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장은 1947년 충남 공주에서 났다. 몰락양반의 후예로 가세가 급격히 내려앉아 일가가 상경했다. 3년 동안 ‘입주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교(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미 콜롬비아대 교수와 서울대 교수를 지냈으며 2002년부터 서울대 총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중앙은행론>, <거시경제론>, <경제학 원론>(조순 전성인 공저), <한국경제 아직도 멀었다> 등이 있다.
다음달 퇴임 앞둔 정운찬 서울대 총장 <한겨레> 인터뷰
4년 전 이맘때쯤 그가 서울대 총장이 됐을 때 그의 지지율은 50% 안팎이었다고 한다. 퇴임을 눈앞에 둔 지금, 대학 구성원들의 지지는 “적어도 70% 이상으로” 올라섰다고 한다. 다음달 퇴임하는 정운찬(59) 서울대 총장을 만나려고 이 대학 본관에 자리한 총장실을 찾았을 때 그는 큰 숙제를 갓 마친 학생처럼 홀가분해 보였다.
정 총장은 요즘 온나라를 뜨겁게 달군 월드컵 열기에 대해 우선 일침을 가했다. “한국 사회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사회 인프라를 구축했고 국제사회에서 위상도 높였지만, 한국 경제를 발전하게 했던 투지를 올림픽과 월드컵이 감퇴시켜 놓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축구를 스포츠 그 자체로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애국심으로 좋아하는 건 곤란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런 쏠림 현상을 정치에도 대입해 설명했다. 2004년엔 열린우리당으로 다 가더니 이번엔 한나라당으로 죄다 몰리는 쏠림 현상이 온나라가 응원 열기에 들뜨는 월드컵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온나라 들뜬 월드컵 열기 ‘싹쓸이’ 선거 결과 우리나라 쏠림현상 반영”
정 총장은 4년 임기 동안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산학협력 모델을 띄워 올렸고, 입학정원을 줄이고 학과를 합치는 구조조정도 해냈다. 경영 수완도 발휘했다. 4년 동안 현금만으로 1600여억원의 발전기금을 모았다. “하루에 1억원 이상씩 번 셈”이다. 입학정원 감축은 학부와 대학원 모두 700명씩 했다. 대학원 강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한 해 250억원씩 박사과정생의 절반인 1700여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돈 걱정 없이 공부하도록” 학비 전액과 생활비까지다.
넓게 기초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서 추진했던 ‘학부대학’이 저항에 부닥쳐 성공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다고 했다. 역사학과 정치외교학 분야 등에서 학과 통폐합을 이뤄내지 못한 것도 그렇다.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서울대 책임론이 떠올랐던 건 그에게 하나의 고비였다.
지역별 수험생 수에 비례해 신입생을 뽑는 지역균형선발 전형의 도입은 그의 성취로 평가된다. “지역균형선발의 최대 목적은 서울대 다양화입니다. 서울대가 지식 전수기관을 넘어 지식 창출기관이 되려면 우선 구성원이 다양화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수 신규 채용에서도 타교 출신을 3분의 1 이상 뽑았고, 외국 교수·외국인 학생도 가능한 한 많이 들였지요. ‘동종 교배’로는 세상이 발전할 수 없으니까요.”
“지역균형선발 목적은 구성원 다양화 다른 대학도 늘렸으면”
2008 대입제도를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대학 자율론을 앞세워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대입시에 의한 고교 교육과정 왜곡을 우려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 총장의 그런 모습을 ‘엘리트주의’로도 읽었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그의 ‘동종 교배 방지론’은 뜻밖이다. 갖가지 나물과 밥에 고추장까지 고루 섞인 비빔밥처럼 다양해야 서로 다른 경험과 새로운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2002년 총장 취임 직후 그는 신입생을 구·군별로 할당하는 지역할당제로 뽑겠다고 선언했다. 교수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고, 결국 지역균형선발로 절충했다. 서울대는 2008년에는 정원의 3분의 1을 지역균형선발로 뽑는다. 정 총장은 내심 정원의 50% 이상으로 늘렸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까지는 안 되더라도 앞으로 확 확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주요 대학들이 지역균형선발을 대폭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창조성의 밑심이라는 소신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더니 50명 중에 17명이 경기고 출신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같은 경기고 출신에게서보다 다른 학교와 시골 친구들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나에게 ‘운찬아, 아버지 성묘 안 가나? 같이 가자!’ 하는 녀석은 시골에서 온 친구였거든요. 밖을 보아도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지역쿼터·국가쿼터·아시아쿼터 등 쿼터제가 다 있어요. 중국의 주요 대학들은 아예 지역할당제를 합니다. 그래서 총장이 되자마자 옛날부터 생각했던 것을 해버린 겁니다.” 지역균형선발 전형은 성공했다. 정시모집 학생보다 성적이 좋다는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고교 평준화 제도에는 반대한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력을 개발시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부잣집은 대입시를 보는 18살까지 완벽한 지원이 가능하지만 가난한 집은 그게 어렵다”는 논리다. 이런 그의 철학은 ‘고교 입시 부활론’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그의 교육관을 두고는 비판도 무성하다. “서울대 해체해도 대학 서열 안 깨져 기업이 골고루 뽑아야”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서울대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통해 대학 서열구조를 깨고 대입시 과열을 막자’는 견해에 대해 ‘서울대 해체론’이라며 강하게 일축했다. “서울대를 없앨 게 아니라, 몇 개 대학을 집중 지원해 서울대 같은 학교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서열구조가 뭐겠습니까? 서울대 나온 이들이 사회 주요층을 독식한다는 거죠. 이건 할 수 없어요. 대입시에서 줄 세워 뽑는다지만 사회에서도 줄을 세워 사람을 뽑고 있어요.” 대학 서열구조를 깨려면 대학·대입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나 기업이 인재를 대학별로 골고루 채용하면 된다고 했다. “사람을 쓸 때는 조금은 모자라도 다른 배경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뽑는 게 낫습니다.” 서울대가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하고도, 그만큼 질 높은 교육을 해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최근 대학교육이 바뀐 걸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펄쩍 뛰었다. “서울대가 수많은 인재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유수의 30~40개 대학을 방문했는데, ‘서울대가 과학논문 인용색인(SCI)으로는 세계 31등인데 런던타임스 순위로는 93등밖에 안 된다’고 하면 다들 ‘농담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세계에서 서울대 높이 평가합니다. 93등밖에 안 된 건 노벨상 수상자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외국교수·외국학생 비율이 낮아서 그런 겁니다. 이제 곧 50위권에 들어간다고 자신합니다.” 그는 더 이상의 경제 개방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교육 개방은 더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케인스의 말을 인용했다. ‘사상·종교·예술·문학은 될 수 있으면 국제적인 것이 좋지만, 물건(공산품)은 될 수 있으면 국산이 좋다.’ “지나친 말이지만 역시 물건 만드는 건 노동·고용과 직접 관계가 있으니 신중해야죠. 하지만 특히 대학은 상당히 개방돼야 해요. 대학이야말로 외부 충격을 안 받는 곳입니다. 구조조정을 확실히 해서 일부 대학은 문 좀 닫아야 합니다.” 다음달 말이면 그는 다시 평교수로 돌아간다. 그를 두고 정치 진출설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는 “아직 정치 생각은 없다”고 했다. 글 허미경 이수범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08 대입제도를 둘러싼 논쟁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대학 자율론을 앞세워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대입시에 의한 고교 교육과정 왜곡을 우려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 총장의 그런 모습을 ‘엘리트주의’로도 읽었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그의 ‘동종 교배 방지론’은 뜻밖이다. 갖가지 나물과 밥에 고추장까지 고루 섞인 비빔밥처럼 다양해야 서로 다른 경험과 새로운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2002년 총장 취임 직후 그는 신입생을 구·군별로 할당하는 지역할당제로 뽑겠다고 선언했다. 교수들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고, 결국 지역균형선발로 절충했다. 서울대는 2008년에는 정원의 3분의 1을 지역균형선발로 뽑는다. 정 총장은 내심 정원의 50% 이상으로 늘렸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까지는 안 되더라도 앞으로 확 확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뿐만 아니라 주요 대학들이 지역균형선발을 대폭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창조성의 밑심이라는 소신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196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더니 50명 중에 17명이 경기고 출신이었어요. 돌이켜보면 같은 경기고 출신에게서보다 다른 학교와 시골 친구들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나에게 ‘운찬아, 아버지 성묘 안 가나? 같이 가자!’ 하는 녀석은 시골에서 온 친구였거든요. 밖을 보아도 미국 유수의 대학들이 지역쿼터·국가쿼터·아시아쿼터 등 쿼터제가 다 있어요. 중국의 주요 대학들은 아예 지역할당제를 합니다. 그래서 총장이 되자마자 옛날부터 생각했던 것을 해버린 겁니다.” 지역균형선발 전형은 성공했다. 정시모집 학생보다 성적이 좋다는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그런 그가 고교 평준화 제도에는 반대한다. “교육은 개인의 잠재력을 개발시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부잣집은 대입시를 보는 18살까지 완벽한 지원이 가능하지만 가난한 집은 그게 어렵다”는 논리다. 이런 그의 철학은 ‘고교 입시 부활론’으로까지 연결된다. 그래서 그의 교육관을 두고는 비판도 무성하다. “서울대 해체해도 대학 서열 안 깨져 기업이 골고루 뽑아야”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서울대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하고,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통해 대학 서열구조를 깨고 대입시 과열을 막자’는 견해에 대해 ‘서울대 해체론’이라며 강하게 일축했다. “서울대를 없앨 게 아니라, 몇 개 대학을 집중 지원해 서울대 같은 학교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서열구조가 뭐겠습니까? 서울대 나온 이들이 사회 주요층을 독식한다는 거죠. 이건 할 수 없어요. 대입시에서 줄 세워 뽑는다지만 사회에서도 줄을 세워 사람을 뽑고 있어요.” 대학 서열구조를 깨려면 대학·대입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정부나 기업이 인재를 대학별로 골고루 채용하면 된다고 했다. “사람을 쓸 때는 조금은 모자라도 다른 배경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뽑는 게 낫습니다.” 서울대가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하고도, 그만큼 질 높은 교육을 해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최근 대학교육이 바뀐 걸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펄쩍 뛰었다. “서울대가 수많은 인재를 키웠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유수의 30~40개 대학을 방문했는데, ‘서울대가 과학논문 인용색인(SCI)으로는 세계 31등인데 런던타임스 순위로는 93등밖에 안 된다’고 하면 다들 ‘농담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세계에서 서울대 높이 평가합니다. 93등밖에 안 된 건 노벨상 수상자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외국교수·외국학생 비율이 낮아서 그런 겁니다. 이제 곧 50위권에 들어간다고 자신합니다.” 그는 더 이상의 경제 개방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교육 개방은 더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케인스의 말을 인용했다. ‘사상·종교·예술·문학은 될 수 있으면 국제적인 것이 좋지만, 물건(공산품)은 될 수 있으면 국산이 좋다.’ “지나친 말이지만 역시 물건 만드는 건 노동·고용과 직접 관계가 있으니 신중해야죠. 하지만 특히 대학은 상당히 개방돼야 해요. 대학이야말로 외부 충격을 안 받는 곳입니다. 구조조정을 확실히 해서 일부 대학은 문 좀 닫아야 합니다.” 다음달 말이면 그는 다시 평교수로 돌아간다. 그를 두고 정치 진출설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는 “아직 정치 생각은 없다”고 했다. 글 허미경 이수범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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