가 중요한 일을 하고 집안을 가꾸는 데 한몫을 한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아이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계가 많은 일을 하는 현대의 가정환경에서 아이가 직접 성공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이 경우 부모가 일을 할 때 아이를 옆에 두고 일일이 가르쳐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래된 형광등을 갈아 끼우면서 위험하니까 멀리 가 있으라고 하지 말자. 형광등은 어떻게 들고 힘은 어떻게 주면 좋은지 말해주자. 세탁을 할 때 옷을 나누는 방법, 빨래를 개는 방법을 즐겁게 이야기해 준다면 아이에게는 즐거운 시간이 된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일 시키기가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원하는 효과를 모두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는 같이 일을 하면서 배우고 즐긴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이러기 위해선 부모들 역시 집안일이 귀찮고 피하고 싶은 것,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이 아니라 소중하고 자신과 가족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시키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연스런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난 비현실적 공간 속에서만 자라도록 하는 것은 아이들의 생명력을 빼앗을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아이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시키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연스런 노동의 세계에서 벗어난 비현실적 공간 속에서만 자라도록 하는 것은 아이들의 생명력을 빼앗을 수 있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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