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만 상지대 교수
[기고] 서동만 상지대 교수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고 나서 대북 제재문제가 초점이 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견지 여부를 둘러싸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데 반해, 일반국민은 물론 여당 일부나 소수 야당 등에서 성숙한 대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무엇보다도 미국에 잇달아 쓴 소리를 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은 귀감이 되고 있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한나라당 및 보수세력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을 상징으로 여당이 중심이 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시장의 반응도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투자자들보다도 냉정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는 월가의 미국 금융자본이 이번 핵실험 사태를 보는 눈이 워싱턴을 떠받치고 있는 군수산업 자본과는 다를 수도 있음을 시사해 준다.
다만, 한국의 국민 여론이 매우 복합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북한 핵실험에 대응해 남한의 핵무기 보유를 지지하는 국민이 6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민족주의적 측면, 안보불안에 대한 일반 국민의 보수적 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보인다.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대북 제재를 강하게 주장하는 층이 핵무장을 더 지지하는 모순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한이 핵무장을 할 경우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시켜 주는 결과가 되며, 이는 대북 제재의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운동진영 일각에서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위협에 따른 북한의 체제 안보불안을 이유로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보이는 것도 지나칠 수 없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을 도외시하고 북한만을 비난하는 논리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냉전시대에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제공받던 핵우산의 보장이 없어지고,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 배제를 보장하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마저 무효화된 이상 자위수단이 필요하다는 북한의 입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미국은 91년 남한에서 전술핵을 철거한 상태이며, 미국의 핵위협은 해상, 공중 핵무기를 통한 핵우산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이 자체 핵무장을 통해 미국의 핵우산에 대응하는 것은 ‘비대칭적 대응’임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일본과 함께 피폭민족으로서의 역사적 경험을 지니며, 6.25전쟁의 참극을 겪은 한민족, 조선민족이 동북아시아의 핵확산을 주도하게 될지도 모를 이 역설이 가져올 부정적 이미지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남한 국민들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데는 현존하는 북한 핵무기에 대해 멀리 떨어진 미국의 핵우산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는 ‘안보 불안’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철수해버린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은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에서 볼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화하면 이런 핵무장 여론은 한국 정부의 군사정책에도 지속적인 압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남한, 일본, 대만으로 이어질 동북아시아의 핵확산을 막아야 하는 미국의 전략에서도 이런 상황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압력이 된다.
이번 핵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나라든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북미관계의 경우,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가 지향점이며, 협상을 통해 미국과의 적대관계가 청산되면 핵무기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계속 강조하는 것은 아직 파국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북일관계에선 일본 정부의 대응이 강경 일변도이며, 북한도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점이 매우 우려된다. 일본 극우세력이 사태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피폭국으로서 국민 일반에 핵 알레르기 정서가 있음은 관련국이나 북한이 일본의 반응을 대할 때 감안해야 할 점이다. 이와 함께 아쉬운 것은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로서 인식을 포함하면서 피폭체험을 승화시켜 북일관계를 개선시켜 가기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독자적 평화노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사실이다. 같은 피폭민족으로서 한일 시민사회의 연대로 이를 극복해 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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