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의 동거녀에 의해 여행가방에 7시간 동안 갇혔다가 숨진 ㄱ(9)군을 향한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위기의 아동을 사전에 확인하는 제도가 잘 작동되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학대 우려 아동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의료진 신고 때 아동의 분리 보호를 적극 검토하기로 하는 등 후속 대책을 준비 중이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특히 코로나19 유행으로 고위험군 가정에 대한 방문조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드러나지 않은 학대·방임 사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기존의 (아동학대) 대책을 점검하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서 보고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 대변인은 “코로나19로 아동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 아동학대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만큼 더욱 적극적으로 위기의 아동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지시”라고 덧붙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8년 1월에도 “(학대로 사망한) 고준희양 보도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불편한 마음이었다. 아동학대 발견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하면 까마득히 낮은 실정”이라며 관련 대책을 지시했고, 이는 같은 해 3월 복지부의 ‘아동학대 방지 보완대책’으로 이어졌다.
당시 나온 대책에 따라 정부는 사회보장서비스 제공을 위해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발견하고 지원하는 ‘이(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장기결석 여부, 영유아 건강검진·예방접종 실시 여부, 병원기록 등 정보를 모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추정한 뒤 각 읍·면·동으로 자동 통지하는 시스템이다. 이 정보를 받은 읍·면·동 공무원은 아동 가정에 ‘직접 방문’해 양육환경을 확인하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연계하거나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락한다. 강 대변인은 이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아동학대 발견율(아동 인구 1천명당 아동학대로 판단된 아동 수)이 2014년 1.10명에서 2018년 2.98명으로 오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코로나19 위기 속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등교수업 중단으로 전국 모든 학생의 결석률이 20% 정도로 비슷하게 나타나 ‘빅데이터’에 의존하기 어려워졌고, 고위험군 아동에 대한 방문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복지부 담당자는 “통상 분기별로 한번씩 고위험군 아동을 (시스템에서) 추출하고 공무원들이 방문조사를 했던 것과 달리, 올 상반기에는 가정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 대면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는 우선 올해 상반기에 못 한 부분까지 포함해 확대 점검을 준비하고 있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활용해 신고되지 않은 아동 중에서도 위험한 경우가 없는지 찾기로 했다. 또 학대 우려 아동에 대한 일제 점검을 벌이는 한편,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교사들이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예방 및 신고의무 교육을 강화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의료진 신고 사례의 경우엔 대응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 담당자는 “현행 아동복지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피해 아동에 대해 보호조처를 결정하기에 앞서, 아동 의사를 묻고 존중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료진이 신고한 경우에는 아동이 원가정 복귀 의사를 밝혀도 분리 보호 등의 응급조처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ㄱ군의 경우에도 지난달 7일 순천향대병원 의료진의 신고로 학대 정황이 드러났지만,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집에 있고 싶다’는 ㄱ군의 의사 등을 고려해 분리 보호하지 않았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일수록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이들은 거리두기와 별개로 더욱 가정을 자주 방문하는 등 밀접 접촉해야 한다”며 “정부는 사건이 터지면 하는 일제조사 등에 그치지 말고, 피해 아동을 비롯한 가정 구성원들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성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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