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경찰 소환조사 건설노조원 심리적 위기 긴급조사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어나서 (경찰)조사를 받은 건 처음입니다. 아무 문제 없이 살았는데 노조 활동을 한다고 조사받았습니다. 왜 탄압받아야 하는지 답답하고 억울합니다. 두 번째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할 땐 잠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깼습니다. 지금도 입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오면 ‘어디서 날 부를까, 내가 뭘 잘못했나’ 겁이 납니다.” (서울에서 일하는 형틀 목수)
“세 번에 걸친 경찰 조사와 두 번의 재판을 받는 중이고 또 하나의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심경이 어떠냐고 많이 물어봅니다. 아마도 (저를) 걱정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 그 걱정에 앞서 단 하나, 분노만 일 뿐입니다.” (경기도 안산에서 일하는 형틀 목수)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노동절에 분신해 숨진 건설노동자 양회동씨 주검이 안치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13일 연 ‘노조 공안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 결과 발표 자리에 나온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 조사는 정부의 ‘건폭몰이’ 과정에서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 295명이 온라인 설문조사에 응답한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건설노조는 그 동안 경찰에 소환돼 조사받은 조합원이 1173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조사 결과 ‘최근 2주 동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자해할 생각을 했나’라는 질문에 30.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런 생각을 ‘2주 중 2∼6일’ 했다는 응답이 19.3%였고, ‘2주 중 7∼12일’(6.1%), ‘거의 매일’(5.4%) 순이었다.
특히 ‘거의 매일 자살·자해를 생각한다’는 응답자의 사회심리 스트레스와 우울 지수는 각각 41.31점, 23.44점으로, 고위험군 중에서도 매우 높은 수치를 보였다. 스트레스 지수는 27점 이상, 우울 지수는 20∼27점일 때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장경희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연구위원은 “고위험군이 정신질환이란 뜻은 아니다. 전문 병원에서 당장 진단받고 치료받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스트레스 항목에서 응답자 55.3%가 고위험군이었고 41.0%는 잠재적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또 우울 지수에선 45.1%(심한 우울 15.9%·중간 정도 우울 29.2%)는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불안을 겪고 있는 조합원도 66.4%에 달했다.
정부의 무분별한 소환조사는 조합원의 수면 시간과 수면 질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조합원 44.7%는 ‘수면 시간이 1∼2시간 줄었다’고 답했다. 이어 ‘3∼4시간 줄었다’는 23.1%였고, ‘거의 잠 잘 수 없었다’는 12.2%였다. 수면 질 항목에선 ‘1∼2회 정도 깬다’가 45.1%, ‘3∼4회 정도 깬다’(20%), ‘자다 깨다 반복’(13.2%) 순이다.
탄압 이후 신체적 증상 변화에 대해 응답자 83명이 (편)두통을 앓고, 76명은 가슴 두근거림 등 통증을 겪는다고 답했다. 생활상 변화에 대해선 47명이 대인기피를 겪고, 심리적 증상으론 99명이 신경질, 예민 등 짜증이 잦다고 답했다.
장 연구위원은 “투쟁 과정에서 경찰 폭력에 당한 비정규직 해고자도 건설노동자만큼 스트레스 지수가 높진 않다”며 “불안, 우울 지표가 이렇게 높게 나온 조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 폭력을 중단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들의 명예를 회복했을 때 건설노동자들이 심리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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