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9일 충남 보령시 대천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보령.서천 당원 간담회에서 일정이 기록된 메모를 보며 고민하고 있다. 이날 강재섭 대표는 대선후보 경선 규칙에 대한 새로운 중재안을 발표했다. (보령=연합뉴스)
겉으로는 “미흡” 속으론 “만족” 표정관리
14일 사무실 옮겨 “속도감 있게 간다”
14일 사무실 옮겨 “속도감 있게 간다”
“당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오후 6시10분, 고려대 서창캠퍼스 특강 직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9일 강재섭 대표의 경선 규칙 중재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10일 대선 출마 선언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예정대로 진행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중재안 거부’ 의사와 관계없이 ‘거침없이 내 갈 길을 간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보기에 따라선 박 전 대표를 압박하는 모양새이기도 하다.
이 전 시장 캠프는 이날 오전 강 대표의 중재안 발표 뒤, 서울 견지동 안국포럼 사무실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이어 오후에는 캠프 선대위원장으로 내정된 박희태 의원과 이재오 최고위원 등도 합류했다.
이 전 시장 측근들은 최종 수용 결정에 앞서 박 전 대표 쪽 분위기를 염두에 둔 듯, 겉으로는 “중재안에 우리도 불만이 많다”는 태도를 보였다. “표 계산에서도 우리에게 크게 유리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이 전 시장의 한 측근 인사는 이미 오전부터 “사실상 강 대표가 우리 손을 들어줬다.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수용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저녁 충남 연기군 고려대 서창캠퍼스 특강 직후, 연단 밑에서 약 5분간 즉석 기자회견을 열어 수용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기자들의 질문에 농담을 건네는 등 여유로운 모습마저 보였다. 이 전 시장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본선에 갔을 때 상대(범여권)는 오픈프라이머리로 당선된 ‘국민의 후보’라고 하는데 ‘당신네들은 당대표 뽑는 것 같은 당원 후보가 아닌가’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50%를 주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흐트러진 당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돼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화합했으면 좋겠다. 박 전 대표도 이 문제를 대승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가 중재안을 계속 거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또 박 전 대표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당의 분란 사태는 더 커지겠지만, 그 책임은 박 전 대표 쪽에 더 많이 돌아갈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 전 시장이 대선 후보 경선 출마선언을 예정대로 하는 것도, 앞서나가는 ‘민심’ 외에 박 전 대표에 뒤졌던 ‘당심’마저 잡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14일에는 종로구 견지동 사무실도 여의도로 옮겨 본격 경선 국면에 대비한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이성권 의원은 “우리가 먼저 국민 속으로 들어가니, 박 전 대표도 싸움을 끝내고 함께 가자는 뜻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의연하고 속도감 있는 자세로 간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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