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2020년 1월25일 삼지연극장에서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하는 모습. 맨 왼쪽이 현송월 당시 삼지연관현악단장. 조선중앙티브이 화면 갈무리/연합뉴스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리설주 여사가 공식 석상에 등장했을 무렵 일이다. 한 신문사 기자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언론은 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배우자를 대동하고 등장한 젊은 지도자의 행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오랫동안 북한을 향한 관음증적 욕망을 숨겨오지 않았던 언론이 ‘젊은’ 퍼스트레이디라는 먹잇감을 놓칠 턱이 없다. 그녀의 과거 행적부터 김정은 위원장과의 사생활까지 온갖 가짜 뉴스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리설주가 입은 옷이 디올(디오르)이라고 하던데, 알고 계신가요?”
“디올이건 뭐건 왜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나요? 그리고 그게 중요한가요?”
이미 온갖 선정적 보도에 질려 있었던 터라 약간 불쾌하기까지 했다.
“아, 저는 여자 교수님이시니까… 리설주 패션에 대해서 코멘트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놀랐는지 기자는 최악의 핑계를 대고 만다. 이럴 때는 서로 껄끄러워지지 않는 범위에서 대화를 멈추는 것이 최선이다. 기자도 엉겁결에 부적절한 말을 내뱉고 스스로 놀란 것 같았다. 하긴 ‘여자’ 교수 운운한 것은 그 기자의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리설주 여사의 외모와 옷차림에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잘못만은 아니리라. 기사를 기획한 데스크부터 호기심에 기사를 클릭한 독자까지 모두가 비틀어진 젠더의식을 재생산하는 공모자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두고 남한 언론은 온갖 선정적이고 성애화된 억측을 쏟아냈다. 그녀가 ‘하는 일’이 비전문적인 것으로 폄하되는 것으로도 부족해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보가 대서특필되기도 했다(조선일보 2013년 8월29일치,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김정은 위원장 주변의 여성들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김정은 체제가 전문적인 행정가 및 정치가로 구성된 것이 아닌 사적 관계에 기반을 둔 아마추어 조직으로 해석하게 한다.
현송월 부부장이 김정은 체제의 음악 정치를 수행하는 핵심적인 인물임에도 그녀의 행동이나 메시지는 공적 체계 안에서 해석되지 않았다. 그저 위원장 주변의 ‘여자’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은 그녀들의 능력보다 외모와 사생활을 중심으로 재현된다. 남성 정치인은 그들의 공적 역할이 언론 보도의 중심을 이루지만 여성 지도자들의 미디어 재현은 사생활이나 외모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 핀란드의 최연소 여성 총리가 친구들과 파티를 즐긴 것이 밝혀져 큰 스캔들로 비화된 사례가 가리키듯 여성 정치인이 재현되는 방식은 사회에서 용인하는 여성성과 깊게 연관돼 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관련 언론 보도는 그나마 덜 원색적이다. 하지만 김여정 부부장이 ‘여성’이라는 이유에서 그녀의 역할을 제한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오빠’ 김정은 위원장을 보필한다는 평가도 그러하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수동적으로 전달하는 존재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적대적 대남·대미 메시지가 수차례 발표되고, 급기야 김여정 부부장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주도하자 남한 사회는 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2018년 얼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한국을 방문한 김여정 부부장이 남북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와 같은 적대적이며 폭력적인 행위를 결정했을 것이라고 예측한 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냉혈한 행보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까지 남한 사회가 그녀를 정치인보다는 ‘여성’ 혹은 지도자의 ‘여동생’으로 의미화하면서 특정한 젠더적 성향을 투영해왔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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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김주애를 향해선 정치인 김여정에 대한 젠더화된 시선이 더욱 강화된다. 리설주와 김여정 사이의 시누이-올케 갈등으로 인해 김주애가 등장한 것이라는 추측이 언론을 통해 확장된 것이 한 사례다. 이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는데, 리설주와 김여정이라는 공적 인물을 마치 지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궁중 속 여자’들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된 모든 것이 치밀한 국가 전략과 구상에 따라 진행됨은 주지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김여정·리설주·현송월의 행동과 말은 ‘여자’라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해석된다. 그녀들의 전문성·역량·능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김정은 위원장의 처분을 기다리는 존재로 취급되는 것이다.
김주애의 미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지난해 11월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7형 시험 발사 현장에 처음으로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의 딸 김주애는 1년 동안 약 17번의 공식 행사에 참가했다. 김주애가 김정은 위원장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여자’아이가 가부장적인 북한에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역시 정치 지도자는 남성이라는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것이 확인된다.
김주애의 후계자 여부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김주애가 ‘딸’이어서가 아니다. 역량을 확인할 길이 없기에 지금은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만약 김주애가 북한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정도의 능력을 키워내고 대내외적 환경이 우호적이라면 김정은 위원장의 뒤를 이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김주애가 그것에 실패한다면 아무리 ‘백두혈통’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을 이양받기는 어렵다. 김정은 위원장이 형 김정남과 김정철을 제치고 후계자가 될 때 수많은 요인들이 작동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주애의 후계자 여부를 사진 몇 장과 파편적 정보의 조합으로 쉽사리 결론 낼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북한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단순히 ‘여성’으로 젠더화하는 것의 효과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범박하게 답하자면 지도자의 ‘부인’, ‘여동생’, ‘아는 누나’, ‘딸’로 이뤄진 지도 체제라는 인식은 북한 체제가 결코 이성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확대재생산한다. 더 나아가 북한을 동등하고 합리적인 대화의 상대가 아닌 동물적이며 위험하여 무시하고 제거해야 하는 존재로 감각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화가 쉽사리 재개되지 못하는 상황 이면에는 북한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 11월21일 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감행했다.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파기됐고 군사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남한 사회가 북한 지도층에 대한 억측과 무시를 지속하는 동안 북한 체제는 그 누구보다 냉철한 현실인식 아래 자신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 학술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