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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날 잡아주는 친구 한명만... 있었다면˝

등록 2007-04-04 17:36수정 2007-04-04 17:42

엄지수(20)씨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엄지수(20)씨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도시속 작은학교에서 새길 찾은 엄지수(20)씨
초등학교 때부터 ‘짱’으로 불리며 교사들도 포기했던 문제아가 변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 입술 중앙에 박힌 은빛 피어싱, 까만 재킷에 걸친 주황빛 스카프, 날카로운 눈빛… 첫 만남에서 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말을 빌리자면, 범접할 수 없는 ‘포스’ 그 자체였다.

3월 31일 신당역 앞에서 엄지수(20)씨와 만나 인터뷰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집 근처임에도 주변지리를 잘 모르는 그 덕분에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를 걸어 겨우 왕십리 한 패스트푸드점에 자리 잡았다. 걷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 또 이런 인터뷰 해 보겠느냐?”며 재밌을 것 같아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말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흔히 비행청소년, 보다 전문적 용어로 말하자면 ‘위기 청소년’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지수 씨의 경험담을 통해 당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의 결정적 변화요인을 진지하게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겉모습만으로 사람 판단하지 마세요"

지수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 저금통을 들고 가출한 것을 시작으로 소위 ‘나쁜 길’로 빠졌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마트에서 게임 CD를 훔쳤고, 우연찮은 싸움에서 이겨 학교 ‘짱’이 됐다. 그 후 중·고등학교 때는 ‘일진’이 되어 술도 마시고 오토바이도 타고, 파출소에도 가봤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그도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오히려 학교폭력 피해자에 가까웠다. 상계동에서 신당동으로 전학 오기 전까지, 그는 주로 형들에게 맞으면서 지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싸움 잘하는 애들은 으스대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때리는,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그러던 것이 전학 이후 때리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원한 건 아니지만, ‘짱’이 된 후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건드리는 사람도 없고, 영웅이 된 듯 좋았다.

그러나 지수 씨는 늘 외로웠다. 또래보다 몸집이 컸던 그는 주로 형들과 어울려 다녔다. 지금 키(182cm)가 중2 때 키라니 그럴 만도 하다. 더욱이 초등학교 때 마트 도난사건 당시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나서 친구를 믿지 않았고, 자기보다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회상하면 ‘당시에 마음 통하는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길로 빠지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고등학교 진학 이후 그의 외모에 대한 선입견은 곧 차별이 되어 돌아왔다. 지수 씨에게 학교는 배움과 소통의 공간이기보다 이질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곳이었다. 특히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학생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똑같이 잘못을 해도 다 내 잘못이 되고, 잘 되고 좋은 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몫이 되니까요. 오히려 ‘범생이’들은 소심하고 공부 외에 관심이 없는 반면 소위 ‘노는’애들은 자기표현이 강해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더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짱’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곳, <서대문 도시 속 작은학교>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나를 변하게 해준 작은학교
하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하는 작은학교
종례시간이 평균 30분인 작은학교
전교생이 20명인 작은학교
그래서 더 인간적인 작은학교
학생을 위해 해줄 순 있는 건 뭐든지 해주려고 노력하는 작은학교................................ 〈자서전 中 ‘내가 다닌 작은 학교〉

반면 일반학교와 달리 ‘서대문 도시 속 작은학교(이하 작은 학교)’에서 다름은 이해와 배려가 되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피어싱을 했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도교사도 성적과 상관없이 나쁜 점은 바로잡아 주고 잘하는 점은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했다.

사실 그가 잦은 결석으로 출석 일수가 모자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대안학교 진학을 권유받았을 때, 두발과 용의 복장이 자유롭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졸업장은 본교 이름으로 나온다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또한 실제 수업도 재밌고, 게임기까지 갖춘 학교시설이 썩 마음에 들었다. 학교 가는 걸 기대해 본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갈등도 있었다. 그의 예상과 달리 평균 30분에서 1시간 이상 진행하는 종례로 항상 5시~6시가 돼야 수업이 끝났고, 너무 잦은 학교행사가 싫었다. 그래서 3학년에 올라가면서 학교를 그만둘까 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두면 당장은 편하고 좋지만 몇 년 후에 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또 여기서 낙오되면 사회에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자신을 변화할 수 있는 새롭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작은 학교는 처음으로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알게 해준 곳이었다.

“누군가에게 신뢰받는 기분, ‘아~ 믿음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일주일간 200km를 걸었던 도보여행에서 안전요원이라는 중요한 책임을 졌는데, 이것도 선생님이 나를 믿기에 역할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술에 취한 친구들을 집에 잘 돌려보내는 것도 제 책임이 됐어요. 또 수업시간에 눈치 없이 떠드는 후배들은 제지하는 역할도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분위기도 좋아지고…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기 싫어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엄지수(20)씨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엄지수(20)씨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또한 작은 학교에서는 나만 알고 살았던 지수 씨에게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잘못을 하면 같이 혼나고 함께 책임지는 것을 통해 닫았던 마음을 서서히 여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일반학교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한 소통을 통해 변화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는 작은학교를 졸업하면서 <반항 속에서 얻은 자유, 자유 속에서 얻은 도전>이라는 자서전도 발간했다. 처음에는 하기 싫은 걸 왜 시키나 짜증도 나고, 옛날 일을 기억해야 하는 일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책이 나온 후 20여 년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 참 좋았다. 하지만 다시 또 쓰라고 하면서 절대 못 쓸 것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에서 그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머리도 자르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장사하고 싶어요.”

엄지수(20)씨는 올해 오산대학교에 입학해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호텔에서 경험을 쌓아 가게를 차릴 생각이다. 고등학교 때 알바 경험을 통해 막연히 ‘장사하고 싶다’는 바람은 대안학교에서 진로상담을 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그동안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뭘까’라는 고민보다 ‘싸움 빼고 잘하는 게 없다’는 남들의 인식 속에서 살아왔던 그에게 작은학교는 미래를 꿈꿀 기회도 줬다.

한편 그는 중3 때부터 길러왔던 긴 머리카락도 곧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 보면 머리를 꼭 길러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주위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깐 더 하고 싶은 반발심이 컸다. 그러나 머리 때문에 포기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기아자동차 후원 히말라야 탐방 청소년로체원정대도 떨어지고……. 지금까지 반항에서 자유를 꿈꿨다면 이제는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질 때이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그의 말처럼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그의 얼굴에는 세상을 향해 막 날개 짓 하는 스무 살의 풋풋함이 묻어났다.

김지훈 기자 news-1318virus@hanmail.net
ⓒ2007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즐겨찾기 -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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