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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 칼럼] 한국사회의 오늘과 내일 - 민족·민주언론과 한겨레신문

등록 2018-05-14 16:16수정 2018-05-14 17:00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12월 17일 한겨레신문 5면 ‘ 한겨레 대강연회 중계 ’

송건호 발행인

50년대 이후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언론계는 고도의 성장을 보여왔다. 빌딩이 새로 서고 고속 윤전기가 10여 대를 넘어서고 발행 부수가 6만~7만 부에서 150만 부로 늘어났다고 주장하게 되고 40~50명에 지나지 않던 기자들이 200여 명에 달해 언론계는 눈부신 근대화의 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이렇게 외모의 성장과는 달리 질적인 면에서는 독자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다. 최근 국민들은 언론의 내용이 거의 비슷비슷해 어느 한 신문만 읽으면 더 읽을 필요가 없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높다. 신문에 개성이 없어지고 차이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양적 성장과는 달리 질 면에서는 오히려 저하되었다는 것이 세평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한겨레신문>은 왜 생겨나게 되었는가.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을 한다. 경제성장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각 기업체마다 자체의 힘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권력의 특혜 속에서 성장하는 길이다. 한국 언론은 후자의 길, 곧 권력의 특혜 속에서 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최근 논란되는 '권언유착'이라는 비난도 한국 언론기업의 성격을 말해준다.

권력의 특혜란 두 가지 방향에서 고찰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언론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사옥을 짓고, 윤전기를 들여오고 그 밖의 온갖 시설을 갖추면서 권력 당국의 특혜융자를 받는 길이고 또 하나는 언론과는 관계없는 타기업에 진출하여 권력의 특혜로 치부를 하는 길이다. 기업이란 본래 개인 재산이므로 성장 과정에서의 이 같은 특혜는 필연적으로 언론기업인과 권력과의 유착 관계로 나타난다. 전두환 정권은 언론기본법을 제정할 때 언론기업인의 타기업에의 진출을 의도적으로 개방했는데 그 저의는 언론을 자기들에게 종속시키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선진국에서는 언론기업인이 타기업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독립을 지키는 불가결의 길로 존중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80년대의 언론기업은 기업 규모가 크게 성장하기는 했으나 두터운 '권언유착'으로 이미 언론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상실하게 되었다. 오늘의 언론이 입으로는 무슨 말을 하든 통치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보도하고 비판하며 절대로 국민의 입장에 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사소한 문제에서는 마치 권력을 비판하는 듯이 독자들을 속이고 있으나 중요한 문제에 가서는 절대로 권력을 비판하려 하지 않는 데서도 오늘의 한국 언론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이 다른 나라와 달리 언론통제와 지배에 남달리 적극적인 까닭은 그들이 대규모로 부패되어 있어 국민의 지지를 상실하고 남북대결의 상황 속에서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지게 되어 언론을 지배하지 않고서는 국민을 복종시킬 수 없다고 본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언론이 제구실을 못 한다는 것은 이미 기업 구조 면에서 그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고 권력의 언론통제에 대한 군사통치도 한계에 이르러 국민들은 새로운 언론의 출현을 강력히 요구하게 되었다. <한겨레신문>의 출현은 바로 이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노태우 정권은 표면상 민주화를 표방하고 언론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할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언기법 대신 마련한 등록법에는 엄격한 시설기준을 강화하고 있어 수십억 이상의 자본이 없이는 신문사업을 할 수 없게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였다. 수십억 이상의 자본을 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의 정치풍토로 보아 권력을 비판할 수 없으므로 오늘날 노 정권이 들어선 뒤 여러 개의 새 언론기업이 나타났으나 아마도 현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신문은 나오지 못할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언론의 독립을 지키고자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과 싸우다 추방되고 혹은 투옥된 전직 언론인들이 중심이 되어 국민의 모금으로 수만 명의 주주에 의해 창간된 국민 대중의 신문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절대 독립적이며 이제까지 기성언론에 의해 외면당해 온 대중의 정당한 주장을 대변하는 참된 신문으로 등장하였다. <한겨레신문>은 따라서 권력에 경원당하고 기성언론에 미움을 사고 있으나 이것은 오늘날까지의 한국 정치풍토나 언론풍토로 보아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겨레신문>은 온갖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한국의 민주화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민족적 사명을 다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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