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오후 세종시청 여민실에서 열린 세종시 착공 13주년 및 정책아카데미 200회 기념 명사특강에서 ‘세종시의 미래,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시대’의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천박한 서울’ 발언이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24일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강연에서 “한강변에 아파트만 늘어서서 여기는 단가가 얼마, 몇평짜리, 이런 천박한 도시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라 그렇잖아도 수도로서의 위상 격하를 우려하는 서울 시민들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 됐지요. 논란이 되자 민주당은 이튿날 “서울의 집값 문제, 재산 가치로만 평가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며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이 대표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제1 도시인 서울을 깎아내리려 한 말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폄하’여서가 아닙니다. 부동산으로 부를 쌓고 싶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욕망을 “천박하다”고 꾸짖을 생각만 하는 여당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딜 가나 삼삼오오 모였다 하면 부동산 이야기가 나오지요. 2030세대 사이에선 ‘지금이라도 부동산 대열에 끼어들지 않으면 영영 집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팽배합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의 핵심은, 투기세력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까지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욕망에 불타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여당의 주류 세력은 ‘부동산 욕망’을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데 열을 올립니다. 친문(재인) 그룹의 한 의원은 사석에서 “길 하나 차이로 어디는 비싸고 어디는 싸다면, 싼 집 살면 되잖아요. 왜 굳이 비싼 집에 살려고 하죠?”라고 반문하더군요. 집을 (어디에) 샀는지에 따라 몇년 뒤 계급이 달라지는 광경을 십수년간 봐온 사람들이 들으면 헛웃음 지을 말이지요.
서울 인근 도시 이름을 거론하며 “△△ 싸던데 왜 거기는 안 가냐” “□□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면 된다”는 의원들도 허다합니다. 이들은 매일 아침 경기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좌석버스에서 출근길 교통체증을 겪어보기나 했을까요? “나는 ○○(지역구)에 싼값으로 대궐 같은 집에 산다. 서울 밖으로 나오면 엄청 좋다”는 의원도 있습니다. 운전기사가 매일 여의도까지 출퇴근을 도와주는 국회의원이기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당위론적 접근’은 정책의 효율성마저 해칠 수 있습니다. 한 재선 의원은 “정부여당이 자꾸 부동산 문제를 선악개념으로 접근하다 보니 국민을 계도 대상으로 삼고 훈계질을 하게 된다”며 “시장경제 관점이 아닌 윤리의 문제로 접근하면 제대로된 정책이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천박한 서울’ 발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은 “부산은 초라하다”는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부산을 방문했을 때 “왜 이렇게 부산은 교통체증이 많을까, 왜 이렇게 초라할까 생각했다”고 말한 적 있지요. 이 대표가 말한 비수도권의 ‘초라함’은 산업·교육·고용 정책과 공원·교통망·쇼핑시설 등 생활 인프라 부족 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와 달리 모든 자원이 집중된 서울에는 한국인의 다종다양한 욕망이 모여들어 부동산에서 폭발하는 거죠. 부동산 말고는, 수도권 특히 서울의 부동산 말고는 계급 이동의 희망이 없는 나라를 만든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과연 집권여당은 ‘부동산 욕망’을 “천박하다”고 꾸짖을 자격이 있기나 할까요?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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