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23) 문-안의 분열(마지막회)
(23) 문-안의 분열(마지막회)
12월13일 안철수가 탈당했다. 총선을 불과 4개월 앞둔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최악의 결과였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벌인 ‘혁신 경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결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가도 될 사람들은 나가지 않고 꼭 붙잡아야 할 안철수는 당을 떠났다. 상대에 대한 불신이 (두 사람 모두 원하지 않았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것이다.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 모델은 게임 당사자인 두 경쟁자의 ‘합리적 선택’이 왜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어느 범죄의 공범으로 지목된 A와 B가 조사를 받는데 검사는 이들이 이번 범죄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도 저질렀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범죄는 증거가 없으므로 자백이 중요하다. 검사는 이 둘을 다른 방에 격리시키고 이렇게 제안한다. 만약 과거의 범죄에 대하여 자백하면 가벼운 처벌(0.5)을 내리겠지만 당신이 자백하지 않았는데 다른 방에 있는 공범이 자백하면 당신은 무거운 처벌(3.0)을 받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다. 만약 두 죄수가 서로를 신뢰하고 둘 다 자백을 하지 않으면 이번 범죄에 대해서만 둘 다 비교적 가벼운 처벌(1.0)을 받게 되지만 나만 살겠다고 둘 다 자백을 하면 비교적 무거운 처벌(2.0)을 받게 된다.
다른 방에 있는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자백을 하는 것이다. 먼저 상대가 자백을 한다는 것을 가정하면 당연히 나도 자백을 하는 것이 좋다. 자칫하면 독박(3.0)을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만약 상대가 자백을 하지 않을 거라고 가정될 때도 자백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가벼운 처벌(0.5)만 받게 될 테니까. 두 사람이 모두 이런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되면 둘 다 비교적 무거운 처벌(2.0)을 받게 되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다.
플라톤 테제와 오웰 테제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 혁신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두 사람이 전면적으로 손을 잡고 ‘문·안 비대위’를 합의하는 것이 아마도 최선의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상곤 혁신안’과 ‘혁신전대’에 대한 서로의 불신이 파국을 불러왔다. 만약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탈당 선언 직전이라도 “나는 여전히 분열의 우려 때문에 혁신전대에 반대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탈당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혁신전대 수용밖에 없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면 안철수의 탈당을 막았을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는 문재인의 그런 선언을 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로 평가하고 혁신전대 대신 ‘문·안 비대위’로 타협했다면 (이미 의원들이 두 사람에게 백지 위임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강한 혁신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을 것이다.
‘소통이론’의 대가인 위르겐 하버마스의 “어떤 불신과 불리한 조건에서도 사회통합을 향한 합리적 토론은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둔 대화를 통하여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하버마스의 이성적 낙관주의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는 <언어에 대한 지식>에서 버트런드 러셀과 조지 오웰을 인용해서 ‘플라톤 테제’와 ‘오웰 테제’를 대비시킨다. 플라톤 테제는 러셀이 말한 ‘세상과의 접촉이 짧고, 개인적이며,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지식을 알 수 있을까?’로 집약된다. 반대로 오웰 테제는 ‘이렇게 많은 자료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인간은 이다지도 조금밖에 알 수 없는가?’로 요약된다. 러셀은 ‘인간 이성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을 고양시키는 계몽에 주력했고, 오웰은 전체주의 사회의 ‘인간 의식의 조작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2012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주 단위로 승자와 득표율까지 거의 정확히 예측했던 통계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신호와 소음>에서 통계학을 기반으로 어떻게 잘못된 정보(소음)를 거르고 진짜 의미있는 정보(신호)를 찾을 수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설명했다. ‘소음에서 신호를 분리하려면 과학적 지식과 자기 인식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겸손’과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예측하는 ‘용기’, 그리고 이들 사이의 차이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실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우리의 능력을 더 겸손하게 평가함으로써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여의도에는 소음이 넘친다. 많은 정보가 ‘찌라시’에 사실인 양 떠다닌다. 한편에서는 (‘종일 편파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는) 종편을 통해 정치 정보를 얻고, 또 다른 편에서는 에스엔에스(SNS)와 팟 캐스트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엄청난 정보를 접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에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할 능력을 잃었다.(나는 소음 때문에 신호를 놓칠까봐 보지도(종편), 하지도(SNS), 듣지도(팟캐스트) 않는 차단의 원칙을 택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키클롭스’ 때문에 숱한 위기를 맞게 된다. ‘들은 것은 믿지 말고, 본 것도 절반만 믿어라’는 지혜로운 격언이 있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그런 신중함은 차치하고, ‘들을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온 나라가 홍해 갈라지듯 쫙 갈라져 있다. 대화나 토론은 상대의 의견을 듣고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다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노무현 정부 때 <메이드 인 USA>의 저자인 프랑스 사람 ‘기 소르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요즘 한국과 프랑스에서는 반미가 유행인데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질문을 받고는 “반미가 미국에 대한 태도는 아니죠. 그저 하나의 선택일 뿐입니다”라고 답했는데, 그 뜻은 누군가가 친미의 입장을 이미 선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미를 하기로’ 정했다는 냉소적인 비판이었다. 지식인연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조롱이었다.
‘협력적 경쟁’ 관계의 두 사람
‘경쟁적 협력’의 길이 아닌
‘비판적 경쟁’의 길을 선택
당분간 둘 모두 지지율 오르고
박원순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 ‘혁신안’과 ‘혁신전대’가
탈당을 결행할 명분이 되는가
둘 다 비판받을 지점이 있어
그나마 ‘양초’라 조롱당하는
두 사람 모두 강해지는 건 다행 문과 안이 입증해야 할 세가지 대통령을 비롯해 온 국민이 이런 사고에 빠져 있으면 ‘창조’나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리적 ‘관성’이나 개인적 ‘타성’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듯 사회도 (하던 대로 하는) ‘경로의존성’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견해를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도 정당도 마찬가지다. 왜곡된 정보는 편향된 사고를 낳고 편향된 사고는 잘못된 결정을 낳는다. 지나친 ‘당파성’은 지지층 결집에는 ‘득’이 되지만 외연 확장에는 ‘독’이 된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초당파적’ 국가원수와 ‘당파적’ 행정부 수반을 겸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원수의 역할은 거의 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 이슈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면서 초당파적으로 협력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박 대통령은 이 이슈 역시 당파적으로 접근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은 중요하지만 이념적 순결성이나 운동적 경직성으로는 외연 확대를 할 수 없다. ‘보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고,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본다’더니 문재인과 안철수의 오월동주는 결국 깨지고 말았다. ‘협력적 경쟁’(당내 주류·비주류) 관계였던 두 사람이 ‘경쟁적 협력’(문·안 비대위)의 길이 아닌 ‘비판적 경쟁’(분당)의 길을 선택했다. 당분간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은 ‘보완재’인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함께 끌어올릴 것이다. 반면 안철수와 ‘대체재’ 관계인 박원순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다. 2017년 대통령을 향한 도정에서 ‘도전자 포지션’인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은 캠페인으로 세 가지를 입증해야 한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다.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둘째, 나와 우리 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보다 더 나은 비전과 리더십이 있다. 셋째, 내가 더 경쟁력(승리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문재인·안철수의 협력적 목표이고, 둘째와 셋째는 경쟁적 목표다. 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려면 “정권교체를 원하는가?”, “야당이 더 나은 대안인가?”라는 두 질문 모두에 “그렇다”고 답하는 국민이 더 많아야 한다. 아무리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도 ‘더 낫다’는 인식을 주지 못하면 정권은 교체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웬만하면’ 야당에 정권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야당의 모습은 웬만하지가 않다. 국민들은 야당에 세 가지를 묻고 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위를 맡길 만큼 ‘강한가?’, 야당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나 같은 보통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주고 ‘돌봐줄 수 있는가?’ 이러한 목표를 놓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2017년이 다가오면 결국은 ‘누가 나가야 이기는가?’로 승부가 갈릴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이 곧 사라질 모양이다. 안 그래도 그동안 ‘새정치’도 없고, ‘민주’도 없고, ‘연합’도 없다고 조롱을 받았는데 이제는 안철수가 탈당했으니 더 이상 ‘연합’은 필요없게 되었다. 문제는 야당이 연합을 깨고 총선·대선 승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화운동가 출신의 세 명의 대통령 모두 이질적인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집권했다. 김영삼은 노태우와, 김대중은 김종필과,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잡고 대통령이 되었다. 2012년 문재인도 안철수와 연대했기 때문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한국의 정치 지형은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통합 없이, 연대 없이 집권 가능한 유일한 정치세력이지만 야권은 연합 없이, 연대 없이 집권이 어렵다. 그런데도 총선을 앞두고 연합을 해체하는 이유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물론 아직도 ‘통합전대’나 ‘후보단일화’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전망 내지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합치기 위해 헤어졌다’는 것은 좀 코미디 같은 논리 아닌가. 다만 안철수의 탈당으로 두 사람의 지지기반이 달라 연합의 시너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확인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성과(?)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안철수의 탈당이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가 될지, 아니면 ‘무책임한 분열’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수학이 아닌 산수로 보이는… 당내 누구보다 혁신의 의지가 강했던 두 사람이 혁신의 방법 때문에 갈라선 것은 아무리 봐도 아쉽다. ‘혁신안’과 ‘혁신전대’가 탈당을 방치하거나 결행할 만큼의 절대적 명분이 되는지 모르겠다. 안철수의 비판대로 혁신안이 아쉽고 부족하기는 하지만 평가를 받을 만한 점도 분명히 있다. 문 대표가 분열의 우려 때문에 혁신전대를 반대한다는 것도 군색한 논리다. 불확실한 분열 때문에 ‘확실한 더 큰 분열’을 안 막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안철수 입장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절대 분열은 안 된다는 논리를 접하며 영화 <부당거래>에 나온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무슨 계산법인지는 몰라도 분열 이후 두 사람 다 원래 이렇게 될 예정이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갈 길로 가고 있는 이 상황이 나는 너무 놀랍다. (총선 결과가) 수학이 아니라 산수로 보이는데 말이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바라보고 있는 결승점이 2016년이 아니라 2017년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초의 난’으로 조롱을 당하는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권력투쟁을 통해 점점 강해지고 있고,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 레이스의 출발 총성이 울렸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대선 주자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또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까?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지난 1년간 <2017 오디세이아>를 연재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부족한 글에 지면을 내준 <한겨레>와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끝>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1년간 독자들과 함께했다.
‘경쟁적 협력’의 길이 아닌
‘비판적 경쟁’의 길을 선택
당분간 둘 모두 지지율 오르고
박원순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 ‘혁신안’과 ‘혁신전대’가
탈당을 결행할 명분이 되는가
둘 다 비판받을 지점이 있어
그나마 ‘양초’라 조롱당하는
두 사람 모두 강해지는 건 다행 문과 안이 입증해야 할 세가지 대통령을 비롯해 온 국민이 이런 사고에 빠져 있으면 ‘창조’나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물리적 ‘관성’이나 개인적 ‘타성’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듯 사회도 (하던 대로 하는) ‘경로의존성’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견해를 포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 국가도 정당도 마찬가지다. 왜곡된 정보는 편향된 사고를 낳고 편향된 사고는 잘못된 결정을 낳는다. 지나친 ‘당파성’은 지지층 결집에는 ‘득’이 되지만 외연 확장에는 ‘독’이 된다. 한국에서 대통령은 ‘초당파적’ 국가원수와 ‘당파적’ 행정부 수반을 겸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원수의 역할은 거의 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서’ 이슈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면서 초당파적으로 협력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박 대통령은 이 이슈 역시 당파적으로 접근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은 중요하지만 이념적 순결성이나 운동적 경직성으로는 외연 확대를 할 수 없다. ‘보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고,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본다’더니 문재인과 안철수의 오월동주는 결국 깨지고 말았다. ‘협력적 경쟁’(당내 주류·비주류) 관계였던 두 사람이 ‘경쟁적 협력’(문·안 비대위)의 길이 아닌 ‘비판적 경쟁’(분당)의 길을 선택했다. 당분간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은 ‘보완재’인 두 사람의 지지율을 함께 끌어올릴 것이다. 반면 안철수와 ‘대체재’ 관계인 박원순의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다. 2017년 대통령을 향한 도정에서 ‘도전자 포지션’인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은 캠페인으로 세 가지를 입증해야 한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나라를 잘못 이끌고 있다.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둘째, 나와 우리 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보다 더 나은 비전과 리더십이 있다. 셋째, 내가 더 경쟁력(승리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문재인·안철수의 협력적 목표이고, 둘째와 셋째는 경쟁적 목표다. 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려면 “정권교체를 원하는가?”, “야당이 더 나은 대안인가?”라는 두 질문 모두에 “그렇다”고 답하는 국민이 더 많아야 한다. 아무리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도 ‘더 낫다’는 인식을 주지 못하면 정권은 교체되지 않는다. 국민들은 ‘웬만하면’ 야당에 정권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야당의 모습은 웬만하지가 않다. 국민들은 야당에 세 가지를 묻고 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위를 맡길 만큼 ‘강한가?’, 야당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나 같은 보통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주고 ‘돌봐줄 수 있는가?’ 이러한 목표를 놓고 문재인과 안철수는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2017년이 다가오면 결국은 ‘누가 나가야 이기는가?’로 승부가 갈릴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이 곧 사라질 모양이다. 안 그래도 그동안 ‘새정치’도 없고, ‘민주’도 없고, ‘연합’도 없다고 조롱을 받았는데 이제는 안철수가 탈당했으니 더 이상 ‘연합’은 필요없게 되었다. 문제는 야당이 연합을 깨고 총선·대선 승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화운동가 출신의 세 명의 대통령 모두 이질적인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집권했다. 김영삼은 노태우와, 김대중은 김종필과, 노무현은 정몽준과 손잡고 대통령이 되었다. 2012년 문재인도 안철수와 연대했기 때문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한국의 정치 지형은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의 구도가 유지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통합 없이, 연대 없이 집권 가능한 유일한 정치세력이지만 야권은 연합 없이, 연대 없이 집권이 어렵다. 그런데도 총선을 앞두고 연합을 해체하는 이유를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물론 아직도 ‘통합전대’나 ‘후보단일화’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전망 내지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합치기 위해 헤어졌다’는 것은 좀 코미디 같은 논리 아닌가. 다만 안철수의 탈당으로 두 사람의 지지기반이 달라 연합의 시너지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확인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성과(?)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안철수의 탈당이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가 될지, 아니면 ‘무책임한 분열’이 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수학이 아닌 산수로 보이는… 당내 누구보다 혁신의 의지가 강했던 두 사람이 혁신의 방법 때문에 갈라선 것은 아무리 봐도 아쉽다. ‘혁신안’과 ‘혁신전대’가 탈당을 방치하거나 결행할 만큼의 절대적 명분이 되는지 모르겠다. 안철수의 비판대로 혁신안이 아쉽고 부족하기는 하지만 평가를 받을 만한 점도 분명히 있다. 문 대표가 분열의 우려 때문에 혁신전대를 반대한다는 것도 군색한 논리다. 불확실한 분열 때문에 ‘확실한 더 큰 분열’을 안 막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안철수 입장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절대 분열은 안 된다는 논리를 접하며 영화 <부당거래>에 나온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를 떠올렸을 것이다. 무슨 계산법인지는 몰라도 분열 이후 두 사람 다 원래 이렇게 될 예정이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제 갈 길로 가고 있는 이 상황이 나는 너무 놀랍다. (총선 결과가) 수학이 아니라 산수로 보이는데 말이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바라보고 있는 결승점이 2016년이 아니라 2017년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초의 난’으로 조롱을 당하는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이 권력투쟁을 통해 점점 강해지고 있고,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 레이스의 출발 총성이 울렸다. 내년 총선이 끝나면 대선 주자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또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까?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지난 1년간 <2017 오디세이아>를 연재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부족한 글에 지면을 내준 <한겨레>와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끝>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필자 박성민과 만나는 정치BAR 토크쇼에 오세요
‘박성민의 2017 오디세이아’ 연재 종료 기념으로 필자가 독자들과 만납니다. 오는 28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전화 02-323-0717)에 오시면 박성민 민(MIN)컨설팅 대표의 2016년 한국 정치 전망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놀이터’ 정치BAR가 주최하는 정치토크쇼입니다. 진행자인 <한겨레> 김보협 정치디지털 데스크가 성한용 선임기자, 이유주현 정치팀장과 함께 박성민 대표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2015년 한 해의 정치를 톺아보고, 2016년 4월 총선과 2017년 대선을 내다볼 이번 토크쇼의 주요 내용은 <한겨레> 지면에 실립니다. 참가신청 온오프믹스(http://onoffmix.com/event/5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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