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28일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끔찍하게 숨진 김 아무개씨를 추모하는 열기가 뜨겁습니다. 한 해 1000명 안팎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지는 ‘산업재해 왕국’(일하다 병 걸려 숨지는 노동자도 1000여명)에서 김씨 사고가 1000개의 죽음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마 그의 죽음이 끊임없는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청년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에 공명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씨의 가방에서 각종 작업도구와 함께 나온 컵라면과 쇠숟가락, 나무젓가락 사진은 생명보다 이윤 중심의 법과 제도, 관행을 용납하고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양심을 향해 날아든 가난한 비명입니다. 더 친절한 기자들에서 이 사건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를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김씨는 지하철 승강장 안전설비 확충을 요구하거나 안전 관련 근무형태 변경을 요구할 수 없는 하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김씨가 힘없는 하청업체 은성피에스디 소속이 아니라 그가 일하다 숨진 구의역을 비롯해 지하철 1∼4호선 관리와 운영을 책임지는 서울메트로 소속이어도 숨졌을까. 원청 노동자였다면 매뉴얼대로 2인 1조로 작업에 나가야한다고 회사 쪽에 요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스크린도어가 고장 난 사실을 역무원이 미리 알고 차량이 진입하기 전 미리 김씨한테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김씨처럼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일터에서 일하다 중대재해로 숨지는 한국의 하청 노동자는 매해 350여명 안팎에 이릅니다. 중대재해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1명 이상 숨지거나 3달 이상 치료해야 하는 노동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말합니다. 문제는 전체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하청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9월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2년 전체 중대재해 사망자의 36.4%를 차지하던 하청 노동자의 비중은 이듬해 37.3%로 증가한 데 이어 2014년 38.6%, 2015년 상반기엔 40.2%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2012년 1134명이던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가 2015년 955명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인 것과 뚜렷이 대조되는 현상입니다.
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사고사를 당한 김아무개씨를 추모하는 국화가 놓여있다. 김 씨는 지난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고장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다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김씨는 이날 고장신고를 받고 출동해 홀로 작업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간접고용 노동자, 두 배가량 더 위험한 일에 노출
원청의 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지는 노동자 열에 넷은 하청 노동자인 셈입니다. 여기서 찬찬히 톺아볼 대목이 있습니다. 지난해 300명 이상 일하는 사업장 3233곳이 고용노동부에 고용형태를 신고한 ‘고용형태 공시’ 결과,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사내하청 노동자는 20%였습니다. 이 두 가지 통계를 단순 산술로 견주면, 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비중이 20%인데 숨지는 이들은 40%를 차지하고 있으니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두 배가량 더 위험한 일에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21세기 들어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예전엔 기업들이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을 직접 고용하다 1997년 외환위기와 그 뒤 이어진 대량해고, 실직 사태 이후 상당수의 노동자를 이른바 용역, 외주화 등의 이름으로 떨궈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이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005년 10월엔 경기 이천의 지에스(GS) 물류센터 신축공사장의 붕괴사고로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습니다. 2008년 1월에도 경기 이천의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 40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치는 사고가 났습니다. 2012년 충북 청주의 엘지(LG)화학 공장에서는 다이옥산 폭발사고로 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이듬해 5월에는 충남당진의 현대제철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5명이 아르곤에 질식사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2014년 무려 8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고 바닷물에 빠져 죽고 무거운 물체에 깔려 죽고 폭발사고로 불에 타 죽은 울산 현대중공업. 이곳에선 지난해와 올해 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같은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래도 이들 회사는 별다른 제재 없이 부지런히 영업활동을 하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 기업은 왜 간접 고용에 집중하는가
그럼 기업들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왜 직접 고용하지 않고 외주화의 이름으로 간접 고용하려 할까요?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첫째, 해고 규제에 얽매이지 않기 위함입니다. 한국에서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크게 두 가지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은 23조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며 개별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고, 이어 24조에선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며 집단적 해고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 노동자한테 책임을 물어 잘라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으니 아예 고용을 포기하고 하청업체한테 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사용자 편의를 봐주겠다며 지난해부터 법에도 없는 제3의 해고제도, 즉 저성과자 해고제를 지침으로 도입하는 등 총대를 메고 나섰습니다.
사용자들이 간접 고용을 선호하는 두 번째 이유는 비용 절감입니다. 노동자들을 외주화하면 원청의 정규직과 비슷한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받으면서도 훨씬 싼 값에 부릴 수 있습니다. 하청업체 사용자가 가져가는 몫을 고려하더라도 원청 사용자로선 남는 장사입니다. 이밖에 원청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면 사용자로서 교섭에 응하고 단체협약을 맺는 등 각종 의무가 부과되지만 하청업체 노동자가 노조를 만들면 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 역시 사용자들이 외주화를 선호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각종 공공기관은 물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와 삼성과 엘지(LG) 전자제품 수리를 담당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나와라”라고 투쟁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아무개씨를 추모하는 꽃과 메모가 붙어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원청에 강한 책임 묻는 시스템 정비해야
그렇다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용자들이 하청이나 외주화, 용역, 도급의 이름으로 간접고용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근본적 처방에 앞서, 하청 노동자가 실제로 일하는 사업장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원청 사용자한테 강한 책임만 물어도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직접 고용 노동자든 간접 고용 노동자든 어떤 노동자가 작업과 관련해 숨지거나 건강상 큰 피해를 입은 경우 고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해당 사업장의 지배권을 가진 사람을 형사적으로 처벌하거나 재산상으로 큰 손해를 준다면 어느 사용자가 사업장 안전 조처를 등한히 하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실태부터 볼까요. 9명의 하청 노동자가 숨진 2005년 이천시 지에스 물류센터 사고 뒤 원청인 지에스 법인은 벌금 700만원, 당시 지에스 직원인 현장소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여러분이 원청 대표이사라면 작업장 안전 조처를 강화하겠습니까. 무려 40명의 노동자가 숨진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사건의 원청인 법인과 대표이사는 벌금 2000만원, 현장소장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가 확정됐습니다. 8명의 노동자가 폭발사고로 불에 타 숨진 엘지화학 청주공장 사고 때 원청인 엘지 쪽 사람이나 법인은 검찰의 무혐의 결정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엘지 고위 관계자라면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해 투자를 하시겠습니까.
한국 사회에선 형사처벌이 산업재해를 줄이는 데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체제를 유지하는 ‘산재유발 마피아’에는 세 축이 있습니다. 노동자 안전보단 경제계 눈치를 보느라 관련 법 제도와 시스템 개선에 별 관심이 없는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 노동자한테는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기소권을 기업인한테는 자린고비 굴비 대하듯 함으로써 문제의 사용자를 아예 사법의 심판대에조차 올리지 않는 검찰이 있습니다.
산재사망자 그래프
■ 검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기소율 겨우 3.1%
<한겨레>가 대검찰청에 요청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검찰이 산업안전과 관련해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2009∼2013년 5년 동안 전국 18개 지방검찰청에 접수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은 모두 2만380건이었는데 이 가운데 검찰이 기소에 나서 사법부의 판단을 받은 경우는 모두 630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소율이 3.1%에 그칩니다. 나머지 96.9%는 무혐의 처분하거나 벌금 몇 백만원의 약식기소로 끝낸 것입니다.
가물에 콩 나듯 사용자가 기소돼도 사법부의 처벌은 너무나 관대합니다. 아래는 1년여 전 고용노동부 출입기자 시절 산업안전을 책임지는 산재예방보상정책국 핵심 관계자와 나눈 대화입니다.
기자 : 하청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을 때 아무런 권한없는 하청업체 사용자가 아니라 원청 사용자한테 책임을 묻지 않는 한 사고는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고용부 간부 : 그렇죠. 그런데 특별사법경찰권을 가진 우리 근로감독관이 수사를 해도 검찰에서 사고와 관련한 원청 사용자의 고의성을 까다롭게 입증하라고 해요. 어쩌다 입증이 돼도 법원은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거의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기소 의견으로 계속 송치할 순 없잖아요? 대법원 2009도12515 사건 판결문을 한 번 보시라니까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해당 사건은 2007년 인천 고잔동에 한화건설이 짓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안전시설물 설치 공사를 도급받은 ㅁ업체 소속 노동자인 중국동포 전아무개(당시 41살)씨가 3층에서 낙하물방지망 설치 작업을 하던 중 안전고리를 걸지 않은 채 건물 바깥쪽으로 나와 작업하던 중 지상으로 떨어져 숨진 건이었습니다. 검사는 안전주의를 다하지 않은 ㅁ업체와 원청인 한화건설, 현장소장을 기소했고 1심과 2심은 모두 이들의 유죄를 인정해 ㅁ업체에는 벌금 200만원, 한화건설과 현장소장한테는 각각 5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1년 9월 이들 모두한테 죄가 없다고 보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지하철역
■ 개인 불찰에 책임 묻는 대법원 판결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 차○○(한화건설 현장소장)은 피해자에게 안전고리가 부착된 안전대 등 보호장비를 지급함은 물론, 피해자를 비롯한 근로자들을 상대로 평소 안전대를 착용하고 안전고리를 안전난간에 연결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도록 정기적으로 교육함과 아울러 안전요원이 현장에서 이를 통제·독려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사고 당시 이 사건 낙하방지물 설치공사와 관련하여 수급인(ㅁ업체) 소속 작업팀장 신○○이 원래 예정된 설치공정과 달리 피해자에게 건물 외부에 위치한 낙하물방지망 위로 나오라는 지시를 하였다는 사정 또는 그 지시를 받은 피해자가 안전고리를 안전난간에 연결하지 아니한 채 건물 외부의 낙하물방지망 위로 나와서 작업을 하리라는 사정을 피고인 차○○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만연체로 길게 늘어져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정리하자면, 사고가 나 노동자가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리라고 현장소장이 알 수 없었을 텐데도 처벌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사고의 책임을 김씨 개인의 불찰로 돌리려는 일부 여론과 비슷하지 않나요?
■ 기업에 관대하고도 관대한 고용부
고용부는 대법원에 책임을 떠밀었으나,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국내에서 산업안전 관련 권위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인정받는 박두용 한성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는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과정에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의 경우 기업활동의 애초 목적인 경제적 측면에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용부는 끊임없이 기업의 부담을 깎아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왔습니다. 이를테면, 산업안전보건법에 안전조처를 게을리 한 경우 50만원 이하 과태료를 매기도록 한 조항과 관련해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는 첫 번째 걸리면 10만원, 두 번째 걸리면 20만원, 세 번째 걸리면 30만원을 부과토록 하는 방식입니다.
고용부는 2014년엔 2년 동안 하청 노동자 15명이 산재로 숨져 간 현대제철 당진공장을 특별근로감독 한 뒤 부과된 과태료 1억8426만원 가운데 6896만원을 깎아준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샀습니다. 현대제철 쪽이 산업안전보건법의 같은 조항을 11차례 위반했는데, 이를 단건으로 봐야 한다는 게 고용부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현대제철이라면 법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들겠습니까?
정부와 검찰, 사법부가 지금과 같은 법체계와 사법 관행을 지속하는 한 목숨 걸고 일해야 하고 그러다 실제로 목숨을 잃는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는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디스팩트 시즌3 방송 듣기 바로가기[언니가 보고있다 #21_스크린도어, 박원순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