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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카이브

[송건호 칼럼] 한 겨레 한 나라를 향하여

등록 2018-05-14 17:15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9년 5월 16일 한겨레신문 1면 ‘본지 창간 한돌 기념사’

송건호 대표이사

<한겨레신문>은 어제 5월 15일로 창간 한 돌을 맞이했습니다. 지난해 바로 그날 영등포구 양평동의 윤전기에서 '국민 주주들이 만든 새 신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순간 '한겨레'의 창간 사우들은 가슴이 터질 듯한 감격과 함께 어깨를 짓누르는 역사적 사명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날 갓 태어난 아기였던 <한겨레신문>은 5만여 주주와 40여만 구독자의 성원과 보살핌, 그리고 공정하고 믿을 수 있는 신문을 사랑하는 국내외 동포들의 지원에 힘입어 이제 건강하고 튼튼한 매체로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한겨레신문>의 한 돌을 '한겨레 가족'과 함께, 온 겨레와 함께 기뻐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신문을 더욱 알차게 키워나갈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언론은 근대적 신문이 태어난 뒤 한 세기가 가깝도록 민족의 독립과 해방, 민중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이루기 위한 운동에 기여한 바도 크지만 식민지배세력이나 독재정권에 예속되어 겨레를 배신하고 국민 대중을 억압한 역사적 과오도 함께 저지른바 있습니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에는 언론이 독재정권의 '제4부'라는 모멸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권력과 언론이 유착되었습니다. 오늘의 상황에서도 한국 언론의 이런 체질과 속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이 민주화와 민족통일운동을 탄압하고 제도화된 언론이 정치적 억압을 알게 모르게 부추기는 속에서 <한겨레신문>이 지나온 한 해는 멀고도 험난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창간이 된 지 1년이 되도록 <한겨레신문> 기자의 청와대 출입과 취재를 거부해 온 현 정권은 개방과 화해와 평화공존의 국제적 흐름에 따라 북한 취재를 계획한 이영희 논설고문을 구속하고 간부 사원들을 입건하면서 저희 신문에 탄압의 검은 손길을 뻗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언론을 결사적으로 지키려는 언론계의 동료들과 '한겨레 가족'의 일사불란한 연대투쟁, 그리고 국내외에서 밀물처럼 밀어닥친 동포들의 지지와 성원은 그 탄압을 격퇴하고 말았습니다. 자유언론의 보루를 지키려는 이 싸움은 이영희 고문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오고 <한겨레신문>이 완전한 자유를 확보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한겨레 가족'은 일치단결하여 정권의 횡포와 억압에 맞서는 과정에서 권력과 대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매체만이 언론의 자주성을 누리고 자유언론을 실천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만약 <한겨레신문>이 어느 재벌이나 부유한 일족의 지배를 받는 매체라면, 그리고 기득권을 지키고 더 많은 재산과 특권을 쌓으려고 권력과 야합하는 집단이라면 불의의 권력에 맞서 과감한 투쟁을 벌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호주머니 돈과 저축한 돈, 심지어는 재산의 일부를 처분해서 마련한 돈을 모아 한겨레신문사를 설립해 주시고 이번의 투쟁에서도 격려 광고와 격려 방문, 그리고 정권에 대한 항의를 통해 '한겨레'의 싸움에 동참하신 5만여 분의 주주들이야말로 저희 신문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자부심과 보람을 가슴 뿌듯하게 느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한겨레신문사의 사우들을 대표하여 40여만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민족·민주언론을 지향하는 저희 신문의 이념과 편집방침을 흔쾌히 지지함으로써 창간 한 돌 만에 40만이 넘는 부수를 발행하도록 하는 세계 언론사의 기적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한겨레신문사가 여론조사기관에 부탁하여 알아본 바에 따르면 날마다 40만 부 이상의 <한겨레신문>을 1백20여만 명이 읽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희 신문은 그 동안 좋은 글을 써주셨거나 신속하게 제보를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재정상의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광고로 한겨레신문사의 경영에 도움을 주신 기업인들과 시민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한겨레 가족' 가운데서 그늘에서 제일 고생하시는 일선 지국의 실무자들과 배달원들의 노고를 치하합니다.

<한겨레신문>은 독자 여러분께서 잘 알고 계시듯이 신속하고 공정하게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중적 정론지를 지향합니다. <한겨레신문>은 어느 개인이나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언론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 공동체의 번영과 행복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매체입니다. 우리가 이런 책무를 다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겨레신문사 편집진이나 업무사원들의 공만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을 사랑하고 지켜주시는 국민 여러분의 덕입니다.

이제 주주 여러분이 보내 주신 발전기금에 힘입어 자본금 1백50억 원을 확보한 한겨레신문사는 고속윤전기를 설치하고, 바르고 빠른 신문을 만들 수 있는 사옥을 지어 주주와 독자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실패로 끝나도 좋은 한 차례의 '실험'이 아니라 나라가 민주화되고 겨레가 통일되는 날까지, 아니 통일된 뒤에도 계속 살아 움직여야 할 민족의 신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한 겨레 한 나라'를 향해 고달프지만 보람있는 길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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