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조종실에 놓인 컵라면과 커피포트.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점심 시간에 추가 근무를 요구받으면, 고공 크레인 조종실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사진 독자 제공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이 건설현장 하청업체로부터 급여 외에 별도로 받는 월례비가 사실상 임금이라고 본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정부는 그동안 노동자들이 하청업체를 협박해 월례비를 갈취해왔다며 이를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해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등 노동자들을 범죄집단으로 매도해 처벌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업체들이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줄여 수익을 내고 이에 따라 안전이 위협받는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9일 전남 담양군의 한 철근콘크리트 공사업체가 타워크레인 회사 소속 운전기사 16명에게 지급한 월례비 6억5천여만원을 돌려달라고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월례비가 사실상 임금에 해당한다며 기사들이 월례비를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본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는 의미다. 항소심 재판부는 “수십년간 지속해온 관행”이라며 월례비를 사실상 임금이라고 판단했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와 고용관계가 없는 하청업체로부터 매달 받는 돈이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추가 작업 등을 위해 관행적으로 지급한 일종의 수고비다.
건설현장 월례비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건설노조 압박의 시작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건설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한다”며 엄정 단속을 지시했다. 경찰은 월례비를 갈취한 혐의로 건설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수사에 나서는 한편, 국토교통부는 월례비를 받으면 면허정지(최장 1년) 처분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가했다. 건설노조는 30일 기준 조합원 227명이 월례비 수수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건설현장에서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월례비를 양산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7년차 타워크레인 기사 이아무개(34)씨는 “월례비를 없애, 이를 지급하는 명목인 과도한 추가 근무나 위험한 업무를 현장에서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우리가 먼저 해왔다”며 “월례비로 인해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수사 대상이 됐는데 안전하지 않은 작업 환경은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건설노조는 30일 성명을 내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월례비를 불법적이고 부당한 금품 갈취로 매도해 노동자를 건폭으로 몰아붙이는 윤석열 정부와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게 제동을 걸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는 강압적이고 무리한 건폭몰이 수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월례비 지급이 뿌리 뽑아야 할 불법 관행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취지는 해당 공사현장에서 기사들이 받은 월례비가 부당이득이 아니다란 것이지, 월례비를 임금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기사들의 고용주가 아닌 하청업체들이 지급하는 월례비는 사라져야 할 관행이라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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