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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교포 학생들 “누가 ‘치팅’으로 대학 갔는지 저희가 더 많이 알지만…”

등록 2022-06-16 07:00수정 2022-06-16 15:54

엘리트로 가는 그들만의 리그
③ 글로벌 엘리트, 욕망의 기원
한동훈 장관 딸, 조카와 함께 활동한 학생 학부모들
미국 취재 9일 동안 접촉했지만 끝내 인터뷰 거절
학생들의 담담한 체념, 그 책임은 모두의 몫 아닐까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한 도서관. 학기 중에는 공부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로 북적거리지만 방학이 시작된 지난 3일(현지시각)에는 한적했다. 한 학부모는 “여름방학에 미국의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 필요한) 교외활동을 채우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쿠퍼티노/김지은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한 도서관. 학기 중에는 공부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로 북적거리지만 방학이 시작된 지난 3일(현지시각)에는 한적했다. 한 학부모는 “여름방학에 미국의 학생들은 (대학 입시에 필요한) 교외활동을 채우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쿠퍼티노/김지은 기자

‘논문, 출판, 봉사단체 설립, 앱 제작 기획, 미술 전시회….’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의 ‘스펙’은 눈부시게 빛나지만 학벌을 세습하려는 한국 엘리트의 욕망과 글로벌 스펙 착취 산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복마전의 민낯과 그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불안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제 일이라면 저도 다 말하고 싶지만, 우리 아이가 걸린 일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취재할 때 인터뷰 거절이 계속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과 그의 사촌 등과 함께 논문에 이름을 올린 학생의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취재에 난색을 보였다. 한 사람 건너면 서로 다 알 정도로 한인 커뮤니티가 좁아 소문나는 걸 두려워했다.

이런 특성은 한국의 국제학교를 다니는 한 장관 딸의 스펙 의혹이 드러난 이후에도 그의 이모이자 입시 전문가인 진아무개(49)씨가 이곳 학부모들을 입단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한 장관의 딸과 ‘스펙 공동체’를 이룬 진씨 딸들은 새너제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했는데 당시 미국 대학 입시를 위한 여러 교외활동을 다른 10대들과 함께 해왔다.

“진씨는 논문을 쓸 때도 참여자들에게 각자 따로 과제를 준 뒤 취합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부모들이 서로 잘 모르고 지불한 비용도 다르니 같이 (스펙 의혹 이후에도) 행동하기를 꺼린다. 결집이 안 되니 대응도 못 하고 각자 냉가슴만 앓는다.” 진씨와 함께 과제를 한 학생 학부모의 지인이라고 밝힌 ㄱ씨가 전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새너제이의 상위 20% 평균 가구소득은 36만달러(약 4억5천만원)가 넘는다. 아이티(IT) 기술에 능한 아시아계 엔지니어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넉넉한 벌이와 경쟁에 익숙한 부모 세대 문화는 종종 자녀들에게 과정을 중요하게 여길 여유를 주지 않았다. 협력과 소통은 빠른 성과의 걸림돌로 인식됐다.

각자도생을 위해선 정보와 조력이 필요하다. 한 학부모는 “입시 컨설턴트들도 그간 명문대에 몇 명이나 보냈느냐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 있다. 에세이 방향과 대회 정보 등 조언만 해주는 데도 최상급 입시 컨설턴트는 1년에 2만달러(약 2500만원)까지 받기도 한다. 서로 정보를 나누기보단 각자 살아남다 보니 학부모들이 정보에 많이 휘둘린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러니 ‘일반론’을 취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한 입시 컨설턴트에게 평균 컨설팅 비용을 묻자 “평균이라는 게 있나. 개인마다 한도 끝도 없이 차이가 난다. 안 쓰는 학부모는 안 쓰겠지만, 많이 쓰는 사람은 입시를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2년 동안 5만달러(약 6400만원)도 쓸 수 있다”고 답했다.

‘깜깜이’ 취재 현장이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던 것은 특정 인물의 시시비비에 가려져온 교육의 본질에 대한 진솔한 고민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너제이에서 수학 과외 선생으로 일하는 ㄴ씨는 “부당한 방식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늘 존재한다. 그 부모들은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그런 방식으로 입시에 성공한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입시 컨설턴트 ㄷ씨는 “에세이를 대신 써주는 행위의 문제점은 불법성만이 아니다. ‘너는 스스로 에세이를 쓸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메시지를 받은 아이가 무슨 자신감을 갖고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입시 제도 자체에 언론 관심이 집중되지만 이 역시 학생들에겐 과정일 뿐이다. 그 과정을 통해 살아가야 할 삶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현명했다. 미국 프리몬트에서 만난 서린(18)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더라도 내가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대신 해준 애들이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대학이 끝이 아니다. 더 많은 것들이 남아 있다.” 간호사가 꿈인 그는 올여름부터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고 다닐 예정이다.

물론 아이들도 알 만큼 안다. “돈 있는 친구들은 (미국 대학입학시험인) 에스에이티(SAT)부터 더 공들일 수 있잖아요. 누구는 ‘치팅’(부정행위)으로 대학 갔다더라는 이야기, 어른들보다 저희가 더 많이 알아요. 억울하긴 해요.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항상 있으니까요.” 말끝을 흐리는 어린 목소리에는 ‘세상은 원래 그렇다’는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사회적 소란이 언젠가 가라앉는다 해도 기억은 남는다. 그 기억이 쌓여 체념이 되는 것은 비단 진씨뿐만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새너제이/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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