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출판, 봉사단체 설립, 애플리케이션(앱) 제작 기획, 미술 전시회….’ 국제학교를 다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이 쌓아올린 ‘스펙’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표절·대필 의혹이 숨어 있고, 의혹의 줄기는 케냐를 비롯한 제3세계 청년들의 지적 착취 산업으로까지 이어진다. 한 장관의 딸은 연구 윤리를 어지럽히는 약탈적 저널을 활용하고, 미국 입시전문가인 이모 진아무개(49)씨의 딸들과 스펙을 품앗이해왔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진씨가 활동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등 실리콘밸리 인근을 방문했다. 여기는 한 장관의 딸과 ‘스펙 공동체’를 이룬 진씨 딸들이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 명문 대학을 향한 아시아인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편법적인 기회 획득에 분노하며, 세상의 모든 출발선은 같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미국 명문 대학이라는 학벌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 한국 사회 엘리트들이 동원하는 ‘글로벌 스펙 산업’의 실태와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세 차례에 걸쳐 담는다.
“다른 나라에 비해 (대필을 의뢰하는)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어리고 주로 에세이를 요구합니다.”
지난 2일 <한겨레>가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Fiverr)에서 만난 케냐인 ㄱ씨의 말이다. 자신을 대학교수라고 소개한 그는 ‘학술적 글쓰기’(academic writing)를 부업으로 한다. 3월3일~4월11일 한달 동안에만 5명 이상의 한국인을 위해 23건의 대필 작업을 했고 이 중 13건은 고등학생, 9건은 대학생, 1건은 직장인의 의뢰였다. 전자책, 논문, 에세이, 리포트 등 유형은 다양했다. ㄱ씨는 “대필의 목적을 먼저 물어본 적은 없지만, 일부 학생은 미국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최근 ‘계약 부정행위’(contract cheating)라고 하는 글로벌 학술 대필 산업이 여러 나라에서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에세이 공장’(essay mill)이라고 하는 서비스 업체들이 영어권 국가 대학생들의 과제를 대행해주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술 대필 산업의 대표 국가는 케냐다. 지난해 9월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는 “런던이나 뉴욕에 있는 학생이 돈을 주고 에세이를 쓴다면 케냐에서 이 작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을 담은 ‘부정행위를 돕는 케냐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와 방송사 <시비에스>(CBS) 등도 지난해 케냐의 대필 작가들이 미국 대학생의 과제를 대행해주는 실태를 취재했다. <한겨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이 ‘약탈적 저널’(돈을 주면 논문을 출판해주는 저널)에 게재한 논문을 케냐인이 대필한 정황을 보도(
5월9일치 1면 ‘한동훈 딸 논문 대필 정황…케냐 작가 “내가 했다”’)한 바 있다. 교육 수준이 높지만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낮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케냐가 대필 산업의 거대한 공급자 역할을 맡은 것이다.
<한겨레>가 5월31일~6월7일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52명의 작가에게 ‘한국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의 글쓰기 작업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지’를 취재했다. 그 결과 영어권 국가 대학생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하던 대필 산업이 한국의 국외 대학 입시에까지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전제로 6명이 인터뷰에 응했는데, 5명이 한국인 대필을, 1명이 글 지도를 경험했다고 했다. 이들의 국적은 케냐(3명), 파키스탄(2명), 싱가포르(1명)였다.
한국인이 의뢰하는 글은 고등학교 과제나 대회용 에세이가 주를 이룬다. 케냐인 ㄱ씨는 “(대학) 입학시험 관련이나 (학교) 숙제 등을 요구하는데 문법이나 어휘에 신경 써주기를 바라고 특히 표절에 민감했다”고 말했다. 18살부터 23살까지 5명의 한국인에게 대필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고 밝힌 케냐인 ㄴ씨는 “문학, 경영, 과학, 수학, 경제학 등 분야는 다양했다. 대부분 완성된 글을 고치는 교정이 아니라 전체를 써주는 대필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는 “중일전쟁의 원인과 시사점, 삼성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에세이 등을 썼다”고 주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한국 고등학생 2명 정도의 의뢰를 받은 적이 있다는 파키스탄인 ㄷ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에 가고 싶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의 에세이나 리포트 의뢰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편입을 돕거나 논문 작성을 대필한 사례도 있었다. 싱가포르인 ㄹ씨는 2020~2021년 한국 대학생 2명에게 논문 4건과 대입 에세이 1건을 대필해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그중 1명은 미국 뉴욕의 한 대학에 지원했다고 했다. 대학 강사라고 밝힌 케냐인 ㅂ씨는 “중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대학생 1명의 대필을 맡고 있다. 보통 과제 개요와 함께 1500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의뢰한다. 학위 논문 작성도 도와달라고 했지만, 내 일정이 바빠서 거절했다”고 전했다. 대학생 등 한국인 4명 정도와 함께 일했다고 밝힌 파키스탄인 ㅁ씨는 대필이 아닌 글쓰기 지도를 의뢰받았다고 했다. 그는 “(지도를 요청한) 글이 대회용인지 숙제용인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입시나 시험과 관련한 내용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글로벌 학술 대필 산업의 규모는 현재 추정하기 어렵다. 미국 포트루이스대학의 스테퍼니 오잉스와 제니퍼 넬슨 교수가 2014년 논문 ‘에세이 산업’에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대필 등 산업 규모를 최소 1억달러(약 1280억원) 수준이라고 밝혔지만, 대필 거래가 대부분 음성적으로 이뤄져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다만 공급자와 수요자를 이어주고 국가 간 연결·결제를 쉽게 해주는 정보기술(IT)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글로벌 학술 대필 산업 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는 점점 더 탄탄해지고 있다.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글로벌 학술 대필은 매혹적이다. 프리랜서 고용 플랫폼에서 대필 작가와 쉽게 접촉할 수 있고 글을 의뢰해 빠르게 납품받는데다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케냐인 ㄱ씨는 “보통 글을 완성하는 데 1~2일 걸린다”고 했다. 싱가포르인 ㄹ씨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르지만 작업을 끝내는 데 7일 정도 걸렸다. 고객들이 요청하는 날짜보다는 더 빠르게 마감했다”고 말했다. 가격은 케냐인 ㄱ씨는 “보통 한쪽(300단어)에 20달러(약 2만5천원)”라고 밝혔고, 케냐인 ㄴ씨는 “일에 따라 다르지만 6달러(약 7500원)를 받은 경우도 있다. 많게는 100달러(약 13만원)까지 받는다”고 했다. 싱가포르인 ㄹ씨는 장당 75달러(약 10만원)를 받는데 “다른 프리랜서들에 비해 많지만 질이 훨씬 좋다”고 자신했다.
특히 표절과 다르게 대필은 문장이나 단어 등을 분석해 적발하기도 어렵다. 실체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학술적 부정행위가 앞으로 훨씬 더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영국 스완지대학의 필 뉴턴 교수는 2018년 논문 ‘계약 부정행위는 고등교육에서 얼마나 증가하고 있는가’에서 1978년부터 2016년까지 총 5만4514명의 대학생을 표본으로 한 65개의 관련 연구를 분석했는데, 대필 등을 해본 학생 비율은 36년간 평균 3.52%에 그쳤지만, 2014년 표본에서는 그 수치가 15.7%로 치솟았다. 이를 전세계 대학생 수에 적용하면 2014년 계약 부정행위 경험자가 31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더 쉽게 대학생들이 대필 산업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학술 대필 산업의 보편화는 미국 명문대 입시에 필요한 ‘스펙’인 에세이 대회 출품이나 논문 작성 등을 바라는 한국의 중·고등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영어를 공용어나 준공용어로 쓰는 아프리카·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글로벌 학술 대필 산업은 ‘유망 업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키스탄인 ㄷ씨는 “코로나19로 회사가 직원을 감축하면서 직장을 떠나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필 일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산 등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 대필 산업이 대유행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필로 한달에 500달러(약 64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리는데, 2020년 파키스탄 1인당 연간 국민총소득(GNI) 1280달러(약 160만원)의 절반가량을 한달 만에 버는 셈이다. 케냐인 ㄴ씨의 월수입은 1500달러(약 192만원)인데, 이는 케냐 1인당 연간 국민총소득(1760달러·225만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그는 “높은 실업률 때문에 대필이 유망 산업으로 떠올라 많은 젊은이가 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지식공유연대 소속 김명환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글로벌 학술 대필 산업을 “교육 수준이나 학벌이 양극화 시대에 한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다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또 “중국이나 인도, 한국처럼 사회적 지위 상승 욕망이 강한 나라에서 상류층이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과정에서 대필 시장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며 “국외 대학 입시 문제이긴 하지만 그 학생 중 상당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얻기에 결국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어떻게 취재했나 = 대필 작가 접촉에는 국제적인 프리랜서 고용 플랫폼인 ‘피플퍼아워’(peopleperhour)와 ‘피버’(fiverr)를 활용했다. <한겨레>는 5월31일부터 6월7일까지 대필 작가 52명에게 기자라고 밝히고 한국 고등학생·대학생의 글쓰기 작업을 요청받은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플랫폼의 특성상 익명이나 대리인 의뢰가 많아 대부분은 의뢰인의 국적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스리랑카인은 “고객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 최종 수령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6명이 한국인과 일했다고 밝혔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에게는 인터뷰 비용 명목으로 30~50달러(3만8천~6만3천원)를 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