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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부산 할머니 살해 중학생 사건, 진실은?

등록 2007-05-31 14:31

추 모군은 부산시 부암동에서 7년간 할머니와 함께 생활해 왔다. 추 군의 거주지는 아파트 촌에 둘러 쌓여 있는 작은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추 모군은 부산시 부암동에서 7년간 할머니와 함께 생활해 왔다. 추 군의 거주지는 아파트 촌에 둘러 쌓여 있는 작은 동네에 위치해 있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교육청소년] [현장르포] 16살 소년이 엽기살인마가 된 이유
지난 25일, 부산에서 중학생 손자가 자신의 친할머니를 엽기적으로 살해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떠들썩했다. 다수 언론은 16살의 학생이 저지른 살인행위에 초점을 맞춰 범행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피의학생이 오랜 기간 살인을 계획해 왔다, 도벽이 있었다'는 등 추측성 난무한 글을 쏟아 놓기도 했다.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피의자를 ‘미친놈’취급하는 비난과 함께 청소년 처벌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과연 이제 막 중학교 3학년이 된 어린 손자가 자기를 키워준 할머니를 살해하고 시체토막과 방화를 시도한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 소년을 극악무도한 범죄로 이끌었는지 사건현장인 부산으로 향했다. 경찰관계자, 지역주민, 학교관계자의 말을 통해 이번 사건의 발생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요인을 되짚어 보려고 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충격과 애정결핍

이번 사건을 담당한 부산진경찰서 강력반 담당관과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동네주민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충격과 애정결핍이 가장 큰 요인이 됐을 것으로 지적했다.

추 군의 부모는 10년 전 이혼한 후 지금까지 연락두절이다. 5살 때 부모와 헤어진 추 군은 3년간 고모 집에서 생활하다 7년 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친할머니와 생활해 왔다. 그간 친척들의 왕래도 없었고, 형제도 없이 할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추 군은 성장해 갈수록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아이가 됐다. 이러한 성격 탓인지 학교생활도 잘 적응하지 못했고, 또래 친구들도 많이 사귀지 못했다. 그나마 1학년 때까지는 학교도 잘 나갔지만, 2학년 때부터는 결석도 잦았고 성적도 하위권에 맴돌았다. 그의 하루 일과는 주로 집이나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기억하는 추 군은 순수하고 착한아이였다. 말수는 적었지만, 동네 어르신을 보면 꼬박꼬박 인사를 할 정도로 예의 바랐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늦게까지 일을 하고 온 할머니의 허리도 안마해주고, 약주 한잔 했을 때는 등도 두들겨 줄 정도로 따뜻한 아이였다. 손자-할머니 관계에서 큰 갈등은 없었다

추 군의 할머니 최 모(69)씨는 부암동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학고방(판잣집) 아지매’로 불리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허름한 판잣집에서 생활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최 할머니는 지금까지 20년이 넘도록 건설현장에서 일해 왔다. 사고가 일어나기 10일 전에도 69세의 늙은 몸으로 20일 씩이나 새벽 5~6시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가정집, 아파트 등 건설현장에서 소위 ‘막노동’을 하면서 손자의 먹을 것을 챙겨주고자 애썼다.

피해자의 머리에 둔기로 10여 차례 내리친 흔적과 시신훼손이 심하게 된 점으로 볼 때 평소 할머니와 손자의 갈등이 심했을 거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다. 그래서 동네사람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 애도 순진하고 할머니도 좋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평소 최 할머니와 왕래가 잦았던 이웃집 김 할머니(75)는 “그 아지매는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김 할머니는 사건 최초의 목격자였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 최 할머니 집 근처를 갈수가 없다는 김 할머니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누가 손자한테 죽을지 않았겠나”라며 눈물을 닦았다.

물론 가끔씩 “컴퓨터만 하고 왜 집에서 꼼짝하지 않나? 밥도 좀 챙겨먹고 하제. 만날 챙겨주길 기다리노”라며 잔소리를 하기 걸 들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또 반찬투정을 하는 손자를 위해 종종 고기도 사서 구워주는 등 둘 사이에 큰 갈등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 추 모군은 160cm 초반의 키에 몸무게가 70kg가량 나갈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조손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의 무관심

추 군의 집은 불에 타다 만 이불과 깨진 유리창 등 아직 정리되지 못한 채 사건현장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추 군의 집은 불에 타다 만 이불과 깨진 유리창 등 아직 정리되지 못한 채 사건현장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하지만 이러한 할머니의 노력에도 사춘기 중학생 손자의 마음을 잡아주기는 부족했나 보다. 추 군은 또래 친구들과 달리 부모의 관심과 뒷바라지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외로움도 많이 느끼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막노동을 해서 벌어오는 돈과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게 제공되는 국가보조금 20~30만원(1인기준)으로는 용돈도 넉넉하게 받을 수 없었고, 사고 싶은 것도 마음껏 살 수 없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친구나 가족도 없었다. 그나마 하나뿐인 가족인 할머니는 돈벌이는 위해 종일 집을 비우니 추 군은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몇몇 신문에서는 그가 PC방 등을 전전하며 폭력적 성향의 게임에 몰입해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단, 흔히 중학교 남학생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출입하는 것과 달리 추 군은 주로 집에서 혼자 게임을 즐겼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주지와 학교주변 PC방 6곳을 방문한 결과, 경찰이 탐문조사차 두고 간 추 군의 얼굴을 기억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이웃주민도 사건 발생 전 며칠 가출 한 것을 제외하면 추 군이 밖으로 도는 성격은 아니라고 했다.

학교에서도 외톨이, 마음 나눌 친구 한명 없어

학교관계자나 주변 친구들이 말하는 추 군의 평소 모습도 유별나거나 폭력성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잦은 결석과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와 어울린 친구들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추 모 군의 현장검증이 있은 다음날인 29일, 추 군이 다니던 학교를 찾았을 때 교사와 학생들은 모두 이야기하기 꺼려했다. 추 군의 학교는 할머니와 함께 살던 거주지에서 어른걸음으로 약 20분정도 거리, 산을 깎아 만든 듯 아파트촌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만난 이 학교 교장은 추 군이 평소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고 몇 번 결석 한 적 있지만 장기간 빠진 적은 없으며, 3~4일 빠진 것도 몸이 아파서였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교장은 사건보도로 인해 학교에 있는 다른 학생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추 군의 평소 학교 생활상을 알고자 하굣길 학생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왠지 모를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3학년인가요? 혹시 ○○○이라는 학생 알아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내 “모른다”라고 답하고 자리를 피했다. 뭔가 숨기는 것이 역력해 보이는 이들은 저만치 걸어가다가 “선생님이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라고 말하며 도망치듯 가버렸다. 수십 명의 학생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누구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말하지 말랬어요.”, “학교에 자주 안 나와서 잘 몰라요”라는 말뿐.

따뜻하게 감싸준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조사를 받고 있는 추 군(왼쪽)
조사를 받고 있는 추 군(왼쪽)

추 군과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조영길(51, 통장)씨는 이번사건의 원인을 어른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돌렸다. 한창 사랑받고 자랄 나이에 혼자서 방치된 결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는 것.

현재 추 군이 살고 있는 부산 부암동의 통 지역 한 곳만 230여 가구 중 30곳이 조손가정이다. 부모의 이혼이 증가하면서 할머니나 할아버지에 맡겨지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조손가정은 대개 조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없지만, 자식들이 살아있어 영세민 혜택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손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자연히 건설현장에 뛰어들거나 쓰레기 등을 줍는 일로 돈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대화와 고민 상담이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추 군의 살해 동기인 ‘할머니의 잔소리’는 노인이 사춘기 소년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서툰 방식이었을 것이다. 만약 추 군이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화목하게 자랐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설사 똑같은 살인을 저지를지언정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인터넷 사체유기방법을 검색하는 것으로 외부의 도움을 받기보다 자수를 택했을 지도 모른다.

한편 조 통장은 추 군이 죗값을 치르고 나오면 동네 사람들이나 유관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구명운동을 펼쳐 그가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나이도 어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만큼 사회에 적응하고 살 수 있도록 주변의 관심과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몹쓸 짓을 한 아이에 대한 분노만 남아있고 그 원인이나 사회적 책임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저지른 범죄에 대해 자극적인 ‘결과’만 집중하고 ‘왜 그렇게 됐는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언론과 사회의 모습을 지적했다.

김지훈 기자 news-1318virus@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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