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 앞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함영준 오뚜기 회장(왼쪽 둘째)과 건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업이 잘돼야 나라경제가 잘됩니다. 국민경제를 위하여.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맥주잔을 들고 건배사를 하자, 기업인들이 뒤이어 “위하여!”를 외쳤다.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는 27일 진행된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호프미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생맥주 기계가 설치됐고, 테이블이 펼쳐졌다. 문 대통령도 직접 생맥주 기계에서 자신의 잔을 채웠고, 격식을 파기한 채 자유로운 대화가 오갔다.
이틀에 걸쳐 열리는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미팅’ 간담회 첫날인 이날 회동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준 엘지(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씨제이(CJ)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등 8개 기업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재계 순위 100위권 밖의 중견기업인 오뚜기의 함 회장이 재계 순위 14대 그룹과 나란히 초청돼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함영준 회장에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오뚜기’를 ‘갓뚜기’로 부른다면서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이어 “고용도 그렇고 상속 통한 경영승계도 그렇고, 사회적 공헌도 그렇고 아마도 아주 착한 기업 이미지가 갓뚜기란 말을 만들어낸 거죠. 젊은 사람들이 아주 선망하는 기업이 된 거 같다”며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아주 잘 부합하는, 그런 모델 기업이기도 한데 나중에 그 노하우도 한번 말씀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뚜기가 1500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납부, 비정규직 비율 1%대, 10년 가까이 라면값 동결 등의 행보를 보이자, 소비자들이 오뚜기를 ‘신’을 뜻하는 ‘갓’(God)과 합성해 ‘갓뚜기’라는 애칭을 붙이며 찬사를 보낸 데 대한 언급이었다. 함 회장은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청와대는 기업인들에게 ‘노타이 정장’, 비즈니스 캐주얼 등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와달라고 권유했다고 전했다. 무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는 의미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저 벗으면 다 벗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양복 상의를 벗었고, 이어 참석자들도 따라 재킷을 벗었다.
이날 저녁 6시부터 20여분간 진행된 ‘호프 타임’을 위해 수제 맥주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인 세븐브로이가 생맥주 기계를 설치했다. 세븐브로이는 전체 임직원 34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는 청와대는 맥주 업체도 ‘착한 기업’을 택한 셈이다. 청와대가 고른 맥주는 ‘강서 마일드 에일’과 ‘달서 오렌지 에일’로 진한 과일향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는 서울 강서구를, 달서는 대구 달서구를 뜻하는 것으로 실제 지명을 담아 더욱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수제맥주를 직접 따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맥주 안주는 음식의 ‘치유 효과’를 강조하는 셰프 임지호(61)씨가 초빙돼 치즈류와 채소, 쇠고기를 준비했다. 임씨는 지난 40여년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 것으로 유명해 ‘방랑식객’이라는 별명이 붙은 자연요리 연구가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씨가 만든 안주에는 각각 의미가 담겨 있다”고 귀띔했다. 이 자리에서 임씨는 참석자들에게 ‘해독작용을 하는 무를 이용한 카나페’는 “우리 사회의 오랜 갈등과 폐단을 씻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함께 고민하자”는 뜻을 담았고, ‘시금치와 치즈를 이용한 안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재료가 하나의 음식이 되는 것은 ‘화합의 상징’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20여분간의 ‘호프 미팅’을 마친 뒤 참석자들은 상춘재 안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간담회가 시작됐다. 청와대는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간담회 주제를 따로 정하지 않았으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경제 현안인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법인세 증세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재벌기업과의 간담회가 대통령의 뜻을 기업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전하는 의례적인 방식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기업인들의 말을 주로 듣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론 말미에는 임지호씨가 준비한 저녁식사가 제공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식사 메뉴에도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고 전했다. 미역, 조개, 낙지를 넣은 비빔밥을 준비했는데 청와대 관계자는 “각각 다른 재료들이 모두 살아 있어 각각의 맛과 의미가 공존하는 데 비빔밥의 진짜 묘미가 있다”며 “서로의 차이를 무조건 한데 섞는 게 아니라 각자를 존중하며 하나를 이뤄내는 공존의 미학과 미감이 비빔밥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