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의 타워크레인. 연합뉴스
정부의 대대적인 건설노조 공세의 시작점에 있는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두고 대법원이 사실상 임금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건폭’(건설 폭력)이라는 단어까지 쓰며 주장했듯 ‘부정하게 갈취한 금품’이 아니라는 의미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전남 담양군의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타워크레인 운전기사 16명에게 지급한 월례비 6억5천여만원을 돌려달라고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29일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 불속행 기각은 원심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는 제도다.
앞서 원심은 “월례비가 사실상 타워크레인 운전기사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월례비는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고용 관계가 있는 타워크레인(임대) 업체가 아닌 공사 현장에서 실제 함께 일하는 하청 업체들이 주는 일종의 수고비다. 원·하청 고용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건설 현장에서 생긴 관행이다.
이 사건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은 지난 2016년 9월부터 2019년 6월까지 해당 업체가 맡은 공사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을 운전해 건설장비와 골재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당시 기사들은 타워크레인 업계의 관행이라며 업체에 시간외근무수당(OT비)과 월례비 명목으로 매달 약 300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업체는 이들에게 월례비 약 6억5400만원을 지급했다. 업체는 2019년 11월 기사들을 상대로 이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1·2심 법원 모두 업체의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월례비 성격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1심 법원은 월례비를 위험부담의 대가나 사례금의 성격으로 볼 근거가 없다며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봤다. 다만, 운전기사의 월례비 반환 의무에 대해선 ‘월례비 반환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업체가 작성한 점 등을 들어 “업체가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사들에게 월례비를 지급했기 때문에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2심 법원은 ‘월례비는 임금’이라는 등의 이유로 운전기사들이 월례비를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2심 법원은 “월례비 지급은 수십년간 지속해온 관행으로서,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을 가지게 됐다”고 판시했다. 법적 근거가 있으므로 부당이익이 아니라는 취지다.
월례비는 대대적인 수사, 국토교통부 등 정부의 전방위적인 건설노조 압박의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21일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들어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건폭’이라는 표현을 처음 썼다.
김준태 민주노총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건폭몰이의 시작이 월례비였는데, 건설 현장의 고용 구조와 노동 환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무리한 수사와 공세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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