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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 미사일에 ‘베를린 구상’ 타격…한반도 ‘강 대 강’ 격랑

등록 2017-07-30 21:28수정 2017-07-30 22:26

[뉴스분석] 위기의 한반도
북 ICBM급 미사일 2차 발사에
정부,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미 전략폭격기 한반도 상공 출격
새달 한·미훈련 앞둬 위기감 고조
전문가 “창의적 해법 고민해야”
미 공군이 북한의 ‘화성-14형’ 발사에 대응해 출격시킨 B-1B 전략폭격기(왼쪽)가 30일 우리 공군 F-15K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 공군 제공.
미 공군이 북한의 ‘화성-14형’ 발사에 대응해 출격시킨 B-1B 전략폭격기(왼쪽)가 30일 우리 공군 F-15K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 공군 제공.
북한의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격랑으로 빨려들고 있다.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시작되면, 지난봄에 이어 또다시 ‘한반도 위기설’이 불거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첫걸음을 채 떼지 못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도 일정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북한이 지난 4일 ‘화성-14’형 1차 시험발사를 한 지 이틀 만인 지난 6일 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베를린 구상’을 밝히면서, 정전협정 64주년인 27일을 기해 군사분계선 안에서 남북이 적대행위를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지난 17일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21일 열자고 제안했다.

회담 제안일을 넘기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북한은 28일 밤, 최대 정점 고도 3724.9㎞, 비행거리 998㎞로 지난 4일 발사 때보다 더 진전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을 다시 쏘아올렸다. 2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화성-14’형 2차 발사시험을 실시하라고 친필 명령을 내린 게 27일이라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식 반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8일 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실시했다고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8일 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실시했다고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30일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애초 정부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첫째, 북한이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의 내용으로 수정 제의를 해오는 경우다. 이는 북도 대화의 물꼬를 틀 의지가 있다는 뜻이어서, 몇 차례 수정 제의가 오가면서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북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위를 넘는 수정 제의를 해올 수도 있다고 봤다. 더불어 북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 발사 등 이른바 ‘전략도발’을 감행한다면, 당분간은 남북대화에 나설 의향이 없음을 뜻한다.

문 대통령은 대화의 문은 열려 있지만 북의 도발에는 강력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28일 북의 미사일 시험발사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이 심야에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주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 요청 △미군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현무·에이태큼스 미사일 대응발사 훈련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발사대 추가 배치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논의 공식화 등의 조처가 숨가쁘게 이어졌다.

정부의 주저없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대해 문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사전에 준비된 매뉴얼에 따른 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의 도발 수위에 맞춰 외교·국방부 등이 사전에 마련한 ‘대응 지침’에 따랐기 때문이란 얘기다. 이 전문가는 “매뉴얼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만들기 때문에, 대응 지침을 작성할 당시엔 분명 합리적으로 보였겠지만,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다 보면 ‘죽은 대응’이 된다”며 “주어진 정세와 파급 효과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생략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은 시계열적으로 합리적으로 배치돼 있다. 취임 뒤 발빠른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우리 정부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나가겠다는 점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어 ‘베를린 구상’을 통해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했다. 지난 17일 정부가 동시 제의한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한 적십자회담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일종의 마중물이었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가 복원되면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란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문제는 북한이 우리 정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시비엠이란 칼을 빼든 북한은 ‘평화협정-체제보장-북미수교’를 위해 계속 미국과 직접 담판을 지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경우에 따라선 도발의 수위를 더욱 끌어올려 협상장의 문을 열려고 하거나, 아예 자신들이 목표한 핵보유국으로서의 기술력을 완성할 때까지 협상장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다음달 21일부터 시작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앞두고 위기감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북의 도발과 제재·압박 강화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며 “실효성 없는 맞대응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북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한 근본적이고 창의적인 해법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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