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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28일 한겨레신문 1면 ‘시론’
송건호 발행인
외국에 나가 사는 동포들이 국내 사람들보다 어느 면에서는 나라 안 사정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발견하곤 충격을 받게 된다. 이번에 해외의 어느 통일운동단체 초청으로 몇 년 만에 미국에 갔다. 자기들이 보낸 자녀들이 고국의 대학생들에게 냉대를 받고 심지어 모욕까지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필자에게 걱정어린 질문을 던지는 동포들이 많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걱정이다.
그러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에 이민을 가서 그 나라말을 유창하게 하며 되레 제 나라 국어에 서투른 사람을 볼 때 반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도 젊은이로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서로 경험이 다른 데서 오는 오해인 것 같다.
필자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미국에서 모국에 오는 학생들 가운데는 조국을 이해하려고 일부러 '돈을 써가며' 오는 동포들이 많다는 사실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 살면 그 나라말을 쓰지 않을 수 없고 이런 생활을 10년, 15년 하다 보면 자연히 모국어가 서툴러지고 그쪽 나라말을 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유달리 애국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나는 미국 이민 간 우리 동포들이 조국 말을 잊지 않게 하려고 자녀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이민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모국의 대학에 일부러 유학을 오는 것은 조국을 잊지 않겠다는 그들의 간절한 염원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모국어는 더듬거리면서 그쪽 나라말을 청산유수로 하는 데 대해 혐오를 느끼는 심정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고 일부러 모국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도 헤아려 주어야 한다.
그들이 내 나라말에 서툴고 싶어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그쪽 나라말을 잘하고 싶어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환경의 소산이다.
미국에서 모국을 공부하기 위해 왔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모국어에 서투른 이런 교포들에 반감을 갖는 이곳 젊은이들의 정신도 결코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아직 젊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시카고에 사는 동포들에게 “수만 리 바다를 건너 미국에까지 이민 와서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열심히 일해서 먼저 경제적 성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말했더니 몇몇 젊은이가 퇴장하는 것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퇴장의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만 미국에 온 것처럼 자기들을 모독하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에 불만을 품고 퇴장한 그 젊은이들이 불쾌하기는커녕 크게 감동을 받았다.
최근 국내에서는 난데없는 '우익 살아남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우익'이란 무엇인가?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은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지만 그 나름의 민족자주성이 있었다. 민족자주성이 너무 지나친 나머지 외국을 침략하고 배타적이 된 데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우익'이란 일제 때에는 친일파요 8·15 후에는 친미 반공에다 분단지향적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주체성이 너무 강한 데 문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사대적인 데 문제가 있다. 독일과 일본의 '우익'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이른바 '우익'이다.
참된 민족자주성은 각성하는 민중의 성장과 함께 강해진다. 한국 민족의 자주성에 대한 각성을 '좌익'이라고 매도한다면 이른바 '우익'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반대 세력을 '좌익'이라 매도하기 전에 '우익'의 한국적 본질이 무엇인가부터 밝혀야 할 것이다. 냉대를 받아가면서 모욕을 참고 조국을 알겠다고 찾아오는 이민동포들의 이 새로운 움직임을 우리가 민족자주성의 각성이라고 보지 않고 무엇으로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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