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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선행학습 과하면 공부 질려요

등록 2007-08-30 21:12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불과 몇 년 사이에 방학은 이제 사전적 의미를 상실했다. 배움을 잠시 놓는다는 방학 기간에 아이들은 더 많은 숙제와 과외활동에 시달린다. 그나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각종 체험활동들이 아이들을 기다리지만 고학년만 되면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가는 2학기 과정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부모의 압박이 아이들을 죈다.

외국의 아동문제 전문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의 교육열도 놀랍지만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적응하고 살아남는 점이 더욱 놀랍다고 한다. 하긴 일제강점기에 조선 땅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나름의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았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동학대로부터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겨우 1.5~2배 정도의 정신적 문제만을 겪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뇌과학에서 선행학습은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인간의 뇌세포는 일차적인 자극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재차 자극을 받을 때 좀더 강한 세포 사이의 연결을 이룰 수 있다. 작은 사전 자극이 차후에 좀더 크게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미리 준비 상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낮에 가볍게 한두 잔을 마신 뒤 저녁에 술을 마시면 더 많은 술을 취하지 않고 마실 수 있음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유도반응이라고 하는데 식전에 가볍게 죽이나 수프를 먹는 것도 비슷한 생리적 기전이다.

그러나 선행학습이 효과를 가져오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이를 이해하려면 식사 전에 먹는 죽을 생각해 보면 된다. 제대로 된 정찬을 받기 이전에 먹는 죽은 첫째 소량이어야 한다. 둘째로는 식사와 크게 간격을 두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맛이 지나치게 강렬해서 정작 요리의 맛에 무감각해지게 해서는 곤란하다.

선행학습 역시 마찬가지다. 첫째, 선행학습의 양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볍게 자극을 해주는 수준에서의 선행학습은 학습의 집중도를 높여 주지만, 과도한 양의 학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과제가 되어 ‘유도 반응’을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지나치게 미리 학습을 하는 것도 소용이 없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2주 이내의 범위 안에서 반복될 때 효과가 있다. 방학을 맞아서 2학기 내용을 모두 살펴보는 것은 선행학습이라기보다는 본학습이라고 해야 맞다. 마지막으로 선행학습은 아이가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켜야 한다. 선행학습을 지나치게 하느라 학습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은 아이를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다.

2학기가 시작되었다. 실컷 선행학습을 하느라 이제 2학기 공부가 벌써 지겨워진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무 과목도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아 불안해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가진 수준에서의 선행학습이라면 지금 시켜도 늦지 않다. 불안감과 경쟁심만 부모가 버린다면 좀더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할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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