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노동시간을 둘러싼 윤석열 정부의 논란을 떠올리면, 120이라는 숫자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참여 선언을 한 2021년 7월 중순 <매일경제>와 한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주 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작년 중소기업 기준)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실패한 정책”이라며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 52시간 제도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에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일의 종류에 따라 노사 간 합의나 근로자 스스로 근로조건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갖도록 해주는 안”이라며 “기업에만 좋은 게 아니라 근로자에게도 좋은 경우에는 예외를 넓게 둬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숫자 92도 있다. 지난해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연장 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바꾸는 방안(이 경우 한주 최대 92시간 노동이 가능)이 포함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한 다음날,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과 관련한 논란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이후 전문가 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제안을 거쳐,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1주 최대 69시간(주 6일 노동 기준)을 뼈대로 하는 입법예고안을 발표하기까지, 취임 초기부터 이어져 온 노동시간 논란은 계속됐고 그 핵심엔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있었다.
대통령실이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과 관련해 적극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데는 윤 대통령이 올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주요 정책 어젠다로 설정하고 노동 관련 이슈를 끌고 가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노동 문제를 국정 동력 마중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연말 화물연대 파업 당시 노동조합을 기득권으로 지목하고 강경 대응 원칙을 고수해 지지층 결집을 일으켰던 것처럼, 노동 문제를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윤 대통령은 노동개혁이 청년과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란 말씀을 수차례 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개혁과제를 바라보고 있다”며 “노동계와 기업 모두에게 일관성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 생각은 국회가 입법하는 대로 그대로 놔두면 노동 약자가 보호 안 된다는 것”이라며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법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으면 권리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윤 대통령이 ‘무리’라고 밝힌 ‘주 60시간’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두고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노동계에서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현재 계도기간이라는 점을 들어 최대 52시간제에 예외 8시간 추가연장근로가 허용되는 상황을 참고한 것 같다는 추정이, 학계에선 과로사를 유발할 수 있는 노동시간 연구 결과에 따라 60시간이 언급됐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60시간이라는 계산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10시간을 일한다면 나오는 시간”이라며 “그것도 많은 것 아니냐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만 밝혔다.
주 120시간에서 시작해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로 가닥을 잡아가는 정부의 노동시간 논란의 또 다른 배경으론 대통령실과 내각에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부 출신 관료들이 정책 구상 핵심축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지목된다. 노동자가 아닌 기업 시선에서 노동시간 문제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이 정책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일례로 산업통상부 관료 출신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주 60시간은 무리’ 발언을 놓고 “(개편방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입법 예고된 주 69시간 안을 유지할 것처럼 밝히기도 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취업자들이 희망하는 주 근무시간은 37시간(보건사회연구원 조사)인데 주 69시간, 60시간 미만 등 논란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며 “주 52시간이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에 주 52시간이라는 빗장을 열었기 때문에 합법적이든 탈법적이든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과중한 노동 현실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것”이라고 짚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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