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밖
“얘들아, 선생님 글 신문에 난 뒤 유명해진 거 있지? 어제 잡지사에서 전화 왔다는 거 아냐. 인터뷰하자고” “선생님, 절대 인터뷰하지 마세요” “왜애?” “아마 선생님 신문에 난 사진 보고 그런 것 같은데, 선생님은 사진이 훨 낫거든요. 그리고 선생님 목소리 직접 들으면 아마 잡지 말고 텔레비전에 나가라 그럴 거예요” “그건 또 왜애?” “텔레비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나를 아예 갖고 논다. 그래도 난 기분 좋다. 왜냐. 애들이 나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숲 속에서 나를 보고도 겁 안 먹고 다가오는 사슴·새·다람쥐가 있다면 그 얼마나 동화 같은 이야기인가? 반면에 아이들이 피하는 선생, 옆에 있어도 대화하기 싫은 선생, 그처럼 불쌍한 선생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선생님, 500원만 꿔 주세요.” 하는 아이들 얼마나 귀엽냐 이말이다. 비록 꿔간 돈 갚을 생각을 안 하지만 그건 또 한편으로 나를 부자로 알아준다는 얘기. 그리고 아이들 말도 맞는 게, 솔직히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세상에 이런 일이’다. 참고로 내 목소리는 어리광 비슷한 데다, 술 취한, 거기에다 애들 말로는 ‘내시’ 목소리 같다나 어떻대나...
그런데 동료 선생들은 아이들에 대한 나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해 여기기도 한다. 오냐오냐하니까 애들 버릇 없어진다고 말이다. 하긴 시건방진데다, 안하무인이요, 캭, 캭 가래침 함부로 뱉고, 음료수 깡통·빵봉지 아무 데나 휙휙 버리고 선생님 공경할 줄 모르는 그런 놈들은 그저 두들겨 패 가지고 “아이고, 선생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싹싹 빌 때까지 패고 또 패야 한다.
그러나 숨 한번 휴우, 고르고 난 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또 아니다. 모든 잘못이 애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무슨 얘기냐 하면 애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일년 내내 똑같이 떠들고 장난치고 또 버릇없다. 그런데 유독 오늘 야단치는 이유는? 그건 바로 오늘 유난히 예민하기 때문에, 즉 오늘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에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일에 대해 그렇게 과민 반응한다는 얘기 아닐까? 그리고 사실 우리 아이들, 말 그대로 ‘애들’ 아닌가. 나이도 어린 데다 철까지 없는 철부지들 아닌가. 그깟 ‘문법’ 하나 몰라 쩔쩔매는 꼴하며, 영어, 수학 시간이면 그 말 많던 놈들도 찍소리 하나 못하는 불쌍한 놈들 아닌가. 어찌됐든 난 우리 아이들 언제 봐도 가엽고 또 귀엽다.
“선생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선생님은 텔레비전 말고 차라리 영화에 출연하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영화?” “네, 영화 출연하시면 아마 대박날 거예요.” “그~래?” “‘백묵가루 휘날리며’ ‘올드총각’‘누구나 띨띨한 면은 있다’ ‘친절한 담탱이’” “?” “‘돈 많은 이모 있으면 소개시켜 줘’ ‘가문의 수치’‘담임의 남자’” “너, 이리 나와!” “‘담임아 노올자’도 있는데...”
전성호/서울 휘문고 교사 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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