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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스펙 초월? 되레 경쟁 부채질…지역할당제는 미봉책”

등록 2012-12-09 21:00수정 2012-12-09 23:41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유권자와 함께하는 눈높이 정책검증
③ 청년 일자리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는 비정규직과 함께 청년 일자리가 핵심이다. 10월 기준 전체 실업률은 2.8%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지만, 청년(15~29살) 실업률은 6.9%로 그 두배가 넘는다. 청년층의 고용상황을 보여주는 또다른 지표인 고용률은 전체 평균(60.1%)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39.4%)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겠다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청년들의 스펙(경력) 초월 대책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청년 고용할당제 공약을 대표 공약으로 내놨다. 심층좌담회엔 취업준비중인 대학생, 인턴, 창업자 등 6명이 참석했으며,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사회자(이하 사회)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린다.

최철수(이하 최) 자영업자다. 프로덕션을 7년째 운영하고 있다. 고민은 주로 어떻게 하면 종업원 월급을 제때 줄 수 있을까에 있다.

유현수(이하 유) 전공은 컴퓨터학과다. 나름대로 스펙(경력)을 쌓아가면서 취업준비를 해왔다. 서류는 되는데 계속 면접에서 떨어지니까, ‘얘를 죽여서라도 내가 올라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인턴으로 자동화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두 달 정도 일해봤는데, 중소기업이다 보니까 일이 많이 힘들었다.

정재희(이하 정) 한 연구소에서 인턴 중이다. 취업을 못해서 졸업을 다음 학기로 미룰 것 같다.

이문철(이하 이) 전자 동화책, 교육용 게임, 키즈(어린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현실 동떨어진 공약 쏟아내
사탕발림 지원이 사지 내몰아
패자부활제 더 구체화 필요

신창현(이하 신) 특성화고 자동차과를 졸업하고 건축 관련 회사에 취업했는데 7~8개월 일하다가 그만뒀다. 주말에도 나가고 주중에 3~4일 야근했지만, 손에 쥐는 것은 100만원 안팎에 불과했다. 지금은 전자 관련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새 직장을 구할 계획이다.

서은정(이하 서) 전문대를 졸업한 뒤 한 번도 정규직으로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다. 파견직 등 대부분 비정규직 상태였다. 네일아트(손톱 미용)를 할 때는 휴식 시간도 없이 하루종일 일했지만, 급여는 130~140만원에 불과했다. 지난 4월부터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다. 이달 말까지 일한 뒤 해외취업을 준비할 생각이다.

후보들 공약중 어떤 게 마음에 드나?

청년 취업준비금 지급이다. 취업을 하는 데는 돈이나 시간이 많이 드는데, 지원해주면 좋겠다.

돈을 벌려면 대기업에 가야 한다. 기분 나쁜 것은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이유로 사람이 기계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점이 개선되려면 경제민주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면 굳이 대기업에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의 근로시간 단축이 가장 좋은 정책 같다. 일자리 증가와 자기계발도 할 수 있고, 생산성도 늘릴 수 있다.

캐나다에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친구는 일을 더 해서 돈을 더 받고 싶었다. 그런데 현지인 친구가 ‘너(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돈을 못 버는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박근혜 후보의 (청년취업과 창업) 공약이 이렇게 적었나 싶었다. 청년 창업 지원에 대해선 문 후보의 것이 훨씬 좋다.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창업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취직도 해봤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도 받았다. 어느 순간 나의 미래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업했다. 1억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았지만, 한동안 집에 한푼도 갖다주지 못했다. 주말이면 학원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같은 시기 정부 지원을 받았던 아이티(IT·정보기술) 쪽 10개 업체 가운데 우리만 매출이 났다.

1억원은 정말 많이 지원해준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3000만~4000만원을 주면서 창업지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밖에 안 된다.

박 후보는 창업 공약이 많고, 문 후보는 일자리 공약이 많다. 두 후보의 공약에 대한 느낌은 뭔지 궁금하다.

박 후보의 스펙 초월 청년 취업센터는 스펙이나 경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스펙 쌓는데 돈 들지? 지원해줄게’라는 것 같다. 이건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일배움카드제’란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한 달에 26만원 가량의 직업 훈련비를 지원받았는데, 청년들의 현실은 물론이고 물가도 반영되지 않은 액수다. 학원비 이런 게 아니라, 청년도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꿰뚫은 청년취업준비금이 정말 실현됐으면 좋겠다.

박 후보가 스펙 초월 공약을 내세웠는데 나는 스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는 박 후보를 지지하지만, 스펙 초월 공약은 현실을 잘 모르고 한 공약 같다. 문 후보가 내건 청년 취업준비금은 좋다. 취업을 하는데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또 어느 후보의 것인지 모르겠으나, 일자리 나누기 공약도 좋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우리나라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실업률도 해소될 것이다.

나는 스펙이란 것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토익도 800점을 넘겨야 하지만, 서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박 후보의 정책은 언뜻 봤을 때는 좋은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가 나와있지 않다. 문 후보의 청년 취업준비금 정책도 좋긴 한데, 돈(예산)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 이미 이공계는 40만원씩 받으면서 교육받는 곳도 있다. 문제는 취업준비금을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주겠다는 것인지가 좀 더 자세히 나왔으면 좋겠다. 또 다른 분들도 말씀하셨지만, 내 몸무게와 키, 부모님의 직업을 알아서 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표준이력서 공약은 맘에 든다.

문 후보의 지역인재 할당제는 (구직시) 지역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서울과 지방간 격차를 근본적으로 완화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또 박 후보가 200여명 규모의 스펙초월 청년채용 아카데미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안에서 또 다른 경쟁을 낳지 않을까.

현재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종업원을 급히 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회사가 안양에 있다 보니 개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지역인재 할당제는 헌법에 위반되는, 말이 안 되는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구직활동을 할 때 지원금을 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꼼수나 부작용이 생길 여지가 있다. 너무 많이 줘서는 안 된다.

창업 얘기로 넘어가자.

창업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창업을 해도 3%밖에 생존할 수 없다는 시장의 현실을 파악하게 한 뒤 지원해주고 장려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 어떻게 구제할지 생각하는 게 맞다. 문 후보 쪽은 패자부활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박 후보는 좀 불확실하다.

창업 장려보다 인큐베이팅 중요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지원 다각화
노동시간 단축해 일자리 나눠야

패자부활제도의 핵심은 창업하는데 요구하는 연대보증의 폐지가 돼야 한다.

막연히 창업을 하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좀 불편하다. 멘토링 제도가 많이 필요하다. 창업에서도 40대 선배들, 실질적 업무를 하셨던 분들이 우리 같은 청년층 창업에 함께 해주면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세대융합형 공약이 두 후보에게 다 있는 것 같다.

후보들이 창업을 많이 장려하고 있다. 그런데 실패한 사람들을 패자부활제로 모두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창업을 할 수 있으면 다 해도 좋을 것 같이 말하는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두 후보 다 ‘채용도, 창업도 활성화하겠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데, 무섭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고 몰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잘 안될 때가 더 많다. 나 같은 경우에도 커피숍을 할 때는 종업원 아르바이트비를 주기도 힘들었다. 창업을 더 장려하기보다, 규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1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에서 눈높이 검증단이 토론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1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에서 눈높이 검증단이 토론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실 사업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한 번씩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다.

창업 장려보다는 교육, 훈련 등의 ‘인큐베이팅’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질적으로 우수한 창업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후보가 됐든지 간에 수많은 사람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인큐베이팅을 하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사례도 많이 보여줘야 한다.

20대 청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자신이 먼저 일을 해보고, 잘할 수 있는지 진단해 본 뒤에 창업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창업이라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 폭탄을 들고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에서 패자부활 제도를 제공한다고 해도, 얼마나 지원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패자부활 제도는 실패했을 때 재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만큼 창업 자체의 위험요소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데 재도전 뒤 또 실패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 싶은 것, 한두 가지씩만 꼽아달라.

지나치게 낮은 최저임금의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충을 꼽고 싶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자영업자가 부담이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올라야 일하는 사람들이 자영업자들한테 쓸 돈도 늘어나는 것 아니냐. 지금은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낮다.

취업준비금 지급과 최저임금 인상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까 더욱 그렇게 느낀다.

패자부활제도에 관심이 많다. 좀 더 구체화됐으면 좋겠다. 다만 이것이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봤으면 한다. 표준이력서는 학력차별에 따른 불이익을 줄이겠다는 것이지만, 실효성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신규고용 확대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 외의 정책엔 별 감흥이 없다.

일과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멘토링 제도’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기고] 옆 사람 밟고 가겠다는 의식 만연
탈락자 보듬을 수 있는 온기 절실 / 정병욱

정병욱 변호사
정병욱 변호사
좌담회에 모인 20~30대들은 청년 일자리와 취업 및 창업에 관한 각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평가·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데 철두철미했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새정치’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스럽게 절감했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일자리와 취업, 창업에 관한 공약들 중 여러번 언급이 된 공약은 일자리나 취업부문에서는 ‘최저임금 현실화’, ‘구직 지원금제도’, ‘지역인재 채용할당제’였고, 창업에서는 ‘패자부활제도’, ‘지역공동체 내지 협동조합 육성’이었다. 사퇴하긴 했지만 일부 안철수 후보의 공약도 주목받았다.

“면접을 하면서 ‘(옆에 있는) 애를 죽여서라도 올라가야겠다’는 느낌을 가졌었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이 청년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옆 사람을 죽여서라도 올라가야겠다’는 경쟁의식이 만연해 있는 건 아닌지, 과연 누가 우리를 이렇게 사지로 내몰고 있는지, 그 거대한 힘과 맞서는 건 불가능한 건가라는 의문도 생겼다.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는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경쟁의식을 과도하게 부추기기보다는 함께하기를 강조하고 경쟁의식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 경쟁에 탈락한 사람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분이 당선돼야 하지 않을까?

청년들은 각 후보들의 창업공약 중에서도 특히 무분별한 창업지원 공약보다는 창업 교육을 강화하는 공약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창업을 했다가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이런 공약이 필요하다는 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현재 창업을 한 청년들에게는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고, 계약금을 떼이지 않으면서 소신있게 사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공약이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좌담회에 참석한 청년들 가운데 이미 창업한 청년들에게, 좌담회가 끝나고 최저임금이 현실화하면 오히려 여기 계신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살짝 물어봤다. 이들은 ‘그만큼 돈을 더 벌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응수했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이미 우리 사회는 공약보다 앞서나가 있는데, 공약을 만드는 정치인들이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정병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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