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건군절 75주년인 지난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최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공개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북한의 열병식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한달 전부터 위성사진까지 등장하며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2월8일에 열병식이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어떤 무기가 새롭게 선보이게 될 것인지,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할 것인지, 그가 참석하여 연설한다면 메시지는 무엇일지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만약 북한이 열병식을 통해 외부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면 그 전략은 성공적이다. 열병식을 전후로 쏟아지는 언론 보도부터, 전문가들의 분석까지 한동안은 우리 모두 열병식 얘기에 몰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우리가 과연 열병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이며, 그 정보가 현재 북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떠한 효용이 있는지일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는 지금까지 총 13번의 열병식이 열렸다. 해마다 동일한 기념일에 열병식이 반복되기보다는 북한의 대내외적 환경에 따라 선별적으로 진행된다. 2014년과 2019년에는 열병식이 열리지 않았고, 2013, 2018, 2021년에는 두번씩 거행되었다. 열병식이 열린 기념일도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15)부터, 공화국 창건일(9.9), 조선노동당 창건일(10.10), 조선인민군 창건일(2.8),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4.25) 등 다양하다. 그나마 확인되는 열병식 개최의 유일한 기준은 특정 기념일의 정주년 여부다.
여기서 정주년이란 5년, 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를 뜻하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기념일의 정주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예컨대 집권 첫해인 2012년에는 김일성 100회 생일을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으로 공개 연설을 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정주년이 아니었던 공화국 창건일 및 정권 수립 73주년인 2022년의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했지만 연설을 하지는 않았고 새로운 무기도 등장하지 않았다. 즉, 국가 기념일 중에서 정주년을 맞이하는 경우에는 예외 없이 성대한 열병식이나 군중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내부적 결속을 도모하고 외부에는 체제의 힘을 과시하고, 정주년이 아닌 기념일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기념해온 것이다.
‘기념’한다는 것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 건국 과정에서 주요한 기점을 5년, 10년 주기로 가능한 한 정성스럽고 화려하게 ‘기념’함으로써 현실의 곤궁함으로 위기에 처한 북한이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발버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는 국가 역사를 ‘기념’하는 방식이 ‘열병식’이라는 데 있다. 군과 관련된 기념일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지도자의 생일이나 공화국이나 노동당 창건일에도 어김없이 열병식이 등장한다는 것은 북한이 과거로부터 기억하여 현재로 소환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여전히 무기와 군대가 국가의 근간이라는 것, 그것 없이는 국가 정체성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엄혹한 현실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즉, 북한은 여전히 ‘전쟁’ 중임을 자인하고 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다. 돈과 무기가 충분하다면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북한이 가진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개발한 신형 무기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수십만명의 군인 대오를 앞세워 상대방이 겁먹기를 바라는 것밖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과거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매진하던 시기에는 전략무기 고도화와 열병식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였다면 현재의 상황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2020년 이후부터 거행되는 야간 열병식은 역설적으로 화려한 조명과 카메라 기법 없이는 위세 등등한 무기와 군인을 전시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수많은 군인과 무기가 동원되는 행사라는 것을 감안해 봤을 때 야간 열병식은 그만큼 더 많은 고통과 희생이 요구되는데도 북한 체제가 야간을 고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란한 조명과 드론과 광각 카메라 등이 총동원되어 닳을 대로 닳은 트럭과 전차에 윤기를 더하고, 낡아서 해진 군복에 색을 덧입히고, 검게 그을려 깡마른 군인들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야만 그나마 열병식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야간 열병식의 관객은 크게 두 집단이다. 여전히 전쟁 중인 국가의 곤란함과 현실의 엄중함을 되새겨야만 하는 인민들과 전시된 무기를 통해 북한 군사력의 허와 실을 파악하려는 전쟁의 상대들이다. 우선 인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북한 체제는 열병식에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최근 열병식에서 인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지도자의 연설과 그 말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군인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까닭이다. 전쟁의 상대편에게는 위협적인 무기를 가능한 한 가장 그럴듯하게 전시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실제로 얼마나 위협적인지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해독하기 어려운 코드와 이미지를 뒤섞어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열병식의 목적이다.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난해한 정보들은 보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고 운이 좋으면 전쟁이 지속되는 것을 바라는 상대방이 북한의 군사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모름지기 무기라는 것은 실전에서 활용되기 전부터 존재 그 자체로 상대방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북한의 열병식을 며칠 앞두고 한·미 당국은 대규모의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의 ‘엄청난 군사력’이 확장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북한 외무성은 즉각 “핵에는 핵,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이라고 반발했다. 전략무기를 동원한 군사훈련으로 군사력을 뽐내는 한국과 미국을 상대해야만 하는 북한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미 훈련에 비견될 정도의 군사훈련을 할 여력이 없는 북한은 결국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무기와 병사를 이번 열병식을 통해 전시했다. 그만큼 북한이 선보이는 화려한 열병식 스펙터클은 나름의 고심의 결과물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열병식에 등장한 새로운 무기에 대한 평가가 곳곳에서 이어지리라. 그러곤 또다시 남한 정부와 미국이 나서 북한의 ‘위협적인’ 군사력을 제압하겠다며 엄청난 돈과 무기를 동원하여 군사훈련을 하겠다고 할 것이다. 분단 이래로 지속돼온 한반도의 비극은 이렇듯 오늘도 계속된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 학술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