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청년 활동가들이 지난 3월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주 69시간제 폐기를 촉구하는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장시간 집중노동 논란으로 역풍을 맞았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다음달 초 드디어 윤곽을 드러낸다. 지난 3월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에 부딪혀 보완 작업에 들어간 지 꼬박 8개월 만이다. 그간 정부는 개편안 토대가 될 설문조사 문항마저 비공개하면서 수정 개편안은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 근로시간 개편안은 제대로 수정될 수 있을까.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개편안 관련) 설문조사 결과와 더불어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 6~9월 장장 4개월 동안 개편안 관련 국민 6천명 대상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조사(FGI) 등을 진행해왔는데,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이를 바탕으로 한 향후 수정 방향도 공개하겠다는 얘기다.
수정 개편안의 최대 쟁점은 1주 최장 근무시간 ‘상한선’이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 3월 일주일에 최장 52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를 69시간(주 6일 근무 기준)까지 늘리는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장시간 노동’ 비판에 직면했다. 논란이 커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21일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사실상 상한캡을 씌웠다. 1주 최장 69시간 근무 개편안에서 9시간 줄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준 셈이다.
그러나 상한선 가이드라인을 받아 든 노동부는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하다. 일단 현행보다 근로시간 연장을 반대하는 여론이 절대다수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6월9~15일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46.7%가 1주 최대 근무시간으로 ‘주 48시간이 적절하다’고 했고, ‘주 52시간’(현행 유지) 답변은 34.5%였다. 응답자 81.2%가 지금보다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영계에서도 불만이 읽힌다. 윤 대통령 말처럼 주당 60시간 개편이 추진된다면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현행 제도에서도 노사 합의로 3개월간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 노동자는 최대 6주까지 주 64시간(법정 근로시간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일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다음달 설문조사 발표에선 개편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장관은 지난 26일 국감에서 “현장 애로사항 중 포괄임금 등 편법·탈법 문제가 있다. 이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선에서 주 52시간 제도가 정착되고 실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게 큰 원칙”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의 상한선을 정하는 구체적인 ‘숫자’보다 그간 노동부가 주력해온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방안에 무게를 실을 것으로 보이는 발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난 3월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던 근로시간 제도 개편 재입법은 더욱 안갯속이다.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수정 개편안을 내겠다던 정부의 공언은 이미 물 건너갔고, 그 이후에도 노동부는 발표를 여러 차례 미뤘다. 이렇듯 여론 눈치를 봐온 정부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수정 개편안을 발표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추측도 나온다. 노동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추진됐던 근로시간 개편안이 사회 혼란만 일으킨 모양새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김해정 노동교육팀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