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대구 시민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역사의 현장, 바로 이 서문시장에 이러한 우리의 헌법정신이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러 차례 서문시장에서 격려와 응원을 힘껏 받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힘이 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 부부는 서문시장 초입에서부터 환영나온 서문시장 상인들, 대구 시민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악수하며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환영 인파가 워낙 많아 인사에만 약 30분 정도 걸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500m가량 이어진 시장 초입부터 윤 대통령 부부가 천천히 걸으며 시민들과 스킨십을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서문시장 사랑’은 유별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8일 대선 전날 제주→부산→대구→대전→서울을 훑는 상행선 유세 중 서문시장에서 시민들과 만나 “대구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늦깎이로 여기서 사회생활을 하고, 정치를 시작할 때도 여러분께서 불러주시고 여러분께서 키워주신 것”이라며 “대구는 제게 정치적 고향이다”,
“마지막에 서문시장에서 기 받고 갈랍니다”라고 연설을 해 박수를 받았다.
이후 당선자 신분이던 지난해 4월12일, 그는 대구 서문시장 상인들과의 만남에서 “권력은 서문시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서문시장만 오면 아픈 것도 다 낫고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했다. 지난해 8월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한 뒤 다시 찾은 서문시장에서 그는 “어려울 때도 서문시장과 대구시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오늘 기운을 받고 가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취임 3개월 만에 국정 지지율이 20% 중반대까지 떨어진 시점이었던 터라, 지지층 결집을 위한 대구 방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김 여사도 서문시장을 각별히 챙겼다. 김 여사는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홀로 서문시장을 찾아 명절용품 등을 샀고, 대구 명물인 납작만두를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며 시민들과 대화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부각했다. 김 여사가 시장 상인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재방문을 약속한 뒤 3개월여 만에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함께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을 찾아
“서문시장은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며 “서문시장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에 겨우 걸쳐있고, 당 지지율까지 동반 하락세를 띠는 시점에 잡힌 현장 일정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알려진 서문시장은 100년 역사를 자랑한다. 1923년 4월 중구 대신동에 자리잡은 뒤 현재 점포 4000여개, 상인 2만여명이 모여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나, 규모로 보나 지역 경기의 바로미터 역할은 물론, 정치 1번지로도 여겨지는 현장이 된 것이다.
서문시장은 특히 보수 진영 정치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성지’로 통한다. 보수 지지층이 두터운 대구·경북 지역에서 민생 경제를 살피고, 소탈한 이미지까지 챙길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라, 이 곳 방문은 지지율 상승을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선배’인 역대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들도 서문시장 방문을 빼놓지 않았다. 2009년 12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서문시장을 찾아 수제비 ‘먹방’을 한 뒤 시장 상인에게 용돈 3만원을 건네받고 “꼭 다시 오겠다”고 말해 관심을 받았다. 2015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 현장 행보로 서문시장에서 한복을 맞춰 입으며 시민들과 스킨십을 늘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엔 서문시장에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북구 칠성시장을 찾아 화제가 됐다. 2019년 3월 전국경제투어의 일환으로 대구를 방문한 그는 칠성시장에서 농산물을 구매하고 상인들을 격려했다. 그 탓에 당시 서문시장 상인들은 ‘서문시장 홀대론’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퍼주기’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과 ‘주 69시간’ 노동시간 논란 속 3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내리막을 걸었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한국갤럽의 3월5주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4%포인트나 하락한 30%를 기록했다(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지역별 지지율에서도 대구·경북의 하락세가 눈에 띄었다. 3월4주차 긍정 51%, 부정 43%였던 대구·경북 지지율은 5주차 긍정 41%, 부정 43%으로 추락한 수치였다. 이 시점에 다시 찾은 서문시장은 지지율 반등 효과를 이끌 수 있을까?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