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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김영삼 김대중이 왜 점점 더 그리운가

등록 2015-12-04 19:10수정 2015-12-05 18:13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22) 양김과 민주주의 과제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2000년 1월 초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백산서당’의 이범 대표가 나와 또 한 명의 후배를 출판사로 불렀다. 가보니 곧 출간될 ‘김영삼 자서전’ 원고를 내 놓았다. 부른 이유는 자서전의 제목을 그냥 <김영삼 회고록>으로 하는 게 나은지, 아니면 부제를 다는 게 좋은지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김영삼 회고록>만으로도 담백하고 묵직하지만 굳이 부제를 단다면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말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이 떠올랐지만 김영삼의 정치 역정을 그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2015년 한국 민주주의의 큰 산이 우리 곁을 떠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시대적 소임을 다 마치고 땅으로 돌아가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과 나란히 묻혔다. 또 그렇게 한 세대는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한 세대를 거칠 때마다 ‘신화’를 만들어 왔다. 30여년 만에 ‘독립과 건국’을 했고, 다음 세대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고, 그다음 세대는 ‘민주화’를 쟁취했다. 불과 30년마다 이처럼 찬란한 성취를 이룬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가히 기적과 신화, 영웅의 나라다.

DJ 부르는 네 가지, YS 부르는 세 가지

30년은 한 세대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30년쯤으로 보는 것이다. 또 같은 시대에 살면서 공통의 의식을 갖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 전체를 한 세대라 부른다. 한 세대의 사람들은 공통의 경험, 추억, 인식, 인물, 성취 등 ‘세대의 역사’가 있다. 우리는 민주화 도정의 위대한 지도자인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모두 떠나보냈고, 여전히 민주주의의 후퇴를 염려하지만, 이제 또 한 세대가 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폭정의 시대를 생생하게 고발했다. ‘낭송시인’으로 유명한 고 성내운 교수의 떨리는 목소리로 이 시를 처음 들었을 때의 전율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마지막 민주주의 만세를 ‘민!·주!·주!·의!·만!·세!’로 한 음절씩 꾹꾹 눌러 힘주어 낭송하던 성내운 교수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역시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이 부른 ‘타는 목마름으로’도 절창이다.

그 폭정의 시대를 온몸으로 막아낸 김영삼·김대중이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모두 떠났다. 2009년 김대중이 죽음을 앞두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누워 있을 때, 그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특수 관계’인 김영삼이 찾아온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당시 한 일간지에 ‘양김의 화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김대중. 살아서 이미 역사가 된 인물. 상고를 나온 호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의지와 집념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과 노벨평화상을 모두 얻은 사람. 대한민국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끔찍이 좋아하는 사람과 지독히 싫어하는 사람. 이 나라에서 그의 이름은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김영삼. 이름의 대중성(?)과 영향력에서 한 치의 밀림도 없는 김대중의 라이벌. 그도 이미 역사다. 서울대를 나온 영남 출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대통령이 된 사람. 대한민국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을 김영삼·김대중 순으로 부르는 사람과 김대중·김영삼 순으로 부르는 사람, 그리고 호칭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까 봐 그냥 양김으로 부르는 사람. 그의 이름도 역시 사람을 가르는 선이다.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세로축과 가로축에 그 유명한 애칭 와이에스(YS)와 디제이(DJ)가 있다. 기자들이 와이에스에게 묻는다. 디제이와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고. 그는 답한다. ‘그렇게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됐다.’ 기자들은 ‘역사적 화해 선언’으로 쓴다. 그들은 갈등도 팔리고 화해도 팔린다…그들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국민의 진한 아쉬움 속에 ‘전설’로 남았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이긴 하지만 그들이 민주화의 도정에서 죽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신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영웅으로 죽는 것’보다 ‘영웅으로 삶을 마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든을 훌쩍 넘긴 그들 삶의 공과를 써 내려간다면 공의 줄보다는 과의 줄이 훨씬 더 길 수도 있겠지만 무게를 달아보면 공 쪽으로 기울어질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많은 사람이 그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시대를 끝내고 싶어 했지만 어느 정치인도 그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 누구도 그들의 도전 정신, 의지, 헌신, 용기, 역사의식, 소명의식, 정치력, 업적 근처에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국민의 기립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우리는 오랫동안 그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선거제도에 진하게 배어있는
민주화의 피와 땀과 눈물
선거는 가장 자랑스런 성과이자
한국 보수에게 가장 약한 고리
상대적으로 가장 평평한 운동장

야권 지리멸렬하자 여당은
180석 목표 공공연하게 밝히고
개헌 가능한 200석 전망도
너무 예측가능한 안정적 구도
아무도 변화를 두려워 않는다

새로운 민주주의 2.0의 과제

양김만큼 국민을 사랑하고 또 국민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를 했다고 비판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이 지지자들과 정서적으로 그토록 강하게 묶여 있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군사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국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군사정권은 그들을 죽이지 못했다. 그런 국민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그들은 ‘위대한 국민’으로 불렀다. 그들이 국민을 그렇게 호칭하자 실제로 국민은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위대한 일을 이루어냈다.

지도자는 지지자들과 함께 싸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지도자는 키워진다. 고난이 없으면 영웅도 없다. 영웅 탄생의 서사구조는 이렇다. 강하고 무서운 적이 있다. 대중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용기가 없어 저항하지 못한다. 적과 싸워줄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의 대표(정치인, 검찰, 경찰, 군, 언론 등)는 무력하거나 적과 공범이다. 대중은 영웅을 기다린다. 이때 영웅이 나타나 적을 무찌른다. 예컨대 박정희, 전두환의 무서운 독재가 있다. 국민은 분노하지만 두려워서 싸우지 못한다. 사쿠라 야당과 어용 언론은 적과 한통속이 된다. 국민은 새로운 지도자를 원한다. 이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김영삼과 김대중이 등장한다. 그들은 국민과 함께 싸워 독재를 물리친다. 그들은 민주화의 영웅이 된다. 국민은 그들을 지도자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김영삼·김대중의 목숨을 건 담대함이 마침내 1987년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국민의 ‘부채의식’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3당 합당을 혹독하게 비판하지만 돌이켜보면 김영삼의 말대로 하나회 숙청이 없었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군정 종식의 차선책’이 되었다. 역사는 종종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정의의 판단을 반전시킨다. 지역주의와 3당 합당, 그리고 디제이피(DJP) 연합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는 선거 제도의 역사다. 독재에 저항한 수십년 민주화운동의 피와 땀과 눈물은 선거에 진하게 배어 있다. 선거는 한국 민주화운동이 쟁취한 가장 강력하고 자랑스러운 성과다.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다른 어느 영역보다 가장 반칙이 적으며,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고, 실제로 승패를 주고받는 ‘공정한 전쟁’ 혹은 ‘공정한 게임’이 되었다. 선거는 한국 보수의 가장 ‘약한 고리’다. 선거를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보수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를 점하는 데 비해 선거는 보수·진보 어느 쪽도 확실한 지배력을 갖지 못한 ‘평평한’ 운동장이 (거의) 되었다.(대선은 더욱 그렇다)

선거를 통해 얻게 되는 민주주의 과제는 세가지다. 첫째는 ‘정권교체’다. 선거는 스포츠와 전쟁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전쟁으로 가까이 가면 ‘적’과 ‘동지’로 편을 갈라 증오하고, 스포츠로 가까이 가면 ‘여’와 ‘야’로 부르며 평화적으로 경쟁한다. 19세기 이전의 정치는 그것이 재판, 전쟁, 혁명, 쿠데타, 당쟁의 어떤 것이든 ‘통치자’와 ‘피치자’를 결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승리한 자는 패배한 자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다. 아마도 19세기 이전의 정치적 투쟁이 ‘체제 안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체제를 둘러싸고’ 싸웠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같은 정치의 시대가 끝나자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지 않고 ‘이길’ 경쟁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승리하면 여당이 되고 패배하면 야당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담 셰보르스키의 정의대로 민주주의란 ‘여당이 (평화적으로) 야당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체제’인 것이다. 우리는 이긴 자가 진 자를 죽이는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처분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체제를 1987년에 합의했다. ‘신생 민주주의는 두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공고화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상기한다면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대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제 한국의 대선은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50 대 50의 승부가 되었다. 보수에게 한국 대선은 전 재산을 걸고 벌이는 위험한 도박이다. 승리는 불확실하고 지면 잃을 게 너무 많다. 두번의 대선 패배는 보수 세력에게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마치 ‘나라를 잃은 것 같은’ 심리적 상처를 남겼다. 대선 결과에 따라 인사권이 좌우되는 고위 관료는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숙명이 되었다. 이것이 김영삼과 김대중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직선제 개헌’을 통해 달성한 민주주의 1.0의 성과다.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이 시대는 저물고 새로운 민주주의 2.0의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졌다.

정치적 상상력 빈곤이 초래하는 위기

민주주의의 두번째와 세번째 과제는 ‘문민 통제’와 ‘갈등관리’다. 유감스럽게도 이 두 과제의 지표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김영삼·김대중이 주도하던 1990년대에는 정치가 관료를 통제했고, 정치가 경제를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관료·재벌·법조 커넥션이 패권을 차지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약하고, 유권자는 관료에게 약하고, 관료는 정치인에게 약한 먹이사슬(?)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힘이 커지는 것보다 유권자에 대한 관료의 힘은 훨씬 커졌는데 불행하게도 관료를 통제하는 정치의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힘의 균형이 깨졌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통해 관료를 통제하기를 원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치인은 그럴 힘이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더 큰 위기는 (대선이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국회에서의 보수·진보 의석 분포는 170(석) 대 130(석)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야권이 지리멸렬하자 여당은 180석을 목표로 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힌다. 개헌이 가능한 200석을 전망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구조개혁은 어림도 없다. 한국의 국회는 사회의 구조 개혁을 이끌어내기에는 너무나 예측가능한 안정적 구도를 갖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직접 영향을 받는 고위 관료 외에는 (대기업을 포함한) 누구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들의 이익에 치명적 손실을 가져올 혁명적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중선거구제에 의한 다당제를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5개의 정당이 경쟁하면서 현안에 따라 150명, 혹은 180명, 200명이 손을 잡을 수도 있는 ‘예측 불가의 구도’를 만들어 내야 비선출 권력을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 혁명적 구조 개혁이 가능해진다.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 대한민국을 점점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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