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대장 동상 제막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6일 “내 직을 걸고 백선엽 장군은 ‘친일파’가 아니라고 얘기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백 장군 등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 12명의 안장기록에서 해당 문구를 삭제하는 절차가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오래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리된 사안을 새삼 뒤집으며 해묵은 ‘역사전쟁’을 재연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박 장관은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에 나와 “가당치도 않은 친일파 프레임으로 (백 장군을) 공격하는 건 옳지 않다”며 이런 주장을 폈다. 특히 ‘프레임’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백 장군에 대한 친일 행위 판정이 마치 특정 진영의 일방적 논리에 따라 객관적 사실과 무관하게 이뤄진 일인 양 말했다. 심지어 당시 친일 판정은 물론 안장기록의 문구 삽입 등이 “전혀 사회적 합의가 아니다”라는 사실과 어긋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백 장군에 대한 ‘친일’ 판정은 국가기구가 내린 공식 결정이었다.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검증과 토론을 거쳐 결론 냈고, 당시 이 대통령과 국회에도 보고됐다. 이게 사회적 합의가 아니면 어떻게 해야 사회적 합의가 되나. 박 장관은 “(당시) 위원들의 사회적 이력이 편향돼 있다” “그냥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다”며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당시 결정에 참여한 위원들을 모욕하고 국가기구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억지다.
백 장군 등의 안장기록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넣은 것도 사회적 합의로 이뤄진 일이다. 현충원 안장을 놓고 ‘파묘’ 주장까지 제기되며 논란과 갈등이 커지자 묘소는 그대로 두되 기록은 남기기로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삭제하겠다고 한다. 박 장관은 최근 독립유공자들의 서훈에 대해서도 “좌익” “가짜” 운운하며 이념 잣대를 들이대고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동안 잠잠하던 역사전쟁에 다시 불을 붙여 우리 사회의 분열과 대립을 격화시키려는 것인가.
장관 개인의 소신을 앞세워 국가기구의 결정을 함부로 뒤집으려는 시도야말로 가당찮은 일이다. 백 장군은 한국전쟁의 공헌이 크지만, 친일 행위를 한 것도 사실이다. 공과를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기록해야 후세에도 도움이 된다. 박 장관이 혹여 내년 총선 출마를 겨냥해 계획적으로 벌이는 일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