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후보의 ‘신혼부부 내집 마련 지원정책’에 대한 일반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한겨레>는 이달 말까지 모집하고 있는 ‘100인 유권자위원회’에 신청서를 접수한 20~30대들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이들은 먼저 전자우편으로 이 후보의 공약내용을 받아 살펴본 뒤, 자신의 느낌을 밝혔다.
|
|
|
■ “신혼부부 주택? 별로 매력없다”
다달이 수십만원을 임대료나 대출상환금으로 내야 하는 신혼부부 주택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유권자가 많았다. 학원강사인 조한진(39·경남 사천)씨는 “예전에 경남 하동군에서 보증금 3천만원에 월 관리비 6만원 짜리 임대주택에 살았는데, 관리비를 못내 전기가 끊긴 가구가 많았다”며 “이 후보 공약을 보면, 최하위 소득계층 20%에 해당하는 신혼부부가 임대주택에 살려면, 한 달에 20~30만원을 임대료로 내야 하는데 이 돈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대학생 김정애(24·경기 성남)씨는 “융자 받아서 한 달에 몇십 만원씩 갚아야 한다면 비싼 사글세방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그냥 결혼 전에 돈을 모아 목돈을 만든 뒤 전세 사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운송업에 종사하고 있는 백성주(36·서울)씨는 “전매 제한을 둔 것도 신혼부부들에게는 거부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출산율 높이기와는 별 상관 없어”
몇몇 유권자들은 신혼부부 주택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지만, 이 후보 쪽에서 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출산율 높이기’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김창선(31·서울)씨는 “실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면서도 “둘만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아지고 있으므로, 주택 공급이 저출산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학원강사인 박영미(26·대전)씨는 “저출산 문제는 교육문제와 연관돼 있는데, 집을 주면 애를 낳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이상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성현(34·서울)씨는 “의지를 갖고 하면 실현이야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몇% 높일 수 있다는 성과 지표가 없어서 부실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최우영(37·부산)씨는 “결국 젊은 세대 표를 의식한 공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산 및 주거 문제에 근본적인 고민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한진씨는 “주택정책이라는 건 특정 연령층에 대한 시혜 차원이 아니라, 조세개혁 등 보다 큰 틀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이 후보는 토론회에서 ‘한 해 신혼부부가 몇쌍 생기는지 아냐’는 홍준표 의원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영미씨는 “여성이 34살 미만인 신혼부부 세대가 이 정책의 수혜 대상이라는데, 34살이 넘으면 아기를 못 낳는 거냐”며 “출산은 여성에게 큰 의미인데 너무 노동력 공급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 중요한 건 주택보다 비정규직 문제”
집을 거주 목적이 아닌 ‘소유’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우영씨는 “자기 집을 가진다는 개념보다는 전세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가질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미씨도 “집을 거주 목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공급 과잉에 따른 집값 폭락 우려도 있었다. 회사원 이대원(29·서울)씨는 “정부의 1·11 대책으로 앞으로 2010년까지 분당급 새도시 2개가 들어서는 등 모두 164만 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라며 “그러나 이 후보 정책대로 2012년까지 연간 12만호의 아파트가 공급된다면 공급과잉으로 집값 폭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창선씨는 “건설을 통한 단기부양책이 될 수 있으며, 택지 조성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혼부부의 더 나은 삶을 보장하려면 주택보다는 비정규직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충고도 있었다. 이대원씨는 “비정규직으로 80~90만원 받으면서 1억원이 넘는 융자를 30년 동안 매달 몇십 만원씩 갚아나갈 수 없다”며 “신혼부부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아파트가 아닌 안정적인 직장”이라고 말했다.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