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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쉬운 해고’ 정부안 사실상 수용…‘들러리 한국노총’ 비판 일듯

등록 2015-09-13 22:32수정 2015-09-15 11:29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잠정 합의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왼쪽)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원회 사무실에서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잠정 합의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정, 노동시장 구조개편 잠정합의
노사정위원회가 한국노총의 복귀로 재가동된 지 18일 만에 ‘노동시장 구조개편’ 관련 잠정 합의안을 내놓았다. 이번 합의에는 한국노총이 가장 크게 반대해온 (일반)해고 요건·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외에도 노동시간 단축, 통상임금 명확화 같은 해묵은 과제와 비정규직 대책까지 폭넓게 담겼다. ‘독자 입법’을 내세운 정부의 압박에 밀려 한국노총이 물러난 모양새다. 한국노총과 노사정위가 ‘정부발 노동시장 구조개편 들러리’를 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노사와 충분한 협의 거친다”
노사정위 ‘단서조항’ 강조하지만
안해도 그만일 뿐 안전장치 못돼
민주노총 “정부에 힘 실어줘” 반발

한국노총이 4월 노사정 대화를 결렬시키고 총파업 찬반 투표까지 벌일 만큼 강력하게 반발했던 해고·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는 사실상 정부 방침이 반영됐다. 그동안 정부는 “근로계약 해지와 취업규칙 개정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자는 가이드라인일 뿐”이라고 밝혀왔지만, 노동계는 “해고와 노동자한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이 쉬워져 노동 불안정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한테 불리하게 바꿀 때는 직원의 과반이 가입한 노조의 대표자나 직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동의를 얻느냐인데, 법이라 시행령에는 그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일선 노동청에서 근로감독관들이 행정지도를 할 때 쓰라고 만든 ‘취업규칙 운영 및 해석지침(지침)’이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잠정 합의는 이 지침의 취업규칙 변경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5월 ‘사회통념상 합리성 판단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않은채 취업규칙을 바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도 효력이 인정된다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가이드라인’의 윤곽을 내놓았다. 아울러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는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아,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는 특히 노조가 없어 취업규칙만 적용받는 전체 사업장의 90%에 이르는 노동자에게 주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일반해고’(저성과자 개별해고) 요건 완화와 관련해선 지난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저성과자 해고 요건 가이드라인’ 밑그림을 제시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일반해고 요건이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 탓에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화 복귀 이후 정부의 ‘기준과 절차의 명확화’ 명시 요구에 맞서 ‘중장기 과제 전환 또는 삭제’를 요구해왔다. 노사정이 잠정 합의에서 노동계의 이런 우려를 고려해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단서조항을 명시한 배경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이창근 정책실장은 “‘노사와 충분한 협의’는 강제 규정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며 “정부가 원래 추진하려던 내용에서 바뀐 게 없다”고 비판했다. 더구나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궁극적으로 법제화 방향으로 검토해 나가겠다”며 법제화 불씨를 남겼다.

노동시간 단축도 정부와 재계가 합의한 현재 주 68시간을 주 60시간(주 40시간+12시간 연장근로+노사합의 때 8시간 특별 연장근로)으로만 단축하는 안을 한국노총이 받아들였다. 그동안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특별 연장근로에 반대하며 주 52시간(주 40시간+12시간 연장근로)으로 단축하자고 주장해왔다. 시행 시기도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개정 즉시를 요구했으나, 법 개정 뒤 기업 규모별로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하려는 정부·재계 안이 관철됐다. 통상임금은 2013년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토대로 통상임금의 정의, 제외금품 기준 등을 입법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밝힌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노동자의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비정규직법 개정은 “노사정이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 수렴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 사항을 정기국회 법안의결 시 반영토록 한다”고 추가 논의의 길을 열어뒀다.

다만 노사정의 이 잠정합의안이 실제 입법화되거나 가이드라인으로 발표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의 반발은 물론, 1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이 합의안의 추인 여부를 결정해야 할 한국노총 내부의 반발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정부가 14일 새누리당과 당정 협의를 통해 입법 논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관련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고 정부는 관련 정책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고민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 한쪽에선 여전히 임금피크제 도입과 ‘쉬운 해고’에 크게 반발하며 강력 투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록 새정치연합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밑그림은 그렸지만 갈 길은 먼 합의”라며 “노동시장 구조개선과 청년고용의 핵심이라고 할 기간제, 파견근로자 보호 방안이나 근로시간 단축 등 관련 합의가 향후 과제로 남겨져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오늘 합의가 이루어졌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하게 협의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정부 여당이 밀어붙이려던 입법은 철회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김민경 김경욱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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