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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10일 한겨레신문 4면 ‘편집국에서’
송건호 대표이사 ·논설위원
6·10항쟁이 있은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지난 1년 동안은 한국 내외가 격동에 격동을 거듭한 시기여서인지 바로 엊그제 일 같기만 하다.
나는 우연하게도 이 운동에 상임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그간 변혁의 와중에서 살아왔다.
한 마디로 6·10항쟁은 역사적 대운동이었다. 그것은 민주화를 갈망하던 온 국민의 투쟁의 산물이지 결코 국민운동본부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국민운동본부는 각계각층이 참여했던 만큼 조직이 산만했고 또 종교적 색채가 상당히 짙었다. 이 운동에는 그 이전의 재야운동 경우와는 달리 개신교·가톨릭은 물론 불교계에서도 참여했고, 야당인 신민당도 재야와 더불어 적극 합세한, 사실상 온 국민이 참여한 운동이었다.
국민의 함성은 드높았고 집권세력은 크게 당황하였다. 상상외로 수많은 국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이 운동에 갈채를 보내고 많은 젊은이들이 온몸을 던져 참여했다.
6·10 열풍에 이어 6·26대시위가 논의되자 운동본부 안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6·10투쟁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은데 또다시 대규모 투쟁을 벌이면 국민의 호응도가 크게 떨어질까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불안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6·26항쟁은 6·10항쟁보다 더욱 큰 규모로 더욱 치열하게 벌어졌다. 필자는 그때 시내 여러 곳을 다녀보면서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투쟁의 치열함에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치열함 때문에 오히려 앞일을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6·29선언으로 나타났다. 4·19이래 처음 맛보는 국민의 승리였다.
어쩌면 권력은 이권인지 모른다. 어떤 군인은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어쩌고 해서 사람들을 웃기기까지 했지만 권좌에서 제 발로 내려온 권력자는 없었다. 하기야 제 스스로 권력을 이양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싹쓸이'해서 2000년까지 해 먹으려다 자기 나라 이익을 지키려는 외세의 간섭과 엄청난 국민의 저항에 밀려 눈물을 머금고 자리를 내놓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으로도 파란곡절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 이상의 역전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전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태분석에 근거한다.
첫째, 독재는 폐쇄사회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원화 사회인 나라들과 우방 관계에 있고 앞으로는 중국과 소련과도 교류를 하고 교역을 넓혀갈 추세에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재를 지속할 수는 없다. 물론 이제까지 있어온 개방의 문을 닫아버리는 방법도 있겠으나 나라 경제를 망칠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그 같은 역전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도 쿠데타라는 방법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을 텐데 병력동원 자체가 우방 관계에 있는 나라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들도 병력이동을 동의했다가는 영원히 우리 민중의 적이 될 것임을 알것이기 때문이다.
나라 안 상황을 보아도, 우리는 이미 산업화 사회에 들어서 근로자가 이미 천만을 넘어섰고 그들의 힘과 의식 또한 크게 성장해 있다. 산업화된 나라에서 쿠데타가 없는 것은 그러한 집권방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폭력이 짧은 한때의 침묵을 강요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우리는 이미 그런 불법적 집권이 발붙일 발전단계의 나라가 아님을 누구나가 깨달아야 한다.
다가올 90년대에는 이 민족에게 민주화와 통일의 대로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열려올 것이다. 그것은 민족사의 새로운 숙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6·10항쟁 1주년을 맞아 새삼 감회에 젖으면서 그날의 민족정신이 길이 우리의 내일을 비출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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