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이 1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아펙하우스에서 열린 2020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2020 팬데믹’과 국제질서 대변동: 새로운 국가전략을 위한 구상’에서 화상으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겸 최고경영자와 ‘한-미 싱크탱크 대담: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0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이틀째 행사가 12일 부산 누리마루에서 ‘‘2020 팬데믹’과 국제질서 대변동: 새로운 국가전략을 위한 구상’을 주제로 열렸다. 이날 세션2 ‘한-미 싱크탱크 대담: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에서는 김준형 국립외교원장과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겸 최고경영자(CEO)가 1시간에 걸쳐 조 바이든 행정부 등장 이후 한-미 관계, 북핵 문제 등의 향배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자누지 대표는 1997~2012년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전문위원을 지내면서 12년간 바이든 당선자의 보좌관으로 함께 일해온 인사로, 바이든 캠프 쪽과 연이 깊다. 미 대선 직전인 지난달 말, 그가 비공개로 방한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여권 인사들을 만났다고 알려지며 관심이 쏠렸다. 자누지 대표는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방한한 것이지 “바이든 선거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자누지 대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한반도 비핵화 및 북한과 관여하는 데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구상과 의견을 경청해 움직일 것이라고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바이든은 “미국이 한국(한반도)에서 이루고자 하는 어떤 일도 한국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5일(현지시각)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과 함께 연단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자누지 대표는 코로나19와 미국 경제 재건이 분명히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라면서도 “(바이든 행정부가) 긴 시간 (대북) 정책 검토를 필요가 없다고 확신”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임 뒤 대북 정책 검토에 상당한 시간을 소요할 것이며,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기회를 잃게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기다려야 한다거나 시간이 흐르도록 놔둘 생각이 없다고 확신한다”고도 말했다. 한반도 문제 있어서 시간이 미국(과 한국)편이 아니기 떄문에 당장 진전을 봐야 한다는 게 자누지 대표의 의견이다. 그는 “(바이든은) 백악관에 들어가는 첫날부터 완전히 준비된 상태로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녹록지 않은 외교 현황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주변에는 북한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으며, 바이든 본인도 36년의 상원 외교위 활동과 부통령직 8년을 거치며 쌓은 내공을 신뢰한다고 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한반도 관련 이루려는 어떤 일도
한국과 협의 진행돼야 한다 생각해
대북정책 수립 긴시간 소요 않고
치밀하고 신중하게 접근할 것
바이든 행정부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김 원장이 전하자, 자누지 대표는 “전략적 인내에 대해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인내는 자산이었지 의무는 아니었다”며 “(북한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미국이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북한문제를 도외시해서는 안 되지만, 인내심을 가지는 것은 괜찮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미 대선 후보 토론회를 언급하며 “바이든이 조건을 걸면서 김정은을 만날 의지가 있다고 했는데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민주당 행정부 때는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실무 단계에서 열심히 했으나 위(정상급)로 올라가지 못했다. 반면 트럼프 때는 ‘톱다운’ 방식으로 정상급에서는 열심히 했는데 실무진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자누지 대표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실무진에서 정책을 차근차근 검토해 올라가는 ‘보텀업’ 방식과 정상급에서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톱다운’ 방식이 결합돼야 한다고 동의했다.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바이든, 조건부 김정은 만남 용의
전혀 주목받지 못한 이유 짚기도
민주당 ‘보텀업’ 트럼프 ’톱다운’ 결합을
북-미 관계와 관련해 자누지 대표는 “김정은에게 손을 내밀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한 트럼프 대통령의 담대함과 용기, 창의력에 감탄했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데다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미있는 후속조치를 마련하지 못한 점을 한계로 꼽았다. 그는 “바이든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관여 말고 다른 길이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도 “그는 기념사진 찍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정상회담을 한다면 실제적 결과를 보기 위해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남북 간 평화와 의미 있는 협력, 관계 정상화를 위해 북한과 관여를 시도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고 단계별로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누지 대표는 “많은 게 북한의 행동에 달렸다”고 했다. 아울러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담보’를 내놔야 할지, 미국의 대가는 뭘지를 둘러싸고 워싱턴과 서울에서 벌어질 토론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어떤 대북 접극법을 택할 것으로 전망하느냐는 질문에는, 한반도 문제를 군비통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쪽과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쪽 그리고 비핵화를 우선시하는 쪽 사이의 정책적 토론을 거쳐야 하리라 내다봤다. 세가지 접근법 중 어느 하나를 택할 수는 없다고 봤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바이든이) 미 행정부 주변의 미국 전문가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초점을 맞추지만, 미국에게 있어서 북한의 비핵화는 전세계 비확산 군비통제 문제와 연결된 맥락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 핵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이 12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누리마루 아펙하우스에서 열린 2020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2020 팬데믹’과 국제질서 대변동: 새로운 국가전략을 위한 구상’에서 화상으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 겸 최고경영자와 ‘한-미 싱크탱크 대담: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및 동북아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행동 대 행동’ 등 실용적 접근법은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꼴이라는 강경론자들의 공세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지난 14년 동안 그 비판가(강경론자)들은 왜 침묵을 지켰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민주당이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확실한 비핵화 조처를 요구하지 않았으니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짚었다.
자누지 대표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정책에 대해서도 분명한 생각을 밝혔다. 그는 “바이든은 반중연대를 결성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국가들과 결속을 꾀한다고 해도 목표는 중국 배척이 아니라 법치주의, 안보,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그간 바이든이 ‘중국도 국제 규범을 따라야 한다’,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도 세계인권선언을 지켜야 한다’는 3가지 원칙을 가지고 중국을 대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와 관련해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재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공통의 이익을 확인하고 차이를 극복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