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현장에서
대학 신입생을 지역별로 할당해 뽑는 지역할당 선발제는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소신이라고 한다. 안팎의 난관에 부닥쳐 정 총장은 결국 지역할당제 대신 지역균형 선발제를 도입했다. 할당제에는 못미치지만 지역균형 선발은 학생부 중심으로 지역별 수험생 수에 비례해 신입생을 뽑는다는 점에서 선진적인 제도다. 2일 주요 대학들이 모든 전형에서 학생부를 50% 이상 반영한다는 공동성명은 고교 교육 정상화를 바라는 이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날 발표에는 서울대가 선도적으로 도입한 지역균형 선발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소외계층배려·지역균형발전 등을 위한 전형 도입’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서울대는 이날 발표 직전 열린 대학들 모임에 불참했다. 서울대의 입시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서울대 이름은 (공동성명 명단에서) 빼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에 교육부 쪽은 “몇차례나 논의가 있었고, 바로 전날 서울대 총장과 교육부총리가 합의한 사항”이라고 펄쩍 뛰었다. 부총리와 총장은 만났는데 실무 선에서 이날 모임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는 말도 들린다.
서울대는 모임 불참 까닭을 “학생부 50% 이상 반영 등은 이미 정해진 방침인데 새로 발표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내용이 제대로 알려진 바 없고 수험생들에겐 중요한 정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울대가 모임에 불참한 진짜 이유는 독자적으로 발표하려 했는데, 다른 대학과 똑같이 발표하는 모양새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서울대 쪽도 “모든 대학들이 똑같이 모여서 한다는 게 모양이 좀 그렇다”고 했다. 발표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문제삼은 것이다. 모양새를 문제삼는 그 내면에 서울대의 어떤 권위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날 취재 현장에서 서울대가 학생부를 50% 이상 반영하는 건지 아닌지 잠시 혼란스러웠던 기자로선 ‘서울대 반발’ 식의 보도에 수험생들이 느낄 혼란이 더 걱정스럽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연재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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