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페루 안데스 산맥의 소도시 우아라스에 사는 농부 사울 루치아노 리우야(42)는 2015년 독일 다국적 에너지기업 에르베에(RWE)를 상대로 독일 법원에 기후소송을 제기했다. 석탄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며 발생시킨 온실가스가 안데스 산맥에서 홍수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1심 법원은 그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독일 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조사단을 페루로 파견해 빙하 해빙이 그 지역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바 있다.

이런 기후소송을 비롯해 1986년부터 올해 5월까지 약 37년간 전 세계적으로 2341건의 기후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에는 기업을 상대로 한 ‘기후워싱’(Climate-washing) 소송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런던정경대학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기후소송 글로벌 트렌드 2023’ 보고서를 29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그랜섬 연구소의 기후변화 소송의 글로벌 트렌드를 담은 다섯 번째 보고서로, 미국 컬럼비아 법대 산하 기후법전문 연구기관 ‘사빈기후변화법센터’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를 보면, 기후소송은 2021년에 266건으로 정점을 찍었고, 2022년에는 222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1년간(2022년 6월∼2023년 5월) 제기된 소송은 190건이다. 보고서는 기후소송 증가율은 둔화하고 있지만, 감소 추세를 뜻하진 않는다고 썼다. 기후소송이 폭증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말기(2020년) 이후 미국에서 제기된 소송 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측면이 있지만, 미국 외 지역에서 2021년을 제외하고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소송이 가장 많이 제기된 국가는 1590건을 기록한 미국으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호주(130건), 영국(102건)이 뒤를 이었다. 독일(59건), 브라질(40건), 캐나다(35건)에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소송 사례가 기록됐다. 지난 1년간 불가리아, 중국, 핀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태국, 터키 등 7개국에서 기후소송이 추가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로써 최소 51개국에서 기후소송이 진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제기된 ‘기후워싱’ 소송 81건 가운데 53건은 최근 2년간 발생했다. 2019년과 2022년은 각각 6건, 9건으로 10건 미만이었지만,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27건, 26건으로 소송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기후워싱 소송은 기후 대응에 대한 투자 또는 지원을 과장하는 행위, 기후 위험을 공개하지 않는 행위, 소비자가 잘 알 수 없는 제품 원료의 문제점에 관한 소송 등을 포함한다.

보고서를 쓴 조아나 세처 그랜덤 연구소 연구위원과 캐서린 하이암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대한 잘못된 정보 및 허위 정보와 관련된 소송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법원과 소비자 보호 기관과 같은 행정기관에 제기된 기후워싱 소송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등장한 가장 중요한 기후워싱 소송 중 하나는 적절한 계획과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기업의 기후 공약 진실성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소송의 절반 이상은 기후 행동에 우호적인 사법적 결과를 가져왔고, 어떤 경우에는 정책 변화로 이어졌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승소 여부와 관계없이 기후소송은 법정 밖에서도 기후변화 의사 결정에 상당한 ‘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많은 소송이 아직 진행 중이며, 성공적으로 종결될 경우 새로운 소송을 촉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