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5월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 “이분은 친일파가 아니다. 제 (장관)직을 걸고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6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가당치도 않은 친일파 프레임으로 (백 장군을) 그렇게 공격하는 건 옳지 않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박 장관이 역사적 사실까지 무시한 채 도를 넘는 ‘백선엽 미화’ 시도로 국가 분열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장관은 3년 전 숨진 백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누리집(홈페이지)에 있는 안장 기록 비고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거듭 밝혔다.(<한겨레> 보도 “
이승만 기념관 결정된 것 없어…민간 추진위가 주도할 것” 참조)
박 장관은 “참여정부 때 친일반민족규명법이 만들어지고 위원회가 활동을 했지 않았느냐.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되어 있지 않으냐”며 “(당시) 위원 11명의 이력을 보면 역사적으로 상당히 편향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 위원회가 ‘그 사람이 친일’이라고 결정했다고 해서 그게 역사적 진실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도 주장했다.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대통령 소속 정부기관이다. 이 위원회가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한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5명 명단에 ‘백선엽’이 들어가 있었다. 백 장군은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 때 공식 인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였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이)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하는데 당시 역사적 증거를 보면 만주엔 독립군이 없었다”며 “토벌 대상이 독립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백선엽이 독립운동을 탄압했다’고 비판하면, 보수 쪽은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이 잘못을 덮고도 남는다’는 취지로 반론했는데, 이날 박 장관은 ‘친일 행적’ 자체를 아예 부인했다.
이 주장과 달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1941~45년 (일제 허수아비) 만주국 군 장교로 침략전쟁이 협력했다’는 이유로 백 장군을 친일반민족인사로 규정했다. 당시 위원회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10호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가 있는 자 등을 근거로 이런 판단을 했다.
특히 백 장군은 1943년 2월부터 1945년까지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는데, 이에 대해 백 장군은 일어판 회고록에서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라며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의 국립묘지 안장 기록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표기된 것은 “법적 근거 없이 그냥 그 당시에 정치적 환경 때문에 그런 조치를 했다는 강한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는 2019년 3월 당시 국가보훈처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정한 명단을 기준으로 보훈처와 현충원 누리집 안장자 기록에 적은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친일 행적이 있는 장군들의 묘를 파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자, 파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대신 ‘당사자의 공과를 병기하자’고 결정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으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표기된 인물은 백 장군을 포함해 신태영 전 국방부 장관, 신현준 전 해병대 사령관, 이응준 전 체신부 장관 등 12명이다.
박 장관은 “6·25는 우리 최대 국난이었고, (백 장군은) 그 국난을 극복한 최고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는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이 있었다. 다부동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백 장군이 사단장이던 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에 맞서 싸워 이겨 국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달리 육사 2기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낙동강 전선의 다부동 전투를 통해 백선엽이 우리나라를 혼자 다 구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는 “낙동강 전선에는 국군 5개 사단, 미군 3개 사단이 배치돼 있었다. 그렇게 8개 사단이 합심해서 지킨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8분의 1의 역할을 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한국전쟁 60주년 기념사업으로 백 장군을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군 원로들의 “백선엽 혼자 싸웠느냐”는 반발과 광복회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또 박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에 대해선 지난 6일 “장관을 그만두더라도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3일에는 “가짜 독립유공자는 용납할 수 없다”며 독립유공자 공적을 재검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달 초 보훈부로 승격한 이후 한달간 박 장관의 이런 행보는 ‘이념보훈’에 치우쳐 정치적 편가르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는 “후세대들은 이념세대가 아닌데 박정희 때 반공주의로 회귀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도 “독립유공자 심사 기준을 손대면 ‘사상적 문제’를 앞세워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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