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남의 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동거녀 ㄱ씨가 지난 3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버지의 동거녀에 의해 여행가방에 갇혔다 숨진 충남 천안의 9살 어린이가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을 가능성이 커 경찰이 수사 중이다. 지난 1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될 당시 폭행을 방어하다 생긴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방어흔)가 여럿 확인됐기 때문이다. 숨질 당시 몸무게도 또래 평균의 3분의 2 남짓에 불과했다.
8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 1일 아버지 동거녀 ㄱ(43)씨에 의해 가방에 7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심정지 상태로 순천향대 천안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ㄴ(9)군은 얼굴과 왼쪽 어깨, 왼쪽 손과 손가락, 오른쪽 손가락과 발 등에 상처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엉덩이·발가락은 손톱에 긁힌 듯했고, 가방에서 탈출하려고 애쓰다 생긴 것으로 보이는 손톱 상처도 많았다. 왼쪽 어깨 상처는 오른손잡이가 도구로 때릴 때 주로 생기고, 양손 손가락에 난 상처는 때리는 도구를 잡는 등 방어 과정에서 주로 남는다”고 설명했다.
ㄴ군은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밤에도 정수리가 찢어지고 손바닥·손등·엉덩이에 흐릿한 멍 자국만이 있는 상태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 쪽 신고(7일)로 13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ㄴ군 집을 찾아 조사했지만 정수리 등 상처들은 거의 다 아문 상태였다. 결국 방어흔으로 추정되는 상처들은 지난달 13일 이후 생겼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여기에 숨지기 전 ㄴ군 몸무게는 23㎏으로, 우리나라 9~10살 남자 어린이 평균 몸무게 약 32㎏(질병관리본부 자료)의 3분의 2 남짓에 불과했다.
앞서 의료진은 신체 여러 장기가 제 기능을 못하는 ‘다발성 장기부전’을 ㄴ군의 사인으로 추정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학대와 7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ㄴ군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유인술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아동이 장시간 가방에 갇힌다면 체온이 상승하고, 수분 보충이 없었다면 땀을 많이 흘려 탈수가 왔을 것”이라며 “지속적인 학대가 있었다면 탈수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장기부전이 왔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복 충남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계장은 “상습학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라면서도 지난 5일 이뤄진 부검 결과 등은 밝히지 않고 있다. 경찰은 10일께 ㄱ씨를 아동학대특별법 위반(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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